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 저 술집, 우리 동네 ○○○○네"(영화 '사생결단' 중). "저 끊어진 다리, 구포대굔데"(영화 '가면' 중).
수년 새 한국영화를 본 부산시민들이라면 심심찮게 맞닥뜨렸을 상황이다. 긴가민가해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의 장소협찬을 살펴보면 아니나 다를까, 단골이던 연산교차로 부근의 술집 이름이 나오는가 하면 이제는 통행이 금지된 구포대교를 자막으로 확인하게 된다. 또는 김민준과 주진모(영화 '사랑' 중)가 낡은 건물 앞에서 칼싸움을 벌이던 장면은 실은 국제시장 상가에서 찍었다는 걸 알게 되면 왠지 친근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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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추격자' 석재소 장면은 범어사 인근 명륜석재소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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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의 절반 이상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불황 가운데에도 2006년 수준인 43편의 장편극영화가 부산에서 촬영이 완료됐으며, 이는 80여 편으로 추산되는 국내 제작영화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여기에는 1960~1970년대 달동네 풍경과 첨단 빌딩이 어우러진 도심, 바다와 산, 강과 철새도래지 등이 함께 있는 천혜의 환경에다 모두 2000여 장소 3만5000장의 사진이 구축돼 있는 로케이션 촬영지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 최근 개봉된 영화를 중심으로 꼭꼭 숨어있는 부산의 로케이션지를 부산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담당자들과 함께 찾아봤다.
지금 한국영화는 지난 14일 개봉한 '추격자' 덕택에 모처럼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김윤석 하정우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탄탄한 줄거리에 힘입어 개봉 10일 만에 18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이런 선전으로 한국영화의 극장 점유율도 60%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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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븐데이즈' 고가도로 장면을 찍은 곳은 동구 부산진시장 부근 고가도로다. |
영화 중반쯤에서 경찰들이 범인(하정우 분)의 증언에 따라 시신이 묻혀 있다는 석재소를 미친 듯 파내려가는 반면, 이곳이 아님을 감지한 포주(김윤석)가 곡괭이를 휘두르는 장면, 눈치챘는가. 범어사 인근의 명륜 석재소다. 대부분의 석재소가 도심 외곽에 위치해 허허벌판만 펼쳐져 있는 탓에 고층빌딩과 주택가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이야말로 전국을 뒤지던 제작팀에게는 가뭄 뒤 단비와도 같았다.
팜므파탈(요부)로 변신한 손예진이 국제적 소매치기의 리더(장미 역)로 나온 '무방비도시'. 초반부 일본 오사카 역에서 한창 작업 중이던 손예진이 가방 주인에게 들키자 그의 부하가 칼을 휘둘렀던 그곳은 지하철 3호선(호포선)의 '증산역사'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증산역을 오사카역으로 세팅해 촬영을 마쳤던 것. 감쪽같았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증산역의 출입구 공사가 채 끝나지 않아 고속도로를 네 바퀴나 돌며 겨우 입구를 찾는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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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면' 엔딩 장면을 촬영한 구포다리. |
영화 '세븐데이즈'는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일주일 만에 사형수의 무죄를 이끌어내는 한 여자 변호사(김윤진 분·원신연 감독)의 이야기다. 경찰의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추격전을 벌이던 김윤진이 고가도로 한복판에서 내린 뒤 자동차 열쇠를 다리 밑으로 던졌다. 동구 부산진시장 부근의 고가도로다.
여기도 우여곡절이 많다. '촬영의 메카'인 부산일지라도 상습 정체지역인 데다 통행량 폭주로 시달리는 이곳을 막기엔 역부족. 하지만 우연히도 촬영 시기와 맞물려 도로가 공사에 들어갔고, 그 틈을 타 무사히 찍을 수 있었다. '가발' '세븐데이즈'를 부산에서 촬영한 원신연 감독은 차기작도 부산에서 찍겠다는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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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지막 선물' 에서 신현준이 팬티바람으로 도망가는 장면을 찍은 동구 상해거리. |
올 초에 개봉했던 '가면'(김강우·김민선 주연)은 끊어진 구포다리 위에서 촬영을 강행했다. 김강우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수경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로 뛰어드는 엔딩 장면이 여기서 진행됐다. 건설안전시험사업소의 안전진단을 받은 뒤에야 촬영 승인이 났던 구포다리 위 촬영은 로케이션팀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위험한 장소였다고. 이외 '마지막 선물'에서 신현준이 팬티바람으로 도망가는 상해거리(부산 동구), '더 게임'의 신하균이 비를 맞고 들어서던 시장관사(부산 수영구 남천동) 등도 '우리 동네' 촬영소다. 부산영상위 양성영 로케이션팀장은 "최근에는 병원이나 카페 등은 물론 개인이 소유한 무인도나 갤러리 등을 영화 촬영지로 빌려 주겠다는 분들이 많다"며 "영화도시 부산의 이미지가 날로 커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