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치기 왕 김일의 직계 제자
- 1975년 입문 … WWA 챔피언
- 1980년대엔 최고의 TV 스타
- 2013년 암 수술 후 극적 회복
- 2015년 은퇴 후 후진양성 매진
- 담도암 재발로 사망 … 향년 64세
“나는 쇼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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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챔피언’이자 한국 프로레슬링의 대부인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가 4일 오전 별세했다. 사진은 2008년 11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고 김일 추모 프로레슬링 대회에서 우승한 이왕표가 포효하는 모습. 연합뉴스 |
프로레슬링의 ‘대부’ 이왕표 프로레슬링연맹 대표가 생전 즐겨했던 말이다. 담도암이 재발해 투병하던 그가 4일 오전 9시48분 별세했다. 향년 64세.
고인은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스승은 ‘박치기왕’ 김일이다. 김일은 현역 생활 30년간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20차례 수확한 전설이다.
1975년 김일의 직계 제자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이왕표는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해 김일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그는 1980년대 고국으로 돌아와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명절이면 이왕표가 훨씬 덩치가 큰 백인 선수를 쓰러트리는 모습을 TV를 통해 쉽게 볼 수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고인이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1980년대 프로축구·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시나브로 사그라들었다.
후계자가 마땅치 않다 보니 이왕표는 수십 년 동안 링을 떠나지 못했다. “이왕표 말고는 우리나라 프로레슬링에 선수가 없느냐”는 한탄까지 나왔다.
2000년대 중반 종합격투기가 인기를 얻자 이왕표는 프로레슬링도 충분히 통할 만큼 강하다며 도전을 선언했다. 실제로 WWE 챔피언 출신인 브록 레스너(미국)는 UFC 헤비급에서도 최정상 선수로 활약했다. 이왕표는 50대 중반인 2009년과 2010년 종합격투기 선수 밥 샙과 일전을 벌이기도 했다.
레슬링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던 고인은 2013년 담도암으로 쓰러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워낙 큰 수술이라 유서까지 쓰고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기적처럼 병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80일 만에 퇴원한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잘못된다면 내 장기를 기증한다’는 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2015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의 은퇴식에는 2000여 명이 찾아 전설의 마지막 길을 축복했다. 노지심·홍상진·김종왕·김남훈은 대선배가 지켜보는 앞에서 헌정 경기를 펼쳤다. 후진 양성을 위해 쉴 새 없이 전국을 돌던 그는 최근 암이 재발하면서 다시 쓰러졌다.
이왕표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건 프로레슬링의 진실성 논란이다. 프로레슬링에 각본이 있다는 건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피나는 훈련을 통해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펼치는 프로레슬링 경기를 ‘쇼’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이왕표는 생전 “내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라 진짜”라며 “프로레슬러는 어떤 격투기 선수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두 차례 밥 샙과 대결한 이유다.
그는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제 후배들이 무거운 바통을 이어받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현대 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이다. 장지는 일산 청아공원이다.
이병욱 기자 junny9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