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볼링장 내부는 화려한 조명과 야광 물질로 꾸며져 '클럽'처럼 현란하게 빛난다.

'록볼링'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처음엔 암벽 등반의 볼더링과 비슷한 건가 싶었습니다. '록(Rock)'이라는 단어에 바위라는 의미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록 음악'의 록을 볼링이란 단어에 붙인 거라네요. 부산에는 지난해부터 록볼링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록볼링이 어디서 생긴 걸까 하는 궁금증은 취재 중 한 외국인 손님을 인터뷰하다가 풀렸습니다. 미국인 랜디 카우프먼(32·초등학교 원어민 교사)에게 "미국에도 이런 콘셉트의 볼링장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카우프먼 씨는 "물론이다. 미국에서도 볼링은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아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코스믹 볼링이 등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9시30분께 부산 사하구 '펑키락볼링장'의 12개 레인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 클럽 음악이 울리자 더욱 즐겁게 볼링을 치는 모습이었다.

코스믹 볼링(Cosmic Bowling·우주 볼링)은 1990년 미국 브론스윅 볼링장에서 일반 손님들을 위해 만든 이벤트였습니다. 주말인 금·토요일에만 저녁 6~8시, 9시~11시, 11시 30분~1시 이런 식으로 2시간씩 나눠 진행을 합니다. 볼링장 실내의 불을 끄면 야광 물질을 바르거나 스티커를 붙인 볼링장 레인 공 신발 등이 몽환적인 빛을 냅니다.

어두운 곳에서 형광을 내는 볼링 장비들이 움직이니 마치 우주 속 별이나 유성의 궤적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코스믹 볼링이라고 한다네요. 거기다 DJ의 신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볼링을 하게 했습니다. 미리 예약을 해서 일행끼리 파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콘셉트가 한국에는 록볼링장으로 도입된 셈입니다.

외국에선 코스믹 볼링장에 볼링 외 다양한 업종을 복합적으로 유치한다네요. 당구장 스포츠바 게임장 노래방 등도 함께 있는 겁니다. 말하자면 한 곳에서 다양한 취미를 즐길 수 있게 한 거지요. 1990년 말부터 이렇게 독특한 콘셉트의 볼링장이 시작된 겁니다. 카우프먼 씨는 "코스믹 볼링장에선 화려한 조명과 함께 음악도 신 나는 것들로 틀어준다. 어떤 곳은 보다 독특한 분위기를 위해 연기를 뿜어내는 포그 머신(Fog Machine : 연무기)을 설치한 곳도 있다"고 설명해 줬습니다.

지난 24일 금요일 오후 9시 부산 사하구 하단오거리와 동아대 캠퍼스 인근 '펑키락볼링장'을 찾았습니다. 12개 레인의 손님들 대부분이 20대 젊은이였습니다. 신 나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레인에서 '스트라이크'가 나면 그야말로 괴성을 지르며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음악 소리가 귀를 쿵쿵 울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발을 구르며 웃었습니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풀릴수 밖에요.

실내 테이블에는 거의 병맥주 한 병 정도가 올라 있었습니다. 록볼링장에서는 음주도 가능합니다. 그래도 술집처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없답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갈증이 생기니 목을 축이는 정도로만 마십니다. 신 나는 음악과 10개의 볼링핀이 깨지며 내는 호쾌한 파열음,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의 흥겨운 시간을 즐기러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요즘은 20대뿐 아니라 30대 이상 직장인들의 회식 뒤풀이 장으로도 인기를 끄는 모양입니다. 화려한 조명 속 록볼링장에서 록볼링의 매력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부장님, 회식 뒤 '내기 게임' 한판 어때요
- 진 팀이 2차 맥주 한 병씩 쏘는 걸로요

- 화려한 조명, 신나는 클럽음악…여기에 분위기 띄우는 술 한잔
- 유흥 접목해 진화한 볼링장, 20~30대 젊은이 발길 이어져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쿵쿵대는 음악소리에 놀랐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적응이 되긴 했지만 낯선 광경에 절로 두리번거리게 됐다. 록볼링만을 전문으로 하는 '펑키락볼링장'은 넓은 클럽같은 느낌이었다. 레인마다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클럽 내부를 찍은 듯한 영상이 계속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에 클럽음악과 클럽 안을 보여주는 영상까지 더해지니 여기가 볼링장인지 클럽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록볼링장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연인이나 또래 친구들이었다. 볼링은 혼자 할 수 있고 여럿이 어울려서도 할 수 있는 게임이라 일행과 함께 온 사람들이 많았다.

■스트레스가 날아가다

록볼링장은 주류 판매 시설도 갖춰 손님들이 게임을 하며 맥주로 가볍게 목을 축일 수도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록볼링장에선 자신의 순서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모두 일어서서 마치 클럽에 있는양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로 인해 대화는 어려웠다. 그런만큼 각자의 플레이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레이저 조명이 쉴새없이 비춰줘 더욱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거기에 맥주로 가벼운 취기까지 더해지니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신나게 노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 후 놀러온 심아라(24·부산 사하구 다대동) 씨는 "음악을 실컷 듣고 가볍게 술도 마시면서 볼링까지 치니까 지루할 틈이 없다.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즐길 수 있어 다음에 또 오고 싶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전승윤(동서대 레포츠과학부 1) 씨는 "사람들이 많고 시끌벅적해서 저절로 신이 난다. 볼링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곳에서는 즐겁게 놀 수 있어서 여러 번 오게 된다"며 록볼링의 매력을 알려줬다. 캐나다인 칼슨 보트(24·유치원 영어강사) 씨는 "내일이 생일이라 친구들과 놀러왔다. 캐나다에도 코스믹 볼링(우주볼링)이 있어서 자주 해봤다. 그곳과 거의 비슷하다"며 익숙해 했다. 동행인 랜디 카우프먼(32·초등학교 영어강사) 씨는 "볼링은 잘 못 치지만 친구들이 즐거워해서 오게 됐다. 고향 미국에서도 이곳과 같은 볼링장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해 본 적이 있다"며 볼링을 즐겼다. 이들의 일행인 김진아(29·사하구 괴정동) 씨는 "외국인 친구들이랑 놀러왔다. 캐나다와 미국에도 이런 콘셉트의 볼링장이 있다니 신기하다. 우연히 알게 됐는데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신난다"며 볼링공을 집어 들었다.

'펑키락볼링장'(부산 사하구 하단동)의 이한목 대표는 "대학 캠퍼스가 가까워서 20대 친구들이 자주 놀러온다. 와서 보고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다시 온다는 손님들이 많다. 새로운 놀이문화로 소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평일에는 새벽 5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6시까지 영업한다. 식사나 술을 마시고 2차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밤 9시 30분께부터 붐빈다"고 설명했다. 흡연실이 따로 있어 술을 파는데도 담배연기가 없어 쾌적했다.

■볼링 부활 위한 발판될까

야광 물질을 바른 록볼링장의 볼링공. 조명 아래에서 형형색색 빛이 난다.

이곳 외에도 록볼링을 하는 곳이 있다. 기존 볼링장에서 시간제로 록타임을 진행하는 형태다. 부산 사상구 모라동 우신프라자 볼링센터는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조명과 음악을 틀고 록타임을 운영한다. 기존 볼링장은 볼링장 회원들을 중심으로 운영을 해오고 있다. 거기에 록타임을 신설해 새로운 젊은층의 유입을 도모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볼링 저변이 더 큰 일본이나 미국, 캐나다의 경우 볼링장 안에 음식점이나 당구장 등 다른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볼링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일행과 함께 방문하더라도 다른 레포츠나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볼링장에서는 소위 게임비 말고는 업주 입장에서 매출을 올릴 방법이 없다. 하지만 레스토랑 등의 다른 시설이 있으면 1인당 지출규모가 늘어나게 된다. 국내에서도 록볼링 도입 이후 이런 복합시설을 포함한 대형 볼링장들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충북 청주에 록볼링장이 처음으로 도입됐지만 얼마 못 가서 폐업했다. 이후 2009년 12월 서울의 '삐에로 스트라이크 볼앤펍'이 문을 열면서 국내에 록볼링장이라는 콘셉트를 소개했다. 나이트클럽을 했던 장소라 이미 젊은층들이 잘 알던 곳이고, 유명 연예인을 불러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이슈를 모았었다. 현재도 성업 중이다.

외국인들도 즐거운 한때- 친구들과 록볼링장을 찾은 미국인 랜디 카우프먼 씨가 볼링핀을 하나도 넘어뜨리지 못하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최영지 기자

결국 록볼링의 가장 큰 의미는 이전까지 볼링에 관심이 없던 젊은 세대를 볼링장으로 불러들이게 한 것이다. 한 번 경험해 봐야 볼링의 재미에 빠질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볼링이 인기를 끌다가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다. 40~50대 연령층은 볼링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볼링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긴다면 볼링도 부흥의 시기를 맞을 수 있다.

볼링 경력이 30년인 장세욱 우신프라자 볼링센터 대표는 " 볼링이 예전처럼 다시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점수체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관중 입장에서 현재 경기를 보면 어느 선수가 앞서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점수체계여서 프로스포츠로서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일반적인 스포츠처럼 10진법으로 스코어를 계산하도록 해야 관중들도 쉽게 보고 게임의 진행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나 해외 볼링협회에서도 점수체계 개선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록볼링장은 다양한 주류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왼쪽 사진). 흡연실도 따로 둬 실내 공기가 비교적 쾌적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