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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성찬, ‘풍경(언덕), 1957. 뮤트 스튜디오 제공 |
“전국의 예술가가 몰려들어 지역 화단과 부딪히고 섞인 피란수도 부산은, 한국미술 전체가 하나의 도시로 압축된 용광로였다. 광복동 다방이라는 좁은 시공간에서 벌어진 전시와 논쟁, 교류와 갈등은 주변부의 일화가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이 형성되는 현장 그 자체였다. 지금도 한국현대미술을 이끌어 온 수많은 작가의 작품과 기억에는 ‘부산’이 존재한다.”
6·25전쟁의 비극과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이어졌다. 위의 글에서 당시 부산에 피란 온 화가들의 붓이 꺾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박진희와 미술사학자 이현주가 공동 집필한 ‘부산근현대미술사Ⅰ: 교섭과 포용의 연대기’는 조선 후기 회화 교섭기부터 1960년대 현대미술의 전환기까지, 흩어져 있던 부산미술의 연구와 기록을 한 권의 연대기로 엮은 첫 단행본이다. 그동안 개별 작가와 특정 시기, 사건을 중심으로 축적되어 온 부산미술의 기록을 연결하고,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미술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피는 책이다.
박진희 이현주 두 저자는 오랫동안 부산에서 부산미술을 연구해 왔다. 박진희는 작품과 작가 전시 현장을 중심으로, 이현주는 문헌과 사료를 중심으로 자료를 축적해 왔다. 부산에서 쌓아온 자료와 현장 경험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났다는 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부산의 시선에서 써 내려간 부산미술사라는 점은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책은 부산이라는 장소의 조건에 주목한다. 초량왜관과 조선통신사를 통한 회화 교섭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광복동의 전시문화, 대한도기, 1960년대의 추상과 교류, 민전까지 부산미술의 주요 장면을 따라간다. 항구와 경계, 이동과 만남이 반복되어 온 부산의 도시적 경험이 미술의 형성과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한국전쟁기의 부산은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가들과 지역 작가들이 만나 전시하고 논쟁하며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던 장소로 다뤄진다. 광복동의 전시공간과 다방, 대한도기, 1960년대 추상미술과 지역 간 교류로 이어지는 과정은 부산미술이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진희 저자가 쓴 Ⅳ장 ‘1950년대 피란수도 부산 항구도시의 특수성과 전시 공간’편의 ‘예술문화거점, 광복동 다방’ 중 한 대목이다. “대청동 3가에 자리했던 루네쌍스다방은 당시 미술전시가 가장 활발하게 열렸던 다방 중 하나였다. 서성찬 김경 김종식 임호 김윤민 김영교가 결성한 지역 작가들의 모임인 ‘토벽회’가 제1회 동인전(1953년 3월)을 개최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 리플릿에 ‘르넷쌍스’로 표기되기도 했던 이곳은 미국공보원(현재의 부산근대역사관)과 마주 보고 있었다.” 루네쌍스다방 위치 설명이 있어 어디쯤인지 알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부산 1세대 미술평론가 김강석의 미완성 ‘부산현대미술사’ 수기 노트와 1960년대 주요 비평문을 해제해 수록했다. 당시의 전시와 작가, 부산 미술계의 움직임을 기록한 자료를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해 부산미술사의 초기 역사서술과 비평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