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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오순환 |
철이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에 잠이 깨서 눈을 비비며 일어났어. 학교 가기 위해서는 더 누워 있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야. 세면대 앞에 서서 앙증맞은 작은 손바닥에 물을 퍼 올려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지. 이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고 옷을 입으면 돼. 빗을 든 오른손을 머리 쪽으로 올리려다가 어? 하면서 눈이 동그랗게 되었어. 글쎄, 거울 속이 이상하잖아? 개 한 마리가 거울 속에서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니겠어? 하얗고 긴 털이 가지런하고 맑은 눈을 끔뻑이는 것으로 보아 친구 집에서 본 하얀 개 말티즈가 틀림없는 거 같았어.
내가 잠이 덜 깼나? 손등으로 눈을 두 번씩이나 비비고 다시 봐도 거울 속에서는 개 한 마리가 우뚝 서서 마주보고 있는 거야. 철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로 갔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도 출근하기 위하여 서둘고 있었지. 아빠는 흘끔흘끔 시계를 보면서 면도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밥을 푸고 있었어. 할머니는 아빠의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고 계셨지.
"엄마, 엄마. 내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어."
엄마 잠시 고개를 돌렸지만 밥 푸는 일을 멈추지 않았지. 아빠도 면도를 계속하면서 철이를 잠시 보았을 뿐이야.
"봐요, 내 얼굴이 개가 되었다니까요."
"얘가 잠꼬대를 하고 있네. 몹쓸 꿈을 꿨나?"
상대도 안 해 주는 엄마, 아빠가 야속하기 짝이 없었어.
그러나 할머니가 다리미를 세우며 돌아보았지.
"아이고, 우리 강아지. 일어났구나."
철이는 할머니의 그 말이 무척 반가웠어. 얼굴이 강아지로 변한 것을 할머니가 비로소 알아주시는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할머니가 더욱 정겹게 보였단다.
"할머니, 내 얼굴이 거울 속에서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니까."
철이는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어.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우리 철이 얼굴 한번 보자."
할머니의 다독거림에 비로소 마음이 풀어졌어.
쉬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야. 반 동무들과 더불어 뜀박질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공놀이를 했지.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서 블록으로 성을 쌓던 생활은 먼 옛날이야기 같았지. 오늘만 해도 운동장에서 뛰노느라 모래 위에 이마의 땀을 백 방울쯤 흘렸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까져 빨간 피를 세 방울쯤 운동장에 남겼어. 대신 깔깔거리는 웃음꽃이 얼굴에 활짝 피었단다. 이 웃음꽃은 특별한 성질이 있거든. 바로 한 아이에게 피어나면 순식간에 다른 아이에게 전염이 되는 성질 말이지. 그래서 아이들은 화단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를 보고도 깔깔거리고, 머리칼에 붙은 티끌 하나를 보고도 배꼽이 빠져라고 웃거든. 얼굴의 웃음꽃 갯수만큼 아이들의 가슴엔 아침 이슬과도 같은 맑은 별빛이 총총히 박혀 갔지.
그런데 오늘은 좀 지나쳤나 봐. 한참 뛰놀고 한참 웃고 화단에서 죽은 잠자리를 물고 가는 개미 구경 한참 하다가 그만 공부시작 차임벨소리를 놓친 거야. 바삐 교실로 향했어. 다른 때 같았으면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복도에까지 들렸을 텐데 오늘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어. 느낌이 심상찮았지. 그래도 어쩌겠니? 교실에 들어가야지. 교실 출입문을 조심스레 열었어. 선생님이 책으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꾸중을 하고 계셨지.
"이제 너희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기들이 아니잖아? 초등학교 학생들이야. 학교에 왔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매일 노는 데나 정신이 빠져 있으면 되나? 이것 보라고. 공부 시작한 지가 언젠데 이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다니. 철이는 앞으로 나와!"
'선생님은 노처녀지만 히스테리는 부리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쳐 주시는 훌륭한 분이다.'
엄마의 말을 생각하면서 철이는 팔딱팔딱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어.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지. 아이들은 말 한 마디도 없었어. 모든 아이들의 눈이 자기에게로 향해 있음을 느꼈어.
"철이 네가 늦게 들어와서 다른 아이들까지 공부를 못하고 있잖아? 손바닥 맞아야 해. 손바닥 내."
선생님 얼굴을 보니 평소의 웃음이 없었어. 목소리까지 날카로웠어. 웃음은 고사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 겁이 났지. 그래서 고개를 돌렸어.
교실 벽에 붙어 있는 거울 속에 선생님의 모습이 얼핏 보였어. 그런데 통통한 선생님의 얼굴이 세모로 되더니 눈초리가 위로 찢어지는 게 아니겠니? 얼룩덜룩한 털까지 나 있는, 그것은 앙칼진 고양이 나비의 모습이었어. 철이는 뒷걸음질 쳤지.
"아악, 안 해. 안 갈 거야. 선생님은 고양이야. 무서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할머니는 철이를 꼭 안아 주었지.
"우리 예쁜 강아지가 놀랐겠구나. 사람은 가슴 속에 동물 한 마리씩을 기르고 있단다. 아름다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동물을, 남을 괴롭히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무서운 동물을 키우지. 우리 강아지가 가슴 속의 그 동물을 본 거야."
그러나 아빠, 엄마는 달랐어. 걱정을 많이 했단다. 노는 데만 재미를 붙여선 안 된다고도 생각했지. 이제 철이에게도 더 열심히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다짐했어.
"우리 철이는 엄마, 아빠 말을 참 잘 듣지?"
"으응, 엄마. 철이는 착하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금 힘들어도 견뎌야 해. 다 철이를 위한 일이니까 말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를 더 해야겠어."
철이의 동무들인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들이 수업 마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학원차를 타고 공부를 하러 갔지. 집으로 바로 가는 아이들은 몇 명 되지도 않아. 그렇게 학원을 가서는 영어, 바이올린, 미술, 컴퓨터를 배우고 엄마, 아빠보다도 늦게 집으로 가야 했어. 몸이 피곤해서 일기를 쓰다가 엎드려 잠이 들어 다음날 학교 가기 전에 후다닥 쓰곤 했어. 철이도 그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라는 것이었어.
"안갈 거야. 학원 다니기 싫어."
"우리 철이가 엄마, 아빠 말 들을 거야. 철이가 얼마나 착한데."
어쩔 도리가 없었지. 엄마, 아빠가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깨가 축 늘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거실에 걸린 거울 속에 순간적으로 엄마, 아빠가 비쳤지. 예쁘고 인자하던 평소의 모습 대신에 볼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시커먼 돼지의 모습이었어. 철이는 후딱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 이제 거울을 보기가 두려웠어.
또 여러 날이 흘렀어. 매일매일 학원을 가며 지내는 철이의 눈빛 속에는 예전의 맑은 별빛이 사라지고 없었어. 대신 피곤에 찌든 어두운 그림자가 새로 생겨났어. 거울 볼 여유도 없어 지내다가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던 철이는 끼아악, 기절할 만큼 놀랐단다. 흰 털과 맑은 눈빛을 한 말티즈가 아니라. 시커먼 털에 겁먹은 커다란 눈을 가진 개 요키가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이야. 학원 다니느라 찌들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철이는 슬펐단다.
그러니, 얘야. 거울일랑 함부로 보지 마라. 예쁜 얼굴이 털북숭이 강아지로 변했을 수도 있거든. 그렇다고, 뭐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지 싶다. 아무려면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마치면 바로 학원을 가는, 그런 생활을 해야만 하는 나라가 설마 우리 나라일 리가 있겠니? 지구상에는 나라도 많잖아. 머나먼 다른 나라 얘기겠지.
소설가 - 구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