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 출신의 '끓는 피'는 역시 속일 수 없었다.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B조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이정수(30·일본 가시마·사진)는 대표팀에서 중앙 수비수를 맡고 있지만 원래 공격수 출신이다.
이천실업고-경희대 출신의 이정수는 청소년 대표를 거쳐 2002년 안양 LG(현 FC서울)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에 데뷔할 당시만 해도 스트라이커였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03년 당시 조광래 안양 감독이 수비수로 뛰라고 제안하면서다. 국내 프로팀마다 외국인 공격수들이 득세하고 있던 상황이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조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끼가 남아있는 만큼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종종 골을 터트려 '골 넣는 수비수'로 이름을 알렸다. 2008년까지 K-리그에서 138경기에 출전해 6골 4도움을 기록했고, 지난해 일본 J-리그로 이적해서는 현재까지 7골을 기록 중이다. A매치에서는 이날까지 26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이날도 기성용(셀틱)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자 스트라이커 특유의 동물적 감각으로 위치 선정을 잘해 손쉽게 득점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및 나이지리아 등 강팀과 2, 3차전을 치러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번 그리스와 첫 경기에서 승리가 절실했는데 빨리 터진 선제골로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이정수는 경기 후 "공격수 출신이라 볼의 움직임이나 타이밍 등을 다른 수비수들보다 잘 아는 장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한 뒤 "부모님과 자신을 수비수로 변신하게 해준 조광래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수비수로 성장하게 해준 장외룡 전 감독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자랑 같지만 위치선정이 좋았다"고 웃으며 곧 "기성용의 크로스가 워낙 절묘해 발만 갖다 댔다"며 도움을 준 기성용에게 고마움도 전했다.
이정수(184㎝)는 수비에서도 장신군단 그리스의 고공전을 잘 차단했다.
이정수는 허정무호 출범 이후인 2008년 3월 26일 북한과의 아시아지역 3차예선 경기에서 뒤늦게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늦깎이 대표선수지만 이제 대표팀에서 조용형(제주)과 함께 부동의 중앙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정수는 "세트피스가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수비 훈련을 많이 했다"며 "(17일 열릴) 아르헨티나전을 이기면 좋겠지만 비기더라도 16강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으니 버틸 때까지 버텨볼 생각이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