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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20> 황금이 있는 마을

금이 있다는 소문에 땅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6-11-23 10:44:34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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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오순환


아침이 오면, 산과 들에도 아름다운 물결이 인다. 과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들은 아침 햇살에 얼굴을 붉힌다.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들은 바람의 손결에 몸을 뒤챈다.

이토록 풍성하고 한가로운 산골마을에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말끔한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구두를 번쩍이며 산골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이장집 마당에는 까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엉거주춤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감히 그들을 헤집고 사랑방까지 가기가 머쓱했다. 그렇잖아도 사랑방 앞에는 사람들로 막혀 있었다.

"우리 마을엔 황금이 없습니다. 다들 돌아가세요. 괜히 촌사람들한테 헛바람 넣지 마시고. 제발, 돌아들 가세요!"

이장이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떠돌던 소문이 현실로 다가왔다.

"황금이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터져나왔다. 이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산골마을을 왈칵 뒤집어 놓았다.

그날 밤, 진수 할아버지인 강부자는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 참에 선산을 팔아서 옛날 만석꾼처럼 모양새 좀 갖추고 살자!"

"그렇지만, 아버님. 선산을 어찌 팔겠습니까?"

아들인 진수 아버지는 강경하게 말렸다.

"금을 시세보다 열 곱을 쳐준다니까 뭘 망설일 게 있느냐? 괜히 꾸물대다가 목돈을 놓친단 말이다! 어험!" 강부자는 아들의 의견을 제압하듯 큰 기침을 했다.

진수 아버지는 할 말을 없었다. 그 많던 재산을 자식들이 공부하랴 사업하랴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써버렸다. 진수 아버지는 한껏 투자한 사업이 망하자 스스로 산골로 돌아와 과수원을 경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황금바람이 불어왔다. 이 마을에 황금이 매장되어 있다고 돈 많은 사람들이 땅을 사러 왔다. 땅보다 땅 속에 있는 황금이 탐나서 땅값을 시세보다 열 곱이나 쳐주었다.

화목하고 인정 많기로 이름난 청솔마을은 황금이 있다는 말 때문에 두 패로 나뉘어졌다. 땅을 팔자는 사람들과 팔아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로 갈라졌다. 금이 있다는 사람들과 없다는 사람들로 나누어지고, 금이 있다면 우리가 금을 캐자는 무리와 절대로 땅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무리로 갈라졌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생각들이 갈가리 찢어지자 예로부터 착하고 인정 많은 청솔마을 사람들은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은 땅을 사자마자 황금을 캐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산과 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베어지고 뻘건 황토들이 드러났다. 마치 머리에 버짐이 핀 것처럼 푸른 산은 흉터투성이가 되어 갔다.

곧 추수할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과일나무들이 뿌리째 뽑혀졌다. 곧 거둬들일 곡식들도 열매를 맺힌 채로 까발려졌다. 조용하던 산골 마을은 온통 중장비의 기계소리에 떠나갈 듯했다. 그 맑디맑든 골물도 어느 새 벌건 황토 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아침마다 지저귀던 산새들도 벌써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지천으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나무가 쓰러진 만큼 사람들의 곧은 마음도 쓰러져갔다. 땅이 파헤쳐진 만큼 사람들의 인정도 메말라갔다. 산새 소리가 끊기자 사람들의 아침 인사도 사라졌다. 풀벌레 소리가 사라지자 사람들의 왕래도 끊어졌다. 골물이 더럽혀지자 사람들의 마음도 사악해져 갔다.

진수는 언제부턴가 혼자 학교로 가게 되었다. 돈에 눈이 어두워 땅을 팔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멀리 했다. 단짝이던 형규도 멀어졌고, 좋아했던 서윤이도 싫어했다. 그런데, 옛날에 미워했던 종인이와 아라와 친해졌다. 왜냐하면, 종인이 집과 아라 집도 땅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이들도 땅을 판 아이들과 팔지 않은 아이들로 갈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갈라진 아이들은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만나도 서로 콧방귀를 뀌며 토라졌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서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그마한 일에도 트집을 잡았다. 급기야는 티격태격 말다툼하다가 주먹이 오가는 싸움으로 번지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소용돌이 속에서 마을의 풍경은 멍들고 터지고 깨진 얼굴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맑고 고운 자연 환경이 까발려져 황폐화되어 갔다. 그러나 땅을 아무리 파도 황금은커녕 돌멩이만 나왔다. 외지인들은 황금을 찾기 위해 들인 돈과 노력이 허사였음을 깨닫자 마을사람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황금이 없는 마을이야! 우리가 속았어!"

외지인들은 땅값을 물어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땅을 판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또다시 이장집을 찾아들었다.

"이장님, 우리들 같은 무지랭이들이 저들을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법적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이장은 그들의 소행이 한없이 미웠지만, 그래도 자기 마을의 사람들이었기에 팽개칠 수는 없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두번 다시 헛된 욕심에 마음을 버리지 마시오. 예로부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고 했소."

"예, 이장님. 이장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이장은 마을 회관에 땅을 산 외지인들과 마을사람들을 모두 모았다. 마을회관을 벌집을 쑤셔놓은 듯 아수라장이 되었다. 외지인들은 외지인들대로 고함을 질러댔다. 땅을 판 사람들은 그들대로 웅성거렸다. 땅을 팔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수군거렸다.

이장은 사람들을 부릅뜬 눈으로 휘둘러보며 힘차게 말했다.

"좋습니다! 땅을 판 사람들은 땅을 산 사람들에게 돈을 물려주십시오!"

이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호성과 불만이 섞인 원망 소리가 들렸다.

"그럴 순 없습니다! 우리들은 정당한 절차로 땅을 팔았습니다! 억울합니다!"

땅을 판 사람들이 예서제서 고함을 쳤다. 이장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진정시켰다.

"조용히 하세요! 그 이유는, 황금이 있다고 팔았는데 황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옳습니다!"

땅을 산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돈을 돌려받기 전에 먼저 파헤친 땅을 원상태로 해놓고, 쓰러진 나무들도 본래대로 세워놓고, 작물들도 예전처럼 심어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까지 땅을 판 사람들은 돈을 돌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땅을 산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항의했고, 땅을 판 사람들은 얼싸안고 좋아라했다.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뒤끝의 상채기는 엄청났다. 황금을 찾느라 파헤친 산과 들은 흉터처럼 허물어지고 울창하던 숲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과일나무는 뿌리가 뽑히고 작물은 시들어 말라버렸다. 파헤쳐진 바위들은 분노처럼 나뒹굴고 골물은 황토 빛으로 울분을 토하듯 흘러내렸다.

이와 같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황폐해졌다. 땅을 판 사람들은 간신히 돈을 뺏기지는 않았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땅을 판 사람 중에는 벌써 대처로 떠난 사람도 있었다. 땅을 지킨 사람들도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토록 인심 좋던 사람들이 거칠어지고 삭막해졌다. 한번 금이 간 사람들의 마음은 좀처럼 아물 수가 없었다. 상처가 아물어도 딱지가 앉듯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미움의 앙금이 가라앉았다.

"우리 마을의 황금은 바로 우리들 마음이었어."

이장이 푸념조로 폐허가 된 마을풍경을 보며 내뱉었다.

동화작가 - 류 석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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