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동물들이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몸을 숨기는 일이다. 그 방법은 동물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한평생 동안 숨어서 사는 종이 있는가 하면 아주 위급할 때만 몸을 숨기는 종도 있다. 또 어떤 종은 먹잇감을 노리기 위해 주변 환경에 몸의 색을 맞춘 채 숨어들기도 한다. 방어를 위해서든 사냥을 위해서든 몸을 숨기는 행동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셈이다. 몸을 숨기는 바다동물들 중 대표적인 종들을 소개한다.
■베도라치와 망둥이
산호나 패류의 껍데기, 바위틈 등을 보금자리로 삼는 작은 물고기들이 더러 있지만 베도라치 만큼 주어진 여건을 적절히 이용하는 물고기도 드물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빈 병이나 파이프 조각 등을 살펴보면 그 속에 들어 있는 베도라치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몸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구멍 속으로 숨어들지만 잠시 후면 머리를 쑥 내밀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살핀다. 대부분 종의 크기가 10㎝ 이내이며 서식 영역은 우리나라 연안의 암반 지대에서부터 열대의 산호초 지역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편이다.
베도라치 이야기를 하면 같은 농어목에 속하는 망둥이를 빼놓을 수 없다. 망둥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고기 중에서 가장 많은 종을 가진 흔한 물고기이다. 문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전 세계적으로 600여종, 우리나라에는 문절망둑과 말뚝망둥, 짱뚱어 등 42종 정도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도라치와 망둥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베도라치가 몸 전체를 덮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하나의 등지느러미를 가진 것에 비해 망둥이의 등지느러미는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베도라치들이 앞머리를 장식하는 특이한 돌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망둥이의 얼굴은 매끈한 편이다. 겉모양이 비슷한 두 종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베도라치와 달리 망둥이는 스스로 집을 짓는다는 데 있다. 위기를 느낀 망둥이는 재빠르게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기는데 이때 바닥에 흙먼지가 일어나면서 시야가 가려진다. 이 모습은 마치 포식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연막처럼 보인다. 집을 짓는 습성을 놓고 보면 망둥이 중에서 짱뚱어가 대표격이다.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사는 짱뚱어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구멍 중간에 별도의 구멍을 몇 개 뚫어두는데 이를 비상구로 이용한다.
■꽃갯지렁이와 석회관갯지렁이
환형동물에 속하는 갯지렁이는 갯벌이나 조간대의 바위에서부터 수심 20m 이내의 얕은 바다에 집중적으로 서식한다. 이들은 크게 갯벌에 사는 갯지렁이류와 돌산호, 해면, 조개껍데기 등에 구멍을 뚫고 사는 꽃갯지렁이류와 석회관갯지렁이류로 나눌 수 있다. 이중 꽃갯지렁이류와 석회관갯지렁이류는 평생 한자리에서 고착생활을 한다. 이들은 몸의 대부분을 구멍 속에 숨긴 채 아름다운 색깔로 치장된 먼지털이 같이 생긴 아가미 깃털을 밖으로 내밀고 있다. 아가미 깃털은 호흡에 이용될 뿐 아니라 물에 떠다니는 플랑크톤을 걸러 잡는 역할을 한다. 물결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아가미 깃털은 위협을 느끼면 관 속으로 움츠러드는데, 그 동작이 얼마나 순간적인지 놀랄 정도이다. 아가미 깃털을 말아 넣고 나면 뭉텅한 관만 덩그러니 남아 조금 전의 화려함은 볼 수 없게 된다. 한번 몸을 숨긴 아가미 깃털을 다시 관찰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드라마틱한 곰치
열대 바다의 드라마틱한 포식자 곰치는 대부분 시간을 굴이나 바위틈에 숨어 지낸다. 그런데 이런 습성은 방어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냥을 위해서라고 봐야한다. 곰치는 바위틈 밖으로 한 뼘 정도 크기의 머리만 내밀고 있는데 물고기들이 만만하게 보고 가까이 갔다가는 큰 화를 당한다. 바위틈 속에 숨겨둔 1~1.5m에 이르는 길쭉한 몸이 '쭈욱' 뻗어 나오면서 날카로운 이빨로 쐐기 박듯 물어버리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곰치의 공격은 피할 방법이 없다. 곰치는 바위틈이라는 보금자리를 놓고 문어와 앙숙지간이다. 적당한 크기의 바위틈은 곰치와 문어 양쪽 다에게 멋진 보금자리가 되기에 이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문어에게도 날카로운 이빨이 있지만 곰치를 상대하기에는 벅차다. 누가 이기든 한쪽은 그곳을 떠나야 한다.
■ 구멍 속으로 숨어드는 가든장어
모래바닥 면에 구멍을 뚫고 사는 가든장어(Garden eel)는 예민한 동물이다. 물의 파장 변화나 작은 위협만 감지되어도 밖으로 내밀고 있는 머리마저 숨겨버린다. 이 때문에 같은 장소를 찾더라도 가든장어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바다로 들어갈 때부터 주의 깊게 바닥을 살피는 사람은 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가든장어를 관찰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든장어가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기고 난 다음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모래바닥만 보게 된다. 가든장어는 포식자의 출현을 경계하느라 큰 눈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꼬리 끝은 모래 구멍을 잘 팔 수 있도록 기능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가든장어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꼬리 끝을 구멍에서 빼지 않는다. 적이 나타났을 때 순식간에 구멍으로 몸을 숨겨야하기 때문이다.
■모래갯벌의 은신자 엽낭게
갑각의 길이가 19㎜, 너비가 22㎜에 불과한 엽낭게는 바닷새 등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모래갯벌에 깊이 50~70㎝에 이르는 구멍을 파고 살아간다. 모래 갯벌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구멍 속으로 파고드는데, 이때 수만 마리가 동시에 움직여 모래사장 전체가 꿈틀거리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몸을 숨긴 엽낭게는 잠망경처럼 눈을 세워 밖을 둘러본 후 조심스레 모래갯벌에 모습을 드러낸다. parksh@kookje.co.kr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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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도라치들의 다양한 보금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