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국토종씨앗박물관 전시관. 김선국 사진. 학이사 제공 |
- 대구교육박물관장 지냈던 저자
- 세계 박물관 27곳 역사 등 소개
- “낯선 공간서 만난 여러 이야기
- 결국 내 삶으로 모두 스며들어”
“지금은 세계적으로 하루에 70여 종의 종자가 사라지는 씨앗 전쟁 중이다. 농업생물 다양성의 교두보인 토종씨앗을 외면하고, 씨앗 주권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생각 이상으로 혹독할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지속 가능한 문명의 돌파구는 여기쯤에 매달려 있는 것 아닐까. “토종씨앗박물관이 나라를 지키는 독립군은 아니지만, 씨알의 여사를 간직한 씨앗 수문장은 될 거”라는 강희진 관장의 말 속에 뭉근한 경의를 보낸다.”
‘내가 스며든 박물관’은 대구교육박물관장을 지낸 김정학 저자가 한국과 일본 미국 캐나다의 여러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만난 사람과 공간, 역사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여는 1장에 한국의 박물관 편을 놓았고, 그 첫 자리에 ‘한국토종씨앗박물관’을 모셨다.
 |
| 한국토종씨앗박물관 입구.
|
저자는 박물관을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보지 않는다. 관람객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나와 다른 문화와 역사, 타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민주적 학습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물은 진열장 안에 놓인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기억과 경험, 질문을 만날 때 비로소 현재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박물관을 고르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규모도, 화려한 외관도, 세상의 유명세도 아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곳에서 느낀 공감의 크기다. 이 책에 담긴 여러 공간은 박물관이 어떻게 교육의 공간이 되고, 기억의 공간이 되며, 때로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장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박물관 현장을 바라보고 직접 교육박물관을 이끈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한국토종씨앗박물관에서 토종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난다. 일본 도쿄장난감박물관에서는 나무와 장난감으로 지역을 되살리는 지혜를 발견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메모리얼 홀에서는 역사 속 인간의 아픔과 기쁨, 인간의 존재 자체를 성찰한다.
한국의 온양민속박물관, 일본 교토의 한자박물관,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아트도서관, 캐나다 클린튼의 바퀴달린학교박물관 등. 4장에 걸쳐 소개한 세계 27개 박물관이다. 박물관 이름에서 독특한 주제가 짐작되면 궁금증에 그 페이지부터 펼쳐 봐도 좋겠다.
한국토종씨앗박물관 편을 들여다보자. “씨앗을 주인공으로 하는 박물관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컸다.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의 소담한 농촌마을에 2017년 문을 연 115㎡(35평) 남짓의 이 박물관에는 1500여 종의 토종씨앗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다. 씨앗을 국가유물로 등록하고, 토종을 살려보겠다는 오기 반, ‘씨앗을 베고 죽겠다’는 각오 반으로 만든 박물관이다.
저자가 박물관 전시실의 설명을 전해준다. 인도말 ‘브리히(가을에 익는 벼)’가 여진 말 ‘베레(흰 쌀)’가 되고 마침내 ‘벼’가 되었으며, 인도말 ‘사리(겨울에 익는 벼)’가 ‘쌀’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주식의 어원부터 알게 한다.
1960년대 국제옥수수밀연구소가 일으킨 녹색혁명의 주역 ‘소노라 64호 밀’이 우리 토종 키 작은 ‘앉은뱅이 밀’의 변형물이라는 사실과,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로 유명한 구상나무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설명도 재미있다.
다른 박물관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박물관을 평가하기 위해 찾아가지 않는다. 오래된 것에서 오늘을 발견하고, 낯선 문화에서 나를 돌아보며, 한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포개어본다. 그렇게 박물관을 걷는 동안 어느 순간 관람객이 공간 속으로 스며들고, 박물관 또한 한 사람의 삶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