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BNK를 지휘하는 박정은 감독이 한국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사상 첫 여성 사령탑 우승의 기념탑을 쌓았다. 또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1997년 출범한 WKBL에서 여성 감독은 유영주 조혜진 이옥자 박정은 4명이었다. 20일 신한은행 사령탑으로 선임된 최윤아 감독까지 포함하면 5명이다. 이중 박 감독을 빼면 나머지 감독은 플레이오프(PO)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박 감독은 챔프전 우승까지 욕심내지 않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역사를 새롭게 쓰면서 올라왔다. 2021-2022시즌 여성 사령탑으로 처음 PO에 진출했다. 당시 KB에 2연패를 당해 첫 승 신고는 실패했다.
박 감독은 곧바로 다음 시즌 PO에 올라 삼성생명에 2연승을 거두고 첫 승을 신고한 것뿐만 아니라 챔프전에 오른 1호 여성 감독으로 역사에 남겼다. 여기서도 챔프전에서 우리은행에 3전 전패를 당해 챔프전 첫 승과 우승을 다음으로 미뤘다.
마침내 2년 후 박 감독은 챔프전에 진출해 첫 승뿐만 아니라 우승까지 이뤄냈다.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정상까지 올라간 것이다. 여기에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챔프전 우승을 경험한 1호 주인공이 된 것도 기념비적이다.
지금은 지도자로 유명하지만 박 감독의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하나의 별명이 떠오른다. 바로 명품 포워드다.
선수 시절로 돌아가면 박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였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 감독은 농구 명문 동주여중과 동주여고를 졸업하고 1994년 삼성생명 농구단에 입단했다. 2013년 은퇴할 때까지 19년 동안 삼성생명 유니폼 하나만 입고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4강 PO에서 3승 2패로 혈투를 벌인 삼성생명이 박 감독의 친정팀이다. BNK가 유독 약해서 징크스로 남았던 용인체육관이 박 감독에게 친숙한 곳이다. 현역 시절 번호인 11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돼 붙어 있고 2013년 11월 11일 박 감독이 공식 은퇴식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박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 박신자 전 감독의 조카다.
박 감독은 국가대표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 4번의 올림픽에 참가했고, 2000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선수 시절 1번 포인트가드부터 4번 파워포워드까지 두루 소화할 만큼 뛰어났지만 역시 본업인 포워드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다. 정규리그 486경기에 나와 평균 13.5점을 넣고 5.5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3점슛 1000개를 여자농구 최초로 달성했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모든 분야에 두루 능해 ‘명품 포워드’라는 별명이 붙었고 정규리그 베스트 5에 통산 9차례 선정됐다. PO와 챔피언결정전에도 107경기에 출전, 유일하게 100경기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규리그나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는 한 번도 뽑히지 못해 실력에 비해 상복이 따르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은퇴 후 삼성생명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행정가로 변신해 WKBL 경기운영부장과 경기운영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박 감독은 2021년 3월 BNK의 2대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박 감독은 첫 번째로 맞이한 2021-2022시즌 정규리그 4위로 PO에 진출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직전 시즌 5승 25패로 최하위에 떨어진 팀을 살려낸 것이다.
시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22-2023시즌 팀을 챔프전까지 올렸지만 이어진 2023-2024시즌 주요 선수들의 부진과 사무국 내의 갈등으로 정규리그에서 단 6승만 거두고 최하위로 추락했다.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이번 시즌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공부가 한 몫을 했다. 평소 남자농구뿐만 아니라 초·중·고 경기도 부지런히 찾아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 영상을 보면서 다양한 공격과 수비 패턴을 분석하고, BNK에 접목하기도 한다.
그 결과 챔프전에서 명장인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과 맞붙어 벤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박 감독은 시즌 중반 인터뷰에서 “나는 위성우 감독님을 넘어야 하는 도전자 입장이다.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과 수싸움이 중요한데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챔프전을 앞두고도 박 감독은 준비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뜻이다.
또한 박 감독은 ‘언니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경기 중 선수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선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해 작전 타임 때 종종 ‘언니’라는 단어를 직접 구사해 눈길을 끈 적도 있다.
박 감독은 “BNK에 와서 여러 가지 여성 최초 타이틀을 수집하고 있다. 부담스럽기도, 감사하기도 하다”며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여성 지도자 인식이 좋아질 것 같다. 책임감을 갖고 있는데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
부산 BNK 박정은 감독이 경기 중 손뼉을 치고 있다. 박 감독은 주로 손뼉을 치면서 선수들을 격려한다. WKBL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