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부산 경찰청 과학수사계 '다기능현장증거분석실' 입구에 쓰인 문구다. 프랑스 법의학자인 에드몽 로카르가 남긴 과학수사의 명언이기도 하다. 머리카락 하나, 피 한방울, 발자국 하나 등 미세한 흔적이 수사 과정에 중요한 단서가 됨을 강조한 말이다. 올해 초 부산 부산진경찰서가 전국 일선 경찰서 가운데 처음으로 '증거 분석 보관 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부산지방경찰청도 7월 다기능현장증거분석실 개소식을 앞두고 있다. '한국판 CSI(범죄현장조사)' 확산을 위한 과학수사의 요건을 알아보자.
# 기본은 현장 검증
과학수사란 지식과 장비 시설 등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행하는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모든 수사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설립된 후 국과수에서 담당하고 있는 법의학, 약독물, 문서감정, 화학·물리분석, 범죄심리 등 감정 분야와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담당하는 지문 족흔적 거짓말탐지 CCTV판독 등 감식으로 나뉜다. 2000년초 경찰청은 '감식과'를 '과학수사과'로 명칭을 변경하고 산하의 모든 경찰관서의 감식을 과학수사로 변경했다.
감정 감식뿐 아니라 범인의 식별, 증거수집 분석 등 수사의 모든 과정에 과학수사는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 중 현장검증은 사건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최초의 정보수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현장검증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과학수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부산경찰청 류삼영 과학수사계장은 "첨단 장비 구축을 통한 현장증거분석실 개소로 일일이 국과수에 의뢰할 필요없이 분석이 가능해 범인 검거의 정확성 신속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체가 발견되면 곧바로 사망시간 분석에 나선다. 이때 사용되는 방식 중 하나가 곤충을 이용하는 것이다. 부패 경과 시간에 따라 곤충의 종류가 다르며, 애벌레의 성장단계에 따른 몸길이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사체에서 발견된 곤충으로 사망장소뿐 아니라 시체 유기의 증거를 찾기도 한다.
사건현장의 발자국이나 머리카락도 중요한 증거다. 머리카락과 같은 털은 범죄자가 현장에 가장 남기기 쉬운 증거물이다. 털은 죽은 후에도 불이나 산 알칼리 등에 파괴되지 않는 한 오랫동안 남아 있어 인적 사항 파악에 유용하다. 털의 길이 굵기 모양 염색유무 등을 통해 범인 성별과 사건 정황, 범인의 출생지 분석에 사용되기도 한다. 지문은 최근 범죄현상에서 잘 이용되지 않는다. 범죄자들이 이미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충분히 대비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한 방법이 족적 분석이다. 부산진경찰서에도 발자국을 뚜렷하게 복원할 수 있는 족흔적채취기가 구비돼 있다.
# 치열, 혈흔, DNA 분석
치아 분석 역시 사체의 나이를 추정하는 좋은 수단이다. 치아는 두개골보다 더 오래간다. 불길 속에서도 온전하게 유지된다. 수사관은 치아의 상태, 마모 정도, 상아질 층의 두께, 없어진 치아에 따라 사망자의 나이, 직업, 버릇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한 예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이빨은 닳아 있고 때가 끼어 있다. 재단사는 이빨로 실을 끊는 버릇으로 치아 표면에 홈이 파여 있는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X선 촬영을 통해 치아의 성장 단계와 치과 치료 여부, 노령화 정도도 알 수 있어 범인 식별에 도움이 된다.
혈흔의 색을 보고 시간 경과 정도를 추정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흔은 암적색-적갈색-갈색-녹갈색-황록색-황색으로 변한다. 범인이 사건현장을 숨기기 위해 혈흔을 지우거나 없애버려도 감식할 수 있다. 루미놀 용액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핏자국이나 빨래가 끝난 옷에 남아 있는 미량의 혈액도 찾아낼 수 있다. 혈액이 1만~2만 배 희석된 경우 루미놀 용액을 뿌리면 어두운 곳에서 혈흔 부착부위가 형광을 띤다. 이는 루미놀을 뿌리면 피 속에 존재하는 적혈구의 헴이 촉매작용을 하여 화학 반응이 일어나 발광하는 것이다. 더 정확도를 필요로 할 땐 국과수에서 머리카락이나 혈흔 속의 DNA를 분석한다.
# 첨단 기기로 수사 업그레이드
과학수사는 과학의 폭넓은 응용으로 주변 학문 및 기기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과학수사의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원자력 기술 진보로 1960년대에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이 개발되었고, DNA의 구조에 관한 분자생물학의 연구성과로 범인 식별의 획기적인 방법인 유전자 감식 등이 개발되었다. 최근에는 레이저기술, 정보통신공학, 생체신호 감지 기술 등이 과학수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감정 감식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수사 재판 단계에서 사회학의 이용분야인 행태모델 연구 등도 새로운 과학수사 방법의 시도로 보고 있다.
감식장비에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디지털 파노라마 카메라, 빛의 파장을 이용해 족적이나 모발을 채취하는 휴대용 가변 광원 장비, 공기정화지문현출기 등이 최근 경찰청에서 도입하고 있는 첨단 장비들이다. 이외에도 조명확대경, 디지털 현미경, 지문자동검색시스템, 컴퓨터 몽타주시스템도 과학수사에 필수적인 장비다.
최근 국과수에 배치돼 있는 '안정동위원소 비율 질량분석기(IRMS)'와 '레이저 삭마 플라스마 분광기(LA ICPMS)'도 첨단 장비로 꼽힌다. IRMS는 아주 적은 분량의 시료라도 탄소 질소의 비율을 측정하는 기계다. 이 기계를 통해 폭발물의 제조지가 어디인지 가려낼 수 있다. LA ICPMS는 레이저로 표면을 살짝 갈아 나온 물질을 분석하는 기계로 눈에 안 보이는 미세한 유리가루나 각종 물질을 분석해 낸다.
개발 완료 중인 미세 생체신호 측정시스템 역시 거짓말 탐지 장치에 유용한 장비로 기대된다. 홍채의 미세한 떨림과 움직임을 관찰해 거짓말 유무를 알려준다. 이밖에 디지털 정보 획득 기반기술, 나노 바이오 융합기술 분석 등의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