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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의 경성 본정(혼마치) 풍경. 자료출처:서울역사박물관. 북피움 제공 |
- 식민·근대 공존 속 보통 사람들
- ‘조선인 북촌’ ‘일본인 남촌’ 등
- 다양한 사료 바탕 생활상 복원
“본정 거리에는 1910년 이전부터 가로등이 있었다. 종로의 도로가 모래와 석탄기름으로 포장된 데 반해 본정 거리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수시로 물을 뿌려 청결한 환경을 만들었다. 아스팔트 포장과 도로 청결 유지는 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정의 화려하고 고고한 매력은 일본인의 선진성과 청결에서 나오기보다는 도시계획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권력과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최병택·예지숙 두 저자가 쓴 ‘경성 모던, 모던 경성’에서 1910년 전후의 본정(혼마치, 지금의 충무로)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았던 본정 거리 풍경이 떠오른다.
일제강점기·독립운동·경성. 한국인의 피를 뜨겁게 끓게 하는 단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는 늘 주목받는다. 영화 ‘암살’ ‘밀정’, 드라마 ‘경성 스캔들’ ‘미스터 션샤인’ ‘경성 크리쳐’, 그리고 최근작인 ‘100일의 거짓말’ 등. 우리는 이런 콘텐츠에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동시에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들여다본다. 가장 잔혹한 ‘식민’과 가장 매혹적인 ‘근대’가 하나의 시공간에서 충돌하는 지점.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경성 모던, 모던 경성’은 1920~1930년대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 교과서가 다루지 않는 식민지 조선 보통 사람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복원한다. 1장 ‘샐러리맨(월급쟁이)’, 2장 ‘교육열’, 3장 ‘문화주택’, 4장 ‘백화점’, 5장 ‘단발과 모던’, 6장 ‘마케팅’, 7장 ‘대중가요’, 8·9장 ‘가난과 주거’, 10장 ‘청년 실업’, 11장 ‘북촌과 남촌’. 이 책 11개 장을 하나로 꿰어보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이렇게 정리된다.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갖고 싶어 했고, 무엇 때문에 울었는가!
100년 전 1등 신랑감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오는 ‘샐러리맨’이다. 손목에 찬 빛나는 금시계를 자랑하고 싶은 여성들은 전차에서 자리에 앉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 손목을 드러낸 채로 꿋꿋하게 서 있었다. 어느 백화점은 문화주택 한 채를 경품으로 내걸어 대박이 났다.
이렇게 식민 수도 경성은 점점 ‘모던’해져 갔다. 전차가 도심을 가로지르고, 사람들은 자식이 대학생이 되기를 열망했다. 유행과 스타를 동경하고 따라 했다. 그러나 그 근대 풍경은 모두에게 같은 것이 아니었다.
도시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하루아침에 집에서 내쫓겨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토막민’이 있었다. 상류층은 새로운 문물을 누리며 살았지만, ‘빈민 전용’이라 이를 만한 열악한 주거 공간 ‘장옥’에서 가난과 싸우던 사람들의 삶은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논밭 팔아 대학까지 보낸 자식이 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낙향하는 청년 실업 풍경은 화려함의 그늘 밑에 존재한 또 다른 경성의 얼굴이다. ‘조선인의 북촌’과 ‘일본인의 남촌’은 또 하나의 처절한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치밀한 자료 조사 덕분에 이 책에는 딱딱한 연대기가 아니라, 그 시절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밀착형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고 나면 뛰는 경성의 집값에 잠 못 이루는 서민, 취업 길이 막혀 우는 경성의 취준생들, 월급날 여기저기 외상값 갚고 나면 통장이 텅 비던 경성의 월급쟁이들. 화려한 근대 풍경과 극심한 빈곤, 새로운 욕망과 생존의 현실이 공존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를 ‘정치와 사건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 역사’로도 읽어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100년 전 경성 사람들의 일상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