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걸린 연쇄살인자와
- 젊은 연쇄살인범 사이의
- 치밀하고 지적인 심리전

- “영화 콘티 같았던 원작소설
- 판타지 요소 현실화에 중점
- 책 읽은 분들도 흥미 느낄 것”

대중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영화 ‘구타유발자들’ ‘세븐 데이즈’ ‘용의자’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한 원신연 감독과 만나 색다른 작품으로 탄생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6일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치매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와 우연히 자동차 접촉 사고로 만난 젊은 연쇄살인범 태주(김남길)의 대결을 그린 영화다. 원작과 비교해 각 인물의 설정이 조금씩 다르며, 특히 영화적 전개를 위해 병수와 태주,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병수의 딸 은희(설현)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꾸었다.

원 감독은 구타유발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던 ‘구타유발자’를 시작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 영화 ‘세븐 데이즈’와 감각적 액션 영화 ‘용의자’까지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리고 소설의 문장을 영화로 가져온 ‘살인자의 기억법’은 지적인 심리 범죄 스릴러 영화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기억과 거짓 사이를 오가는 병수와 과거와 현재의 연쇄살인범 간에 느껴지는 심리전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다 처음 소설을 각색해 영화화했다. 어떤 매력이 있었나?

▶직접 시나리오도 쓰지만 소설과 웹툰 등도 많이 찾아본다. 그 전에도 소설의 영화화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 이전의 작품들이 원작을 훼손하면 평가받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면 김영하 작가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화를 위해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마치 영화 콘티 같은 느낌도 들었고. 저는 각색하면서 정교하게 짜인 콘티를 비틀었을 뿐이다. 그래서 소설을 본 관객들도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을 각색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소설은 판타지적인 면이 있어도 독자들이 이해한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가 독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 주변에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병수라는 판타지적인 인물을 지구의 중력을 느끼면서 땅에 발을 딛고 살게 하는 인물로 만드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혹시 각색 과정에서 김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는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주연배우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와 원신연 감독(왼쪽부터)이 제작 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혀 없었다. 심지어 원작을 읽고 김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며 “나의 의견으로 영화가 훼손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 하더라. 또 “감독이 자유롭게 만든 작품을 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하더라.

-설경구, 김남길, 설현의 캐스팅은 소설 속 인물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영화를 보니 각색한 시나리오와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경구 씨는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저는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는데 ‘박하사탕’ ‘오아시스’ ‘공공의 적’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저에게 교과서였다. 이번에는 연기를 넘어선 그 무언가를 만나고 싶었다. 김남길 씨는 일상에서는 평범하고 푸근한 느낌이 들지만 어떤 때는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이중적인 느낌이 있었다. 설현 씨는 아주 예전에 ‘용감한 가족’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언젠가 같이 영화 한 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털털하고 숨김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빛이 났다. 설경구, 김남길 씨 사이에서 잘 버텨줬으면 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어 날을 세우고 같이 합을 맞추는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배경은 기찻길 터널이다. 설경구 씨의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하지만 화성 연쇄살인범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생각나는 장소다.

▶기찻길의 터널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 끝없는 소실점이 보인다. 연쇄살인범이 끝없는 소실점을 향해 걸어가며 죗값을 치른다는 의미를 주기 위해 수미쌍관의 구조가 됐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붙잡히지 않은 범인의 몽타주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며 병수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살인범도 1991년 갑자기 사라졌는데, 병수 또한 17년 전 사라진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혹시 그 범인이 병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박하사탕’은 촬영 준비를 하면서 극 중 “나 돌아갈래”의 기찻길을 헌팅했다. 그런데 기차가 5분에 한 대씩 다니기 때문에 촬영이 불가하다고 하더라. 그곳은 병수가 15세 이전의 순수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액션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수와 태주의 심리적 액션을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자동차 사고가 나서 두 사람이 잠깐 쳐다보는데, 가장 격한 싸움이 일어난다. 서로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알아보면서 무수한 생각의 합이 부딪치는 것이다. 이후에 태주가 은희와 결혼하겠다고 인사드리러 와서도 비슷한 생각의 액션이 펼쳐진다. 이번 영화에서는 격투가 아닌 심리적 액션이 중요했다.

-병수나 태주가 연쇄살인범이 된 이유는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의 메시지를 영화 기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두 인물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몬스터’ 같은 존재다. 이 영화를 통해 가정 폭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