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 거스르는 투구 보이겠다”
“롯데가 있었기에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프로의 시작이 롯데였던 만큼 끝맺음도 여기서 하고 싶어요. 제가 왜 거인 유니폼을 입어야 했는지 실력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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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 제공 |
한국 나이 서른여덟인 좌완투수 고효준이 지난 14일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인 후 밝힌 각오다. 그는 지난달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 기간 1년, 연봉 1억 원, 옵션 2000만 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체결했다. FA 시장 개장과 동시에 빠른 계약을 기대했지만 오버페이를 하지 않겠다는 구단의 기조에 난항을 거듭했고 자칫 ‘FA 미아’가 될 뻔 했다. 그는 “그동안 팀에 기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구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며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결국 거인 유니폼을 계속 입었으니 실력으로 보여 드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고효준은 2002년 2차 1라운드로 롯데의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뒤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를 거쳐 롯데로 돌아왔다. 선발, 구원을 안 가리며 잡초같이 버틴 그는 지난 시즌 필승조 자원으로 75경기에 출전해 62.1이닝을 소화했으며 2승 7패 15홀드 평균자책점 4.76을 기록했다. 최하위로 추락한 롯데 투수진에서 베테랑의 고군분투 활약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이날 그가 보여준 투구 내용은 호주 애들레이드 스프링캠프(전지훈련)를 다녀온 선수들 못지 않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한 경기 호투로 평가하긴 이르지만 고효준은 구단이 자신을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증명하려는 무언의 시위 같았다. 이날 최고 구속은 146km까지 찍혔다. 컨디션이 계속 좋아지면 구속은 더 오를 가능성도 높다.
고효준은 계약 이후 김해 상동구장에서 몸을 착실하게 만들면서 1군 복귀를 준비했다. 계약 후 첫 실전 등판이었지만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이날 그의 타자 타이밍 빼앗는 수 싸움과 카운트별 변화구 실험은 완벽에 가까웠다. 특히 2사 후 김민수를 내야 실책으로 출루시키고도 흔들림 없이 후속 타자 한동희를 풀카운트 끝에 144㎞의 패스트볼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은 이날 투구의 백미였다. 호주 전지훈련 출발 전부터 고효준의 합류만을 애타게 기다려온 허문회 감독으로선 반가울 수 밖에 없는 투구 내용이었다.
비시즌 인천 청주 등 전국을 다니며 나홀로 훈련에 매진한 고효준은 “전지훈련에 합류하고 합류하지 못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면서 “혼자서도 투구 밸런스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벽치기’와 캐치볼로 투구 감각을 유지했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꾸준히 하며 체력을 키워 자신있다”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거인 1군 마운드에 다시 오르게 된 고효준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었다. 이날 그가 보여준 모습은 롯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각인시킨 것과 다름없다. 뒤늦게 콜업이 됐지만 시즌 준비는 이미 끝냈다는 그는 “다른 목표는 없다. 내가 던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던지는 게 유일한 목표다. 계약 전까지 유니폼 벗을 생각도 했던 나다. 세월을 거스르는 투구로 살아남겠다”고 이를 악 물었다.
이지원 기자 leej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