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은 한국 레슬링에 '부활의 원년'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번 대회의 성적만으로 그 질문에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레슬링은 런던에서 분명히 애초 목표를 달성했다.

그레코로만형 66㎏급의 기대주 김현우(24·삼성생명)가 정상에 오르면서 약속했던 '1개 이상의 금메달'이 손에 들어왔다.

이것만으로도 지독한 침체에서 벗어날 줄 몰랐던 한국 레슬링에는 큰 희소식이다.

레슬링은 오랫동안 올림픽에서 한국의 성적을 견인해 온 '효자 종목'으로 명성을 떨쳤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양정모가 자유형 62㎏급 우승을 차지해 역사적인 첫 금메달을 안긴 이래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 꼬박꼬박 1~2개의 금메달을 선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사상 최다인 9개의 메달을 쓸어담았고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00년 시드니 대회까지 꼬박꼬박 4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에서 메달 수가 2개로 줄더니 2008년 베이징에서는 금메달없이 동메달 1개를 얻어 32년 만의 '노골드'라는 충격에 빠졌다.

이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달아 금메달 없이 대회를 마치는 등 하락세가 계속됐다.

이번 대회에서 김현우가 8년 만에 목에 건 금메달은 이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한국 레슬링의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베이징에서의 실패 이후 대한레슬링협회는 '세대교체'를 선언하고 신진 세력을 길러내는 데 주력했다.

김현우를 비롯해 그레코로만형 55㎏급 최규진(27·조폐공사), 74㎏급 김진혁(23·조폐공사), 84㎏급 이세열(22·조폐공사), 자유형 55㎏급 김진철(23·삼성생명), 60㎏급 이승철(24·삼성생명) 등이 새로 태극마크를 달고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여기에 방대두 총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이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을 보태면서 레슬링은 8년 만의 '금빛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현우의 금메달을 제외하면 아무 선수도 시상대에 서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규진이 대회를 앞두고 오른쪽 무릎 인대를 다쳤고 정지현이 석연치 않은 판정탓에 물러서는 등 운이 따르지 않은 면도 있었다.

그러나 김진철과 이승철이 모두 첫 경기에서 탈락하면서 자유형은 2004년 이후 8년째 '노메달'에 그쳤다.

최근 부쩍 성장세를 보여 사상 첫 메달을 기대했던 여자 자유형에서도 김형주(28·창원시청)와 엄지은(25·서울 중구청)이 나섰으나 모두 초반 탈락했다.

김현우의 금메달만으로 섣불리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 어려운 이유다.

내·외부의 객관적인 상황도 아직 나아진 것은 없다.

한국 선수들은 그동안 한계를 넘는 훈련으로 선수들을 담금질해 경쟁력을 얻었지만, 외국 선수들도 이에 못지않은 훈련량을 쌓아가면서 체력의 우위가 사라졌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재미를 위해 공격적인 레슬링을 유도하는 쪽으로 조금씩규정을 손질하면서 한국 선수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워낙 '힘든 종목'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탓에 다른 종목에 비해 유망주를 발굴하기 어렵고 저변이 계속 좁아지고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김현우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는 "레슬링은 내 삶의 전부"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 생긴 레슬러 김현우의 미소에 한국 레슬링의 근심도 날아갔다.

다음 올림픽까지 제2, 제3의 김현우를 길러낼 수 있다면 한국 레슬링은 2012년을 '명예 회복의 출발점'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