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삽화=오순환 |
"사루짱, 혼자 심심했지?"
학교에서 돌아온 선미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루짱을 집어 들며 말했다. 사루짱이 방긋 웃었다. 선미도 덩달아 방긋 웃었다. 사루짱이 웃자 '앞으로 나란히'도 모른다고 오늘 체육시간에 짝지에게 놀림을 받아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사루짱은 도모애 할머니가 주신 오마모리-손으로 나무를 정성 들여 깎아 만든 원숭이 모양이다. 원래는 도모애 할머니가 어렸을 적에 아빠로부터 받은 나무 인형인데, 몸에 지니고 다니면 항상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귀한 사루짱을 선미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선물로 주신 거다.
"그래. 정말 심심했어. 선미야, 학교에 가니까 좋지? 너희 나라 학교니까."
너희 나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선미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일본 시립유치원에 다닐 때 사귄 도모애가 그리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어린이들은 모두 친절하게 잘 대하여 주었고 뭐든 잘 가르쳐 주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게 뭐야? 마치 바보나라에서 온 아이처럼 쳐다보고. 반쪽발이라고 놀려대고.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무리 귀 기울여 들으려 해도 알 수도 없고. 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얘, 하지만 너의 나라는 한국이야. 한국인은 한국을 잘 알아야 해. 그러고 나서…."
선미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선미야, 왜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니?"
사루짱이 깜짝 놀라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자 선미는 도리질을 했다.
"아냐. 그런 게 아냐. 도모애가 생각나서 그래."
이번에는 사루짱이 시무룩해진다. 언제나 학교에 갔다 오면 하룻동안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모두 말해주던 도모애다. 잠시 도모애 생각에 우울해 있던 사루짱이 정신을 차리고 선미를 쳐다본다. 선미도 여전히 사루짱을 넋 잃은 눈동자로 쳐다보고만 있다. '오늘 학교에 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틀림없어 어떡하지?' 사루짱이 선미를 쳐다보며 방긋 웃어 보기도하고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책상 위를 굴러도 보았다. 그러나 선미는 아무 반응이 없이 시큰둥하다.
"선미야, 놀자"
옆집에 사는 채은이가 불렀다. 선미는 무슨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어 듣지를 못한 것인지 가만히 있다.
"선미야 뭐하니? 집에 없어?"
문 앞까지 온 채은이가 선미를 부른다. 사루짱이 멍청하게 걸상에 앉아있는 선미 모습에, "선미야, 누가 왔잖아"했다.
"아! 채은아."
그때서야 선미는 깜짝 놀라 사루짱을 책상 위에 굴러놓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쳇, 친구가 오니까 나는 안중에도 없나봐.' 사루짱은 책상 위를 또르르 구르며 투덜거리다 옆으로 누웠다.
"선미야, 우리 같이 놀래?"
"그래, 좋아."
'흥! 난,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친구가 좋긴 좋은가 보네.
무궁화 꽃이 활짝 피어있는 빈터에는 아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어! 선미야, 너 나왔어? 우리 같이 놀자."
"무슨 놀이하며 놀 거야?"
"무슨 놀이할까?"
아이들이 모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자"하며 떠들어댄다.
"채은아, 무궁화 꽃이 피었다가 뭐야?"
선미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가 채은이에게 물었다. 채은이는 열심히 설명해 주지만 그래도 선미는 잘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이끌려 놀이를 하게 되었다. 처음 술래가 된 아이는 준영이다. 준영이가 벽에 얼굴을 맞대어 손으로 눈을 가리고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말하는 동안 모두들 살금살금 걸어가다 말이 끝나고 술래가 획 뒤돌아보자 모두들 발걸음을 그 자리에 딱 멈춘다. 선미는 아이들과 같이 멈추질 않고 재미있어하며 무조건 계속 걸어 나간다.
"아웃! 야! 선미가 술래다."
갑자기 준영이와 동시에 아이들이 고함을 질러대니 선미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쟤가 왜 저래?' 아이들은 선미가 참 이상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호 아냐.' 선미가 울먹이며 가려고 한다.
"왜 그래? 선미야?"
깜짝 놀란 채은이가 달려오며 물었다.
"난 안 놀래."
"싫으면 관 둬라."
"쳇 재수 없어. 우리 끼리 놀자."
선미가 훌쩍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등 뒤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는 술래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선미야. 왜 그래? 누가 때렸니?"
사루짱이 선미 책상 위에 옆으로 누워 있다 울고 들어오는 선미를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선미는 울먹이며 말했다. 사루짱은 선미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선미야, 친구들이 끼워주지 않았어?"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럼 뭐야? 궁금해. 속 시원히 말해 봐."
"친구들이 나더러 '아호'래."
선미는 '아호'라고 해놓고는 서러움이 북받쳐 큰 소리로 운다. '아호'란 일본말인데 우리말로는 바보라는 거다. '아호라고? 여기는 한국인데 한국 어린이들이 어떻게 아호를 알았을까?' 사루짱은 참 신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알 길이 없다. 그때 마침 시장에 갔던 엄마가 들어오셨다.
"선미야, 왜 울고 있니? 무슨 일 있었어?"
"으앙!"
선미는 엄마 말에 더욱 서럽게 운다. 엄마는 깜짝 놀라 선미를 다그친다.
"왜, 왜 그래? 왜 울어?"
엄마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쩔쩔매며 선미를 달래보지만 막무가내다.
"울지만 말고 말해 보라니까."
선미가 한참동안 서럽게 울다 훌쩍이며 말한다.
"친구들이 흑흑! 나보고 흑흑! '아호'라잖아.
"뭐? 친구들이 너더러 '아호'라고 했어?"
"그래. '아호'라고 했단 말야."
선미는 엄마에게 화풀이하듯 말해 놓고는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엄마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괴로웠다. 아빠를 따라 일본에 가서 3년여 동안 살다온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된 적은 없었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힘들어하는 선미를 보니 엄마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선미의 이모네가 내년에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보내겠다고 야단법석이니 그 애들이 캐나다에 갔다 돌아왔을 때, 선미처럼 그 동안 동떨어졌던 한국과의 거리를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를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했다. 엄마는 한참을 망설이다 선미 옆에 살며시 다가갔다.
'그런 작은 일에 울면 어떡하니? 앞으로 학교생활은 어떻게 할 거니? 우리 선미 힘내자. 응!' 울다가 잠든 선미를 내려다보고 있던 엄마는 선미의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선미의 가슴에 분홍빛 무궁화 꽃이 활짝 피어나길…'.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듣던 사루짱도 두 손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동화작가 - 최 상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