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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의 일상에서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 국제신문DB |
- 세종과 신하, 청계천 오물 골치
- ‘자원 순환’ 건설 폐기물 재사용
- 플라스틱 처리 ‘열분해 기술’ 등
- 함께 발전한 여러 과학들 소개
1444년 음력 12월 22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세종과 신하들이 조선의 왕도인 서울의 풍수지리와 왕실의 묫자리 등에 관해 논의하다가 서울의 쓰레기 처리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600여 년 전 서울에는 쓰레기와 더러운 물을 처리하는 제도가 없었다. 여기저기에 버려진 쓰레기는 주변 개천으로 흘러들기 쉬웠다. 이선로는 풍수지리설을 내세우며 “서울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의 중앙을 흐르는 청계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깨끗하게 가꾸어야 한다. 청계천에 오물을 버리면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효첨은 풍수지리설은 잡다한 술수라고 하며 “청계천처럼 도시를 흐르는 물이 비가 내릴 때마다 쓰레기를 쓸어 가야 서울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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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청계천은 조선시대에 쓰레기 처리 문제로 논쟁의 쟁점이었다. 국제신문DB |
‘조선왕조실록’에 서울의 쓰레기 처리 방식에 대한 논쟁이 있다니, 놀랍다. 세종이 어효첨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도 의외다. 이후 영조와 정조대를 비롯해 실록에는 청계천을 둘러싼 기록이 계속 나온다. 오늘날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청계천은 조선 시대에도 주목받는 핫플이었나보다. 쓰레기 처리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함께 출발했으리라.
환경공학자이자 SF 소설가로 활동하며,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관심사를 폭넓게 풀이해 온 곽재식의 ‘쓰레기 과학-집파리에서 인공지능까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쓰레기의 모든 것’. 이 책은 쓰레기 지옥의 악마 군단 집파리부터 예상 밖 골칫거리 음식물 쓰레기와 플라스틱, 종이와 배터리 같은 우리 주변에 널린 온갖 쓰레기를 비롯해 우주 쓰레기와 쓰레기 처리의 새로운 희망 인공지능까지 두루 아우른다.
책은 두 축으로 전개된다. 1부 ‘땅에 묻기’는 우주 쓰레기, 난지도, 집파리, 수도권 매립지 등 버려진 것이 향하는 곳을 중점으로 다룬다. 2부 ‘재활용하기’는 알루미늄, 배터리, 플라스틱, 쓰레기 인공지능 등 버려진 것이 다시 쓰이는 과정을 흥미롭게 살펴본다.
쓰레기는 지저분하고 하찮은 것이지만, 알고 보면 수많은 과학기술이 만나는 현장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특이점이다. 저자는 우주 쓰레기를 이야기하며 인공위성과 GPS, 레이저 관측 기술로 향한다. 쓰레기 매립지를 파고 다지는 중장비를 따라가다가 파스칼의 원리와 유압 기술의 역사로 들어간다.
쓰레기 속 유해 물질을 찾아내는 분석 기술에서는 빛과 원자, 양자 이론이 등장한다. 매립가스에서는 미생물과 지구 생명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알루미늄과 철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는 금속과 화학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기후변화 문제까지 살핀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은 한국과 헝가리의 산업을 연결하고, 플라스틱 쓰레기는 석유화학 산업과 열분해 기술로 이어진다.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종이 한 장에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재활용 역사가 숨어 있고, 건설 폐기물을 부수어 골재로 다시 사용하는 과정에서는 거대한 도시가 어떤 물질의 순환 위에 세워져 있는지 보여준다. 카메라와 센서로 쓰레기를 구별하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까지 등장한다.
쓰레기 처리는 ‘그냥 버리는 일’이 아니라 ‘쓰레기 과학’이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지질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우주과학, 인공지능은 물론 역사와 산업, 경제와 환경정책까지 쓰레기와 연결된다. 저자는 “쓰레기는 가장 비루한 것이지만, 문명의 가장 마지막 결과”이며, “그 쓰레기 속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여러 수준의 과학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쓰레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대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과학기술의 협력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