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어른들을 위한 동화 <18> 거울을 보지 마라

거울 앞에 섰더니 얼굴이 강아지로 변해 있는거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6-11-09 10:52:13
  •  |   본지 3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삽화=오순환


철이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에 잠이 깨서 눈을 비비며 일어났어. 학교 가기 위해서는 더 누워 있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야. 세면대 앞에 서서 앙증맞은 작은 손바닥에 물을 퍼 올려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지. 이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고 옷을 입으면 돼. 빗을 든 오른손을 머리 쪽으로 올리려다가 어? 하면서 눈이 동그랗게 되었어. 글쎄, 거울 속이 이상하잖아? 개 한 마리가 거울 속에서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니겠어? 하얗고 긴 털이 가지런하고 맑은 눈을 끔뻑이는 것으로 보아 친구 집에서 본 하얀 개 말티즈가 틀림없는 거 같았어.

내가 잠이 덜 깼나? 손등으로 눈을 두 번씩이나 비비고 다시 봐도 거울 속에서는 개 한 마리가 우뚝 서서 마주보고 있는 거야. 철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로 갔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도 출근하기 위하여 서둘고 있었지. 아빠는 흘끔흘끔 시계를 보면서 면도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밥을 푸고 있었어. 할머니는 아빠의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고 계셨지.

"엄마, 엄마. 내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어."

엄마 잠시 고개를 돌렸지만 밥 푸는 일을 멈추지 않았지. 아빠도 면도를 계속하면서 철이를 잠시 보았을 뿐이야.

"봐요, 내 얼굴이 개가 되었다니까요."

"얘가 잠꼬대를 하고 있네. 몹쓸 꿈을 꿨나?"

상대도 안 해 주는 엄마, 아빠가 야속하기 짝이 없었어.

그러나 할머니가 다리미를 세우며 돌아보았지.

"아이고, 우리 강아지. 일어났구나."

철이는 할머니의 그 말이 무척 반가웠어. 얼굴이 강아지로 변한 것을 할머니가 비로소 알아주시는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할머니가 더욱 정겹게 보였단다.

"할머니, 내 얼굴이 거울 속에서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니까."

철이는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어.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우리 철이 얼굴 한번 보자."

할머니의 다독거림에 비로소 마음이 풀어졌어.

쉬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야. 반 동무들과 더불어 뜀박질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공놀이를 했지.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서 블록으로 성을 쌓던 생활은 먼 옛날이야기 같았지. 오늘만 해도 운동장에서 뛰노느라 모래 위에 이마의 땀을 백 방울쯤 흘렸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까져 빨간 피를 세 방울쯤 운동장에 남겼어. 대신 깔깔거리는 웃음꽃이 얼굴에 활짝 피었단다. 이 웃음꽃은 특별한 성질이 있거든. 바로 한 아이에게 피어나면 순식간에 다른 아이에게 전염이 되는 성질 말이지. 그래서 아이들은 화단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를 보고도 깔깔거리고, 머리칼에 붙은 티끌 하나를 보고도 배꼽이 빠져라고 웃거든. 얼굴의 웃음꽃 갯수만큼 아이들의 가슴엔 아침 이슬과도 같은 맑은 별빛이 총총히 박혀 갔지.

그런데 오늘은 좀 지나쳤나 봐. 한참 뛰놀고 한참 웃고 화단에서 죽은 잠자리를 물고 가는 개미 구경 한참 하다가 그만 공부시작 차임벨소리를 놓친 거야. 바삐 교실로 향했어. 다른 때 같았으면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복도에까지 들렸을 텐데 오늘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어. 느낌이 심상찮았지. 그래도 어쩌겠니? 교실에 들어가야지. 교실 출입문을 조심스레 열었어. 선생님이 책으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꾸중을 하고 계셨지.

"이제 너희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기들이 아니잖아? 초등학교 학생들이야. 학교에 왔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매일 노는 데나 정신이 빠져 있으면 되나? 이것 보라고. 공부 시작한 지가 언젠데 이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다니. 철이는 앞으로 나와!"

'선생님은 노처녀지만 히스테리는 부리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쳐 주시는 훌륭한 분이다.'

엄마의 말을 생각하면서 철이는 팔딱팔딱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어.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지. 아이들은 말 한 마디도 없었어. 모든 아이들의 눈이 자기에게로 향해 있음을 느꼈어.

"철이 네가 늦게 들어와서 다른 아이들까지 공부를 못하고 있잖아? 손바닥 맞아야 해. 손바닥 내."

선생님 얼굴을 보니 평소의 웃음이 없었어. 목소리까지 날카로웠어. 웃음은 고사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 겁이 났지. 그래서 고개를 돌렸어.

교실 벽에 붙어 있는 거울 속에 선생님의 모습이 얼핏 보였어. 그런데 통통한 선생님의 얼굴이 세모로 되더니 눈초리가 위로 찢어지는 게 아니겠니? 얼룩덜룩한 털까지 나 있는, 그것은 앙칼진 고양이 나비의 모습이었어. 철이는 뒷걸음질 쳤지.

"아악, 안 해. 안 갈 거야. 선생님은 고양이야. 무서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할머니는 철이를 꼭 안아 주었지.

"우리 예쁜 강아지가 놀랐겠구나. 사람은 가슴 속에 동물 한 마리씩을 기르고 있단다. 아름다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동물을, 남을 괴롭히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무서운 동물을 키우지. 우리 강아지가 가슴 속의 그 동물을 본 거야."

그러나 아빠, 엄마는 달랐어. 걱정을 많이 했단다. 노는 데만 재미를 붙여선 안 된다고도 생각했지. 이제 철이에게도 더 열심히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다짐했어.

"우리 철이는 엄마, 아빠 말을 참 잘 듣지?"

"으응, 엄마. 철이는 착하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금 힘들어도 견뎌야 해. 다 철이를 위한 일이니까 말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를 더 해야겠어."

철이의 동무들인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들이 수업 마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학원차를 타고 공부를 하러 갔지. 집으로 바로 가는 아이들은 몇 명 되지도 않아. 그렇게 학원을 가서는 영어, 바이올린, 미술, 컴퓨터를 배우고 엄마, 아빠보다도 늦게 집으로 가야 했어. 몸이 피곤해서 일기를 쓰다가 엎드려 잠이 들어 다음날 학교 가기 전에 후다닥 쓰곤 했어. 철이도 그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라는 것이었어.

"안갈 거야. 학원 다니기 싫어."

"우리 철이가 엄마, 아빠 말 들을 거야. 철이가 얼마나 착한데."

어쩔 도리가 없었지. 엄마, 아빠가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깨가 축 늘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거실에 걸린 거울 속에 순간적으로 엄마, 아빠가 비쳤지. 예쁘고 인자하던 평소의 모습 대신에 볼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시커먼 돼지의 모습이었어. 철이는 후딱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 이제 거울을 보기가 두려웠어.

또 여러 날이 흘렀어. 매일매일 학원을 가며 지내는 철이의 눈빛 속에는 예전의 맑은 별빛이 사라지고 없었어. 대신 피곤에 찌든 어두운 그림자가 새로 생겨났어. 거울 볼 여유도 없어 지내다가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던 철이는 끼아악, 기절할 만큼 놀랐단다. 흰 털과 맑은 눈빛을 한 말티즈가 아니라. 시커먼 털에 겁먹은 커다란 눈을 가진 개 요키가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이야. 학원 다니느라 찌들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철이는 슬펐단다.

그러니, 얘야. 거울일랑 함부로 보지 마라. 예쁜 얼굴이 털북숭이 강아지로 변했을 수도 있거든. 그렇다고, 뭐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지 싶다. 아무려면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마치면 바로 학원을 가는, 그런 생활을 해야만 하는 나라가 설마 우리 나라일 리가 있겠니? 지구상에는 나라도 많잖아. 머나먼 다른 나라 얘기겠지.

소설가 - 구영도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제주 천지연폭포서 사진 촬영 중 추락…50대 관광객 숨져
  2. 2올해 초과세수 '최소 50조원'…내년 미래대응기금 200조원대
  3. 3부산·울산·경남 흐리고 일부 지역은 비
  4. 4충남 부여 남서쪽서 규모 2.6 지진 발생
  5. 5만남 거부했다고 차에 감금 후 고속도로서 여자친구 때린 60대
  6. 6[속보] 박홍근 “호남 반도체, 기업 팔 비틀기 아냐…성과 내야 해”
  7. 7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8. 8“죽여버리겠다” 음주운전 출소 나흘만에 신고자 협박한 60대
  9. 9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10. 10추석 연휴 마지막날 정체 시작…부산→서울 5시간
  1. 1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2. 2오세훈 “李대통령 실거주 이어 실경작 집착…국민 싸울 대상 아냐”
  3. 3장동혁 “국민 분노 폭발 직전…재산 약탈중지하라”
  4. 4울산 북구·구의회, 노동자 권익 보호 위해 맞손 잡았다
  5. 5“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의심 신고 3년 새 46배 증가”
  6. 6[속보] 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에 “원칙 따라 대응”
  7. 7군·유엔사 ‘DMZ 지뢰 추정 폭발’ 현장 조사 절차 시작
  8. 8조희대 대법원장 '재제청 거부' 여진…여야 공방 계속
  9. 9李대통령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조속 재개해야”
  10. 10국힘, DMZ 지뢰사고 공세 지속…“증거유실 기다리나”
  1. 1올해 초과세수 '최소 50조원'…내년 미래대응기금 200조원대
  2. 2[속보] 박홍근 “호남 반도체, 기업 팔 비틀기 아냐…성과 내야 해”
  3. 3“문제 없을까?”… 공정위 퇴직자들, 대형 로펌에 대거 취업
  4. 4"미래기금 사업 131건 중 95%는 부처 요구대로…감액 6건 불과"
  5. 5숙박업 세금체납 4년간 3.4배↑…주요 업종 중 최대폭 증가
  6. 6‘말로만 자율주행 기술 육성’… 관련 부처 예산 오히려 삭감돼
  7. 7미국의 몽니?… 공식 발표 계속 미뤄지는 ‘대미(對美) 투자 1호’
  8. 84분기 제조업 경기전망 86, 전분기 대비 6P 상승
  9. 91243회 로또 복권 1등 12명…당첨금 각 25억 9252만 원씩
  10. 10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1. 1제주 천지연폭포서 사진 촬영 중 추락…50대 관광객 숨져
  2. 2부산·울산·경남 흐리고 일부 지역은 비
  3. 3충남 부여 남서쪽서 규모 2.6 지진 발생
  4. 4만남 거부했다고 차에 감금 후 고속도로서 여자친구 때린 60대
  5. 5“죽여버리겠다” 음주운전 출소 나흘만에 신고자 협박한 60대
  6. 6추석 연휴 마지막날 정체 시작…부산→서울 5시간
  7. 7‘서해피격 공무원 월북’ 수사 발표 해경총경, 직위해제 취소소송 승소
  8. 8중국 최고지도자 상호 중식당 테러…용의자 모두 중국인
  9. 9올해 7개월간 ‘사이버 도박’ 검거 10대 267명…작년 전체보다 많아
  10. 10소주 탄 분유 먹이고 딸 강제추행…자녀 3명 학대한 40대 징역 7년
  1. 1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2. 2남동헌,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
  3. 3[속보] 한국, 아시안게임 e스포츠 대전격투 첫 금메달
  4. 4남자 사브르, 일본에 45-44 역전승…아시안게임 단체전 4연패
  5. 5한국 야구, 중국 꺾고 결승 진출…27일 일본과 금메달 결정전
  6. 6한국 남자핸드볼, 중국 꺾고 8년 만에 아시안게임 4강
  7. 7[속보] 여자농구, 일본 꺾고 12년 만에 금메달…남녀 동반 우승
  8. 8[속보] ‘평균대 유망주’ 황서현,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금메달
  9. 9한국 여자 축구, 우즈벡에 6-3 승리로 준결승행
  10. 10류지현호, 일본에 0-5 영봉패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부산 야구장 미래는
비오면 그라운드·관중석 물난리…구단 시설 보강도 한계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