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에게 나이만큼 보인다고 하면 틀린 사실이 아님에도 썩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반대로 젊어 보인다는 말은 그저 입에 발린 명명백백한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부산의 고령인구 비율이 높다. 나이가 많은 사람, 늙은 사람, 노인층, 실버세대, 노년세대. 따라 붙는 단어마다 그 입장에 놓이고 보면 왠지 달갑지 않을 듯 하다. 일본의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일찌감치 노인진로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한 연구자를 우연히 알게 됐다. 일본의 여러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하다 그 강의를 부산에까지 이어왔다. 그녀는 오십 중반을 넘겼는데 장년층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힘이 넘치고 열의가 가득하다.
그녀는 나이 든 세대를 '실버'니 '노인'으로 간단히 정리해서 한물 간 계층으로 취급해 버리고 마는 이 사회에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사회적 편견이 그들의 힘을 더 빼앗아간다고 못마땅해했다. 돈도 벌지 못해 무기력하고 아프고 일도 없어 '사회적 가치'마저 소멸된 사람마냥 지위를 하락시켜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를 성토했다.
그리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들이야말로 자신을 위해 남은 시간을 즐겨야 하고 소비해야 하고 남은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으로써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또 다른 계층으로 탄생되어야 한다고. 그리하여 각자 인생의 이정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래서 '우울한 노년층'이 아니라 '행복한 시니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의 가치 있는 제2의 인생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시니어'라고 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늙은 사람이 아니라 경험이 가득한 노련한 사람이 더 맞을 듯하다. 영어의 시니어 (senior)는 자신보다 연장자, 즉 상급생을 뜻해 대개 대학에서 4학년을 이른다. 사전적으로는 보통 40~50세를 넘은 어르신을 말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경험 가득한 전문지식으로 사회를 돕고 인생을 관조하며 자신의 인생을 즐길 만한 여유로움을 가진 인생의 선배들. 그들이 시니어다. 한마디로 그들은 인생의 전문가요, 프로다.
시니어라는 단어를 한낱 '늙은 사람'이라고 취급하지 않도록 단어에 대한 감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그녀에게 60대 시니어들이 활동하는 한 단체를 연결해 주었다. 이 단체는 퇴직 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재능기부를 위해 60대 중심의 시니어들이 모여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인 행사에서 궁중한복을 입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기도 하는 등 패션쇼로 문화적 기부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일년에 한 번쯤은 오롯이 자신들 만을 위한 잔치도 연다는데, 몇 해 전 친정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이 모임의 회장은 올해 62세다. 부부가 함께 모여 즐겼다는 그 자리에서 그녀는 홀로 남으신 95세의 친정아버지를 위해 빨간색 드레스를 입었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친정아버지에게 반짝이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62세 딸이 춤을 청한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춤추는 동영상에 짠하게 눈물이 솟아 올랐다.
평생 헌신과 희생만 강조 당해 온 우리 시대의 시니어들. 자식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벗어주기만 한 그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삶을 다시 입어가야 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 부녀의 모습 앞에 나는 뜨거운 응원의 갈채를 보냈다.
우리는 안다. 인생사, 누구라도 예외없이 곧 그 자리의 삶에 봉착한다는 사실을.
유정임 FM 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