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 개 센서 몸에 부착하고 투구
- 생체역학 데이터 수집 비교 분석
- 2억 원 투자 … 전문가도 6명 모셔
- 신인육성·부상방지 등 효과 기대
지난 2월 16일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부산 사직구장 4층 실험실에 신인 투수 김진욱(19)이 반바지만 입은 채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동그란 센서 20여 개를 달고 나타났다. 실내에 마련된 마운드에 오른 그는 ‘준비 시작’이라는 연구개발(R&D)팀 김혜리 체육역학박사의 안내에 따라 전력으로 혹은 힘을 빼고 신중하게 한 구씩 던졌다. 박현우 스카우트·육성총괄은 옆에서 모니터와 선수를 번갈아 관찰했다. 김진욱이 던진 공은 12개. 이로써 준비시간까지 40분에 이르는 실험은 끝났다.
■결과 아닌 과정 보여주는 첨단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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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6일 부산 사직구장 ‘피칭랩’에서 롯데 자이언츠 신인 투수 김진욱이 센서 20여 개를 온몸에 달고 공을 던지고 있다. |
국내 최초로 공개한 롯데의 ‘피칭랩(Pitching Lab)’ 훈련 장면이다. KBO 구단 중 롯데만 갖춘 시설이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이 시설이 있는 구단은 절반이 채 안 된다. 모든 구단이 운영하는 랩소도(이동식 궤적 추적 장치), 블라스트 모션(타격 때 배트스피드, 발사각 등을 측정하는 장치)이 ‘결과’를 측정하는 기기라면 피칭랩은 선수의 몸이 이 같은 결과를 내는 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여준다.
롯데는 지난해 3월 2억 원을 들여 사직구장 4층 강당을 개조, 피칭랩을 만들었다. 시설을 만드는 데는 큰 비용이 들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생체역학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자 전문인력 6명을 채용했다는 점을 보면 큰 투자를 한 셈이다.
앞으로 김진욱은 매 분기 사직구장 피칭랩에서 공을 던지며 자신의 생체역학 자료를 쌓아가게 된다. 자료가 쌓이고 쌓이면 다른 선수와 비교 분석한 자료를 통해 더 빠르고 변화무쌍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구 폼을 찾는다. 혹은 부상 등 다양한 이유로 투구폼이 무너졌을 때도 코치진의 안목에만 의존하는 게 아닌, 자료를 참고해 더 빨리 최상의 밸런스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김진욱은 물론 롯데 소속 1·2군 모든 선수는 주기적으로 피칭랩에서 자신의 생체역학 데이터를 쌓아 나간다.
이름만 피칭랩일 뿐 투수만이 아니라 타자나 포수도 모두 참여한다. 타자는 적절한 타이밍에 중심 이동이 된 상태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지, 포수는 송구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작은 없는지 등을 분석한다.
■“잠재력 끌어내고, 재활 기간 단축”
한 선수를 측정해 나오는 자료만 1GB. R&D팀은 선수들의 관절 각도, 무릎 각도,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속도 등을 분석해 한 페이지의 보고서로 요약한다. 구단 프런트와 코치진은 이를 보고 선수 육성 계획을 짠다. 또 트레이너는 신체 균형이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내 선수들에게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데이터를 본 선수들은 다른 선수의 동작과 비교 분석한 자료를 보고 왜 내가 직구를 시속 140㎞ 이상 던지지 못하는지 알게 되고 개선점을 찾아 나간다. 타자도 자신의 폼과 이대호나 손아섭의 폼을 체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좋은 장비를 왜 1년 만에 공개한 걸까. 박 총괄은 “데이터가 쌓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신인 선수들에게도 적용할 만큼 데이터가 모였기 때문”이라며 “이전까진 코치진이 느낌이나 경험에 의존해 선수를 육성했지만, 이제는 피칭랩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용한다. 선수들도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투구 폼 교정 등을 제안하면 더 잘 수긍한다. 수치로 보면 2군 투수들의 구속, 회전 효율 등이 크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학술지에 투고해 한국야구 육성 시스템의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롯데는 서울대와 협력해 쌓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해 올해가 끝나면 국제 저널에 투고할 계획이다.
피칭랩 도입은 성민규 단장이 앞장섰다. 그가 MLB 시카고 컵스에 근무하면서 효과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성 단장은 “지난 1년 동안 도출한 생체역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와 코치진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피칭랩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승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육성시스템 구축”이라며 “그동안 쌓인 데이터는 신인 선수 육성에 적용할 정도가 됐고, 부상을 예방하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