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까지 ‘영주맨션’ 오픈전
- 주거공간·생활용품 모두 활용
- 부산 미술계 이목 벌써 쏠려

서른 살 전후의 젊은 전시기획자와 작가가 50년 된 원도심 아파트를 실험적인 전시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부산 중구 영주동의 50년 된 영주아파트 한 채가 실험적인 전시공간 ‘영주맨션’으로 탈바꿈했다. 영주맨션 ‘관리자’ 이봉미(왼쪽) 독립큐레이터와 노수인 작가. 김종진 기자

부산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중구 영주동 영주아파트. 1969년 건축된 이 아파트 3동 B1 5호에 지난 15일 흥미로운 전시공간이 열렸다. 스스로를 ‘큐레이터’가 아닌 ‘관리자’라 칭하는 이봉미(31) 씨와 노수인(28) 씨가 주거공간을 실험적인 전시공간 ‘영주맨션’으로 꾸며 개관한 것이다. 39.6㎡의 공간은 작은 거실과 방 2개, 부엌 1개로 구성됐다. 2개의 방이 주요 전시실이지만 부엌, 다락, 거실도 모두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이봉미 씨는 부산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한 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다. 노수인 씨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조형예술과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자 작가다. 노 씨는 2015년 개인적인 일로 부산에 내려왔다가 4년째 머물고 있다.

두 사람은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이런저런 공부모임과 전시에서 자주 만나” 알게 됐다. ‘영주맨션’을 기획한 건 지난해 말. ‘다양한’ 전시공간에 대한 갈증이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로 이어졌다. “젊은 작가들이 더 좋은 공간에서 전시하기 위해 부산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다양한 공간이 있으면, 다양한 작가가 전시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들이 말하는 ‘좋은 공간’이란 정형화된 갤러리나 미술관이 담을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는 ‘대안공간’ ‘신생공간’ 등으로 불리는 실험적인 공간이 많지만 부산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들은 ‘영주맨션’을 “대안이 되지 못한 ‘대안공간’이나 정의가 불분명한 ‘신생공간’이 아닌 새로운 ‘예술공간’”이라 설명했다.

영주아파트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두 사람이 전시공간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지인이 월세를 놓던 집을 빌려주기로 했다. ‘무상 임대’라는 조건에만 혹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집 형태를 찾았어요. 역사가 오래된 영주동, 오래된 아파트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재미있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주거공간이던 이곳은 이들이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를 담기에도 적절한 공간이다. ‘영주맨션’은 거시사보다 미시사, 개인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솔직한 미시사, 개인사가 진지하고 묵직한 거대서사에 눌려 누락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는, 궁극적으로 기존 맥락에 편입되지 않는 새로운 맥락의 시발점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영주맨션’은 다음 달 13일까지 공간오픈전 ‘Reframe : 다시 구성하다’를 연다. ‘관리자’들이 만든 오픈전은 주거공간이던 시절 사용된 벽지를 일부 남겨 관람객이 가져가도록 했고, 영주맨션의 내부 구조를 그린 뒤 펼치거나 모아 모형을 만들었다. 공간을 정리할 때 나온 머리카락, 생활용품은 5개 유리컵에 나눠 담고 알코올에 담갔다.

벽에는 전에 살던 사람이 쓴 달력, 효자손, 거울, 운동기구 등이 남아있다. 물건 옆에는 관리자들이 상상한 이야기를 연필로 썼다. ‘김○○씨(67세, 남)가 은퇴 후 인근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하다가 근무지의 부실한 공사 때문에 다쳐서 입원을 하게 되었지만 산재는 인정되지 않고 그냥 해고되면서 쓸 일이 없어져 벽에 걸어 보관하고 있었을 것 같은 경광봉’ 등이다. “영주아파트가 영주맨션으로 바뀌는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시를 마련했다.

영주맨션은 올해 공모를 통해 2회의 전시, 대구의 신생 공간과 교류전 1회 등 모두 3회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젊은 ‘관리자’들이 만든 독특한 예술공간이 어떤 전시를 담을지 벌써부터 부산 미술계의 관심이 모인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