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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현장의 증거물로부터 DNA 시료를 채집하는 모습. |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의 수박밭을 쑥대밭으로 만든 범인이 검거됐다. CCTV에 포착되거나 소지품을 떨어뜨려서가 아니라 DNA지문 분석에 의해서다. 대선 선거진영 간 오가는 흑색 비방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도 DNA 분석이 해결사 노릇을 했다. 이제 DNA 분석은 흉악범 검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지 불과 50년 만에 생활 속 곳곳에서 응용되고 있는 DNA 분석의 원리와 한계를 알아보자.
● 의미와 유래 = DNA는 한마디로 유전자 본체이다. 세포핵 속에 있는 DNA는 염기와 당, 인산으로 구성된 뉴클레오티드(핵산 단위)들이 길게 연결된 중합체이다. 이 때 염기로 알려진 일련의 분자들 즉 구아닌(G) 아데닌(A) 시토신(C) 티민(T)의 서열은 종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들 염기 서열의 분석을 통해 유전자 감식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DNA가 눈동자 머리카락 성격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일까. 인간 고유의 생김새와 특징은 모두 단백질에 의해 구현된다. 단백질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모양과 독특한 능력을 결정한다. DNA에는 세포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일정한 설계도가 있으며, 그중 특정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담긴 부분을 유전자라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각자 독특한 유전자 염기서열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 역시 각자의 DNA 염기서열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종간 개체간 특징을 나타내는 DNA의 염기서열을 DNA지문이라 한다. 수사기법으로 사용되는 DNA지문 분석은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체모 혈액 오줌 침 등에서 세포를 분리해 이뤄진다.
DNA분자 구조가 처음 밝혀진 것은 1953년 크리크와 왓슨에 의해서다. 이후 실제로 유전자 감식이 범죄수사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일어난 두번의 강간살해사건부터다. 당시 레스터대학은 유전자 감식 요청을 받아 두 피살자의 몸에서 발견된 정액으로 범인의 DNA 지문을 찾아냈다. 이를 계기로 1987년 처음으로 법정 증거능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법원은 1990년에야 DNA 감식 결과를 증거로 받아들이게 됐다.
● DNA 분석기법 = DNA지문은 어떻게 분석할까. DNA는 여러 조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조각이 반복되는 횟수와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 사람의 DNA를 잘라 반복되는 각 조각들을 분리한 다음, 전기영동기를 통해 DNA지문을 얻는다. 전기영동기에 넣으면 무게에 따라 DNA조각 이동위치가 달라져 크기 순서대로 배열된 띠 형태의 DNA 지문이 나타난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각자의 DNA 염기서열만 분석하면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포 하나에 담긴 유전정보는 30억 개 이상의 뉴클레오티드를 포함하고 있어 DNA 서열 전체를 분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전체 DNA가 아닌 개인마다 서로 다른 염기서열을 갖는 부위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친자 확인이나 신원확인에서도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특징을 이용해 판별한다. 반복되는 염기서열 부위는 수십 군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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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의 DNA(오른쪽)와 용의자들의 DNA지문을 비교한 결과 용의자 A가 범인으로 확인됨. |
DNA를 분석하려면 혈액이나 입천장을 살짝 긁어 세포를 추출하면 된다. 분석 정도에 따라 수십만개의 세포에 있는 DNA가 필요할 때도 있다. 요즘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을 이용해 원하는 부분의 DNA를 수시간 내에 필요한 양만큼 증폭하기도 한다. 이후 제한효소를 넣어 DNA 조각을 만든다. 제한효소는 짧은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부위를 가위처럼 자르는 역할을 한다. 현재까지 400개 이상의 제한효소가 발견되었으며 제한효소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DNA 끈을 끊는다. 이 DNA 조각을 전기 영동기에 넣으면 긴 띠 모양의 DNA 지문이 만들어진다.
● DNA 지문의 응용과 한계 = DNA 감식기법은 오차 확률 10억분의 1 정확도로 범인 검거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1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 DNA 분석 기술을 처음 사용했다. 사용 햇수는 20년이 안되지만 그 응용은 눈부실 정도로 발달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등 대형 재난때마다 DNA감식으로 훼손된 시신들의 신원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서울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능력은 프랑스 정부도 인정한 쾌거였다. 영아유기의 범인이 프랑스인 친부모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DNA 지문 분석 기술을 통해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 감식과 최동호 실장은 "당시 귀이개와 칫솔 등에 묻은 미세 세포로 DNA 추출 대조에 성공했다"며 "이는 우리나라가 증거채집 등 종합적 과학수사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DNA 지문은 과학수사뿐 아니라 친자확인, 장기이식 조직의 적합성 판정, 멸종동물 복원 등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현재 범죄자나 이민자를 대상으로 DNA 지문을 데이터베이스화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1995년 세계 최초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한 영국은 300만 명 이상의 범인을 검거하는데 사용했다.
하지만 DNA 분석도 만능은 아니다. DNA 판독 과정상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실수로 1000회 실험 중 12회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조사가 있다. 실제로 서투른 과학자들의 실수로 범인의 옷에 다른 사건의 용의자 DNA가 옮겨진 사례도 있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전기 영동에 의한 DNA 염기서열 분석법 역시 과정이 번거롭고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드는 단점이 있다. DNA 데이터베이스로 인한 사생활 침해와 유전자로 인간의 모든 것을 예단할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