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악한 환경 딛고 열정 보여줘
- "응원해 준 친구들에게 미안해"
9일 새벽(한국시간) 런던올림픽 태권도 경기가 열린 런던 엑셀 사우스아레나. 태권도 여자 49㎏급 첫 경기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표로 출전한 강슬기(25)가 루시야 자니노비치(크로아티아)를 상대했다. 2라운드가 끝나고 점수는 0-14. 강슬기는 3라운드를 치러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2라운드 종료 시와 3라운드 진행 중 점수 차가 12점 이상 벌어지면 경기를 마치는 태권도 규칙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강슬기는 "TV로 보고 있을 아프리카 친구들이 상처받을까 봐 미안하다. 저 때문에 태권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꾹꾹 눌러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우석대를 나온 강슬기는 2009년 선수 생활을 접고 벨기에로 건너가 태권도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중 이름도 생소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시 선수로 뛰어 올림픽에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강슬기는 거절했다. 한국에서도 국가대표로 뽑힌 적이 없는데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 설 만큼 나는 큰 사람이 아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끈질긴 구애를 이기지 못하고 2010년부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표로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이 나라 국적을 정식으로 취득한 것은 올해다. 이 나라는 이중 국적을 허용한다.
강슬기는 런던올림픽 아프리카 대륙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해 올림픽에 나왔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는 2라운드, 단 4분 만에 끝났다. 강슬기는 자니노비치가 결승에 올라 패자부활전에라도 나설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자니노비치가 4강에서 우징위(중국)에게 졌다.
그는 "연습한 것에 비해 너무 결과가 안 좋다"며 고개를 숙였다. 올림픽에서는 이번에 처음 사용된 전자호구도 훈련 때는 착용해 보지 못했을 만큼 나라 사정이 열악했지만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을 안고 준비해온 올림픽이기에 아쉬움이 더 짙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이번 대회에 태권도, 육상, 수영, 레슬링에 남녀 각각 3명씩, 총 6명을 출전시켰다.
강슬기는 "올림픽을 앞두고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 친구들이 온종일 내 곁을 지켰다. 그것이 내게는 큰 자극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대회가 선수로서는 마지막이 될 테지만 구체적인 진로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가진 것이 없어서 경제적으로는 보탬이 될 수 없겠지만 태권도를 하고 싶어하는 아프리카 친구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