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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22> 까마귀와 까치

우두머리 까치는 결국 까마귀에게 도움을 청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6-12-07 11:46:59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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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오순환


까치마을에 솔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멀리 공중에서 한 점으로 떠 있더니 부드러운 비행으로 까치마을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숲 속에 숨어 솔개가 마을 근처로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까치들은 일제히 '까옥'거리며 날아 나왔다. 모두들 부리를 세워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듯 솔개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솔개는 까치들의 기세를 가볍게 피하면서 놀리기나 하듯 요리조리 날아다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우두머리 까치는 있는 힘을 다해 솔개에게 덤벼들었으나, 매번 쪼을 수 있는 건 허공뿐이었다. 솔개가 공중으로 솟구쳐 날아오르자, 우두머리 까치는 분주한 날갯짓으로 따라 오르려했으나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솔개는 우두머리 까치의 허둥대는 꼴이 가엾기나 하다는 듯, 공중에 멈춰서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더니 긴 곡선을 그리며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우두머리 까치는 닭 쫓던 개 신세로 솔개가 날아간 허공만 노려보다 까치들에게 말했다.

"솔개란 놈은 날래기로 말하자면 회오리바람보다 더 빠르고, 발톱의 날카로움은 능히 바위를 찍어 구멍 낼만하니 우리가 떼를 지어 달려든다 해도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저놈이 지 마음대로 우리 마을에 드나드는 꼴은 두 눈 뜨고 볼 수 없으니 아아, 이 분함을 어찌하면 풀 수 있을꼬? 누구 좋은 방법을 일러줄 까치가 그렇게도 없는가? 까옥."

모두들 날개로 이마만 문지를 뿐, 묘안을 내는 까치가 없었다. 우두머리 까치는 모여 앉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우리 까치 마을이 생긴 후로 지금처럼 풍족하게 산 적이 없건만 저 솔개 녀석 하나 제대로 요리하지 못하니 그간 쌓아 온 이 자존심을 온갖 잡새들이 얼마나 비웃을꼬! 생각만 하면 부아가 치밀어 날개죽지라도 꺾고 싶을 심정이로다. 그래, 진정 좋은 방법이 그렇게도 없더란 말이냐?"

그때 온몸을 검정으로 물들이고 까마귀 흉내 내기를 좋아하던 한 까치가 고개를 조아리며 나섰다.

"대장, 좋은 수가 있긴 있습니다만…, 우리 자존심은 잠시 접어두고 저 이웃 마을의 까마귀한테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까마귀는 우리와 달리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수 있고, 또 억센 부리도 있으니 솔개도 감히 덤비진 못할 겁니다. 예부터 '까마귀 노는 골에 솔개야 가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이는 솔개도 까마귀를 두려워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까옥 까옥 까아악."

"까마귀한테 도움을 청한다?"

"그렇지 않아도 까마귀 마을에 몇 년 동안 흉년이 들어 우리가 인정상 해마다 양식을 보내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까마귀도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그게 정 싫으시다면 우리 마을을 아예 까마귀 마을 근처로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솔개란 놈도 까마귀들이 무서워 감히 나타나질 못할 겁니다. 까아악."

평소에 까마귀들과 깊은 친분을 맺고 있던 한 까치가 건의하자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라며 맞장구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놀란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까치들도 있어 분위기는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가만 가만! 이 문제는 나 혼자 결정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로다. 나중에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일단 원로들과 상의해 보아야겠다. 내 돌아와 결정을 내리겠으니 그대들은 돌아가 쉬고 있으라."

우두머리 까치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경로당을 향했다. 그의 뒤로 "양식이나 축내는 영감들에게 묻긴 뭘 물어!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한 줄 모르고, 만날 한다는 소리가 옛날에는 이랬고 그때는 저랬고…"라며 빈정대는 젊은 까치들의 볼멘소리를 못 들은 체 걸음을 재촉했다.

"웬일이오? 우두머리 까치께서 이런 곳을 다 찾으시니…?"

"원로들이시여, 자문을 구하러 왔나이다. 지혜를 주소서." 우두머리 까치는 꺾이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숙여 말했다. "호! 자문이라? 늘 거리낌 없던 우두머리께서 이 늙은이들에게 자문을? 그래, 무슨 일이오?"

우두머리 까치는 그들의 말에 심기가 뒤틀렸으나 나중을 생각하고 그간 일들에 대해 까악거리며 말했다.

"뭐라고요! 까마귀에게 도움을 청하신다? 아무리 솔개의 출현이 자존심을 건드렸다 해도 그건 안 될 말이오. 다른 새들은 까마귀와 우리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형제지간이라 말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한 사냥터를 놓고 서로 피터지게 싸우질 않았소? 얼마나 많은 까치와 까마귀들이 죽거나 다쳤는지 아시오? 그런 까마귀에게 도움을? 아, 안되오. 안 되고말고."

게슴츠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인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 곁에서 돋보기안경을 끼고 신문을 읽고 있던 노인 까치가 한마디 거들었다. "우두머리 까치여, 잘 들으시오. 그대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오? 본디 솔개는 우리와 습성부터가 다르오. 먼저 먹이부터가 다르지 않소? 그들은 우리가 싫어하는 들쥐나 개구리를 잡아먹지만 우린 깨끗한 과일을 오히려 좋아하지 않소? 또 사는 곳도 그렇고. 원래부터 솔개는 우리와 다툼의 상대가 아닌 셈이오. 차라리 우리 몰래 어린 것들을 잡아먹는 뱀이라면 모를까 솔개는 아니지.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말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시오. 괜히 까마귀를 불러들여 또 다른 우환을 만들지 말고…."

"그리고 요즘 젊은 것들은 왜 그 모양이야. 세상이 어찌된 판인지 자기 고집만 내세울 줄 알지 어른 말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으니 말이야, 반포지은이란 좋은 풍습도 이젠 다 옛말이 되고 말았어, 옛말이."

그는 자문을 구하러 왔다가 혹만 붙인 셈으로 경로당을 나왔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온통 솔개만 가득 차 있었다. 자기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놈의 솔개만 없앨 수 있다면 지옥이라도 찾아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며칠 후, 결국 그는 많은 까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까마귀 마을로 갔다. 그날따라 눈발이 날리는 몹시 추운 날씨였다. 까마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응당 불을 때느라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올라야 했음에도 마을에는 온기가 하나 없었다. 가끔씩 돌아다니는 까마귀들은 윤기 없이 허기진 모습이었다. 오로지 한 곳에만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그곳이 바로 지도자 까마귀의 집이었다.

"어서 오시오 형제여! 무슨 바람이 불어 이 추운 날 우릴 찾으셨소?"

금방 식사를 마쳤는지 부리를 닦으며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지도자 까마귀의 깃털은 기름을 발라놓은 듯 반지르르 했다. 우두머리 까치는 그간 사정을 말하고 까마귀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으음, 솔개쯤이야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지. 우린 늘 충분한 전투훈련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말이오. 우리가 수고해 준 대가로 부유한 까치마을에선 무엇을 해 줄 수 있겠소?"

"무슨 말씀인지…?"

"아무래도 솔개와 싸우다보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피의 대가 말이오."

"아니, 그동안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당신네 마을에 보태준 양식이 얼만데 뭘 또 요구한단 말입니까! 까아옥." 우두머리 까치는 섭섭함에 앞서 화가 먼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그건 경우가 다르지. 우리가 옆에 있음으로 부엉이 같은 놈들도 까치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해 그 정도로 잘 살 수 있는 거요. 거기에 비하면 보내준 양식은….까악."

우두머리 까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까마귀를 믿고 찾아 왔는데 대가부터 챙기려 들다니, 일이 끝나면 또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건 아직 상의해 보지…."

"가서 다시 의논하고 오시오. 그리고 잊지 마시오. 우리 덕에 그대들도 살 수 있다는 걸."

우두머리 까치는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며 돌아 나오다 화들짝 놀랐다. 지도자 까마귀의 뒷자리에 죽은 까치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 엿보였다. 아, 그렇다면 아까 까마귀가 먹고 있었던 것은…! 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까옥!

소설가 - 문 성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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