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때문에 한 번 고생을 해보니, 음식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겠더라구요. 몸에 좋은 음식을 찾다보니 이곳을 알게 됐지요."
화승그룹 고영립 총괄 부회장이 소개한 곳은 부산에서 약간 벗어난 추어탕집. 경남 양산시 웅상읍 덕계리 천불사 사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하씨 추어탕'이라는 허름한 간판을 찾아낸 순간 기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시골집 같은 건물에 간판도 엉성하게 걸려 있었다. 솔직히 '어서 오십시오'하며 손님들에게 손짓하는 음식점은 아닌 듯했다.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고 부회장은 '허허' 하며 웃음부터 건넸다. '일단 먹어보자'는 표정이었다. 손글씨로 허술하게 적어놓은 메뉴판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요즘은 된장찌개에 더 맛을 들였다"며 이 집 대표 메뉴인 추어탕과 함께 돼지고기 된장찌개를 시켰다.
고 부회장은 "시골 음식입니다. 어릴 때 먹던 어머니의 맛이죠. 음식도 요즘엔 웰빙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음식을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밑반찬부터 나왔다. 손두부, 무채, 파김치, 쌈 등 방금 밭에서 나온 듯한 시골식 반찬이었다. 보리밥에 이어 냄비만큼 큰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배달됐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여태껏 먹어본 된장찌개와는 확연히 다를 거라며 빨리 맛보기를 권했다. 국자로 찌개를 덜어 맛을 봤다. 얼큰하면서도 고소했다. 한 술 더 떴다. 깊고 매끈한 맛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자 주먹만한 크기의 감자와 두부, 돼지고기도 적당히 익어 부드러운 맛을 더해줬다.
기자의 표정에 만족한 듯 고 부회장은 "비벼 먹으면 맛있다"며 종업원에게 그릇을 내달라고 했다. 비빔그릇과 함께 고추장과 참기름이 나왔다. 그는 보리밥 한 그릇을 통째로 담은 뒤 물김치와 무채에 찌개를 덜어 쓱삭쓱삭 비볐다.
밀로 만든 고추장과 토종 참깨로 만들었다는 참기름은 새콤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냈다. 그는 어느새 땀을 흘렸는지 손수건을 꺼내 닦아내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버렸다.
추어탕도 나왔다. 작은 뚝배기에 부추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걸쭉하고 진한 경상도식 추어탕과 달리 깔끔하고 개운했다. 기자 역시 찌개를 먹다보니 뒤늦게 나온 추어탕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 듯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고 부회장은 이곳을 알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2004년 그는 큰 병을 앓았다. 그때 몸무게가 19㎏이나 빠졌다. 다행히 병을 이겨내 '암 스트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빨리 몸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에 추어탕을 먹었는데 직접 발품을 팔아 발굴해낸 곳 중 하나가 이곳이다. 친한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접대할 손님들도 데려간다. 하지만 오해가 없도록 사전에 설명을 해놓는다고. 음식점의 겉과 속이 다른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려 준다.
"겉이 초라해도 한 번 와보면 다들 만족합니다. 이왕이면 저도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게 하고 싶으니까 겉만 화려하고 비싼 곳보다는 이곳을 추천하지요."
그는 지나치게 예의를 갖춰 먹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겉은 화려해보여도 속은 소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소박한 음식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면서 발견한 보물을 나눠주는 그의 모습 덕분에 양산까지 간 걸음이 아깝지 않았다.
사진=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