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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오순환 |
착하고/작은 것이/알고 보면 참고 견디는 힘이 세다./그들이 지닌 희망은/결코 저물지 않는다./그들은 오늘 보다 언제나 내일을 꿈꾸니까.
"공설운동장 어느 쪽으로 가요?"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윤정이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코앞에 놓고 묻나? 조기 조게 바로 공설운동장이다."
할아버지는 등에 진 배낭을 추스르며 알려 주었다.
"고맙습니다."
회색빛 큰문을 향해 서면서 머리를 숙였다.
"꼬맹이들 뜀박질 하는 것 구경하려고?"
할아버지는 초록빛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선 윤정이 등에다 혼자 말을 하듯 던졌다.
"내 동생 찾으러 가요"
윤정이는 마침 학교가 개교기념일이라 양어머니 몰래 동생 태정이를 만나려고 집을 나섰다.
윤정이네는 이산가족이다. 슬픈 이산가족이다.
아버지는 노숙자로 서울 하늘아래서 떠돌고 있다. 어머니는 돈 벌면 다시 만나자는 쪽지 한 장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고 동생 태정이는 애육원에 맡겨졌다. 윤정이는 아버지가 거래하던 농협지점장 집으로 입양되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신호등에 초록 불빛이 들어왔다.
공설운동장 안쪽 들머리에는 김밥장사 얼음장사 솜사탕장사 떡 장사 닭 꼬지 핫도그 장사 스무나무 명이 조붓한 길을 만들어 놓고 마주 앉아 있었다. 윤정이는 주머니 속에 넣어 온 삼천 원을 꺼냈다.
"입에 넣으면 절로 꿀떡 꿀떡 넘어가는 의령 망개떡. 한 상자에 삼천원 받아야 하는데 이천 원에 줄께 사라."
의령 망개떡이라는 말에 윤정이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가 한 봉지를 샀다. 망개떡은 작고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열개가 한 줄로 나란히 줄 서 있었다.
"우리 망개떡 하고는 상자가 다르네."
망개떡을 유심히 살피며 윤정이는 누가 옆에 있기나 하는 것처럼 말했다. 윤정이네는 2년 전만 해도 의령에서 망개떡 공장을 세워 재미가 쏠쏠했다.
'혼자 잘 살면 뭐하냐! 같이 살아야지'. 아버지는 친구의 빚 보증을 섰다 건설회사가 망하는 통에 도미노 현상으로 줄줄이 무너졌다. 망개떡 집이랑 집과 살림도구를 몽땅 빼앗기고 뿔뿔이 흩어졌다.
뿌연 안개 같은 것이 눈앞을 가려 윤정이는 걸음을 옮겨 놓을 수가 없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문질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물을 한 병 사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운동장 트랙에는 키 낮은 아이들이 2천 미터 장거리 경주를 하고 있었다. 경기는 누가 일등이며 누가 꼴찌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아이들 속에서 노랑 조끼 러닝에 초록 글씨로 3번이라는 등번호를 달고 뛰는 아이가 눈에 들어 왔다. 헐렁한 검은 팬티를 입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힘겹게 뛰는 아이가 바로 동생 태정이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가슴이 찡하니 아팠다.
"태정아!"
뜨거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윤정이는 다가갔다. 일 년 만에 만나는 동생 태정이는 야윌 대로 야위고 지쳐있었다. 태정이는 온 몸에 땀. 땀이었다.
"무물!"
윤정이는 숨이 차 어쩔 줄 모르는 태정이를 따라가며 물병을 내밀었다.
"삼키지 말고 입만 가셔…."
"…"
숨을 헉헉거리며 뛰는 태정이는 동공이 풀어져 있었다. 동생 태정이를 보조 해주려고 같이 뛰던 윤정이도 쓰러질 것 같아 손을 내밀었다.
"잡지마"
손을 뿌리치며 태정이는 화난 듯 말했다.
"기권해라. 기권!"
동생이 가엾고 안쓰러워 윤정이는 소리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태정이는 계속 뛰었다. 앞인지 뒤인지 알 수는 없으나 두 명의 어린이가 선 안에 쓰러졌다. 인솔해 온 선생이 달려가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너도 쓰러져. 쓰러져."
"…"
태정이는 아무런 대꾸 없이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뛰고 있었다. 태정이의 입가에는 흰 거품이 물려 있었다.
"쓰러지란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망개떡 먹게…."
태정이와 같이 뛰며 윤정이는 안쓰러워 울었다. 태정이가 손을 내밀었다. 윤정이는 물을 달라는 줄 알고 물병을 내밀었다. 태정이는 받지 않았다. 비닐봉지 속 망개떡 하나를 집어 내 주었다. 태정이는 망개떡을 입에 물었다. 뛰었다.
'오우 기적'
망개떡을 입에 문 태정이는 거짓말처럼 기운을 내어 뛰었다. 남은 세 바퀴를 기운차게 뛰었다.
"결승선에 들어선 등번호 3번에 박수를 주십시오. 더~ 크게, 더…꼴인!"
박수 소리가 어지럽게 났다. 안내 방송은 운동장을 흔들었다. 흰 테이프가 가슴에 닿은 순간 태정이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잘했어. 잘했어?"
인솔선생이 와서 번데기처럼 꼬꾸라져 있는 태정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누가 우리 태정이를 육상 시켰어요?"
앙칼진 목소리로 윤정이는 물었다.
"난 아니야, 작년부터 태정이가 시켜달라고, 사정을 해서 육상부에 들어오게 됐고, 학교 장거리 선수로 뽑혀 군 대표 선발 경기에 온 것이야."
얼굴이 까만 인솔 선생은 태정이를 안고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대답했다. 한참 동안 태정이는 숨고르기를 했다. 신기했다. 태정이가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뛸 때 뭐라고 했어?"
"쓰러지라고 했어."
"와? 누나 맞어?"
"태정이 넌, 내가 20분 앞선 누나라고 누나 취급을 하지 않잖아."
"그래서 포기하라고…"
"야! 0점 1초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어. 네가 지금 달리기 하면서도 시간의 소중함을 몰라?! 난, 네 누나야 누나!"
"…"
"넌, 내말을 바로 듣지 않고 반대로 듣잖아. 청개구리도 아니면서"
"그랬었구나. 계속 뛰라고…"
"야! 내 동생 태정이 빡시다. 빡셔!"
윤정이는 태정이의 연약한 등을 토닥이며 칭찬했다.
"피이…"
태정이는 입술이 왼쪽으로 실룩했다. 윤정이는 대꾸를 하지 않고 망개떡을 내밀었다.
"선생님도 잡수세요. 망개떡입니다."
태정이가 망개떡 두 개를 집어 선생님 앞으로 내밀었다. 선생님은 선뜻 받지 않고 망개떡을 내미는 태정이의 땀 젖은 구릿빛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너 먹어"
"이래도 의령 망개떡이랍니다!"
윤정이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인솔선생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 먹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하나 씩 나눠주었다.
"옴마!"
망개떡을 입에 문 태정이가 놀랐다. 꿈길처럼 윤정이 바로 뒤에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옴마가 어떻게 아시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태정이가 떠듬거리듯 말했다.
"애미는 다 안다. 뻐꾸기도 제 새끼 어디 있는가를 아는데, 어째 애미가 되어 자슥 어디에서 무얼 하는가를 모르겄냐? 아이고 내 새끼 장하다. 장해!"
어머니는 울었다. 누가 먼저라고 말 할 수 없이 셋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그렇게 서 있었다.
동화작가 - 임 신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