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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을 거닐다 <13> 경남 함양 상림

上林…지그재그로 거닐면 보인다, 천년숲의 비경들

  •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  |   입력 : 2018-07-04 18:44:50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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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제154호 20만㎡ 규모
- 활엽수 120여 종 2만 여 그루
- 최치원이 조성한 숲으로 알려져

- 산책 코스는 크게 세 갈래 길
- 숲속 가로지르는 마사토길 있고
- 좌우 하천·호수 따라 ‘반 숲길’
- 길마다 간직한 매력 제각각
- ‘S자’‘ㄹ자’ 형태로 걸어야 제맛

경남 함양. 한때 지리산 기슭 오지 중의 오지로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다. 지리산 등반을 위해 찾는 곳으로 인식됐던 함양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자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명숲이 있다. 오래전부터 ‘함양은 몰라도 이곳만큼은 잊을 수 없다’는 말이 있었으니 역사만큼이나 숲의 비경도 검증에 검증을 거쳤을 테다. 천년의 함양 상림에서 숲의 깊이와 품격을 담아봤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내 최초의 인공림인 경남 함양 상림에서 가장 멋진 사진 촬영 장소는 금호미 다리에서 바라보는 숲속 개울이다. 때마침 비가 그친 상림은 진한 흙냄새와 풀냄새로 명숲의 진가를 발휘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명숲의 진가 ‘비 그친 상림’

멀리서부터 숲 내음이 바람을 타고 진동한다. 장마가 그친 뒤 후텁지근한 바람 대신 흙냄새, 풀냄새, 나무 냄새가 부산에서 2시간을 넘게 달려온 손님을 반긴다. 여름철 함양 상림의 얼굴인 연꽃도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원시림이 아닌 인공림인 데다가 그 흔한 소나무와 대나무도 없는 듯하니 숲의 위세가 범상치 않다. 시작부터 매우 흡족했다. 연꽃 호수를 지나 자연스럽게 숲속으로 들어갔다. 촉촉하게 젖은 나뭇잎이 머금었던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정체 모를 산새가 이리저리 오간다. 숲길에는 염려했던 질퍽한 진흙 길 대신 마사토가 깔려 있으니 함양 상림은 손님을 맞을 자세, 이른바 수용 태세도 완벽했다.

   
상림의 전경을 하늘에서 촬영한 사진.
하늘을 뒤덮은 나무와 가지, 나뭇잎은 숲의 역사만큼이나 촘촘한 밀도를 보여준다. 비가 그친 숲속은 눈과 가슴에 상쾌함을 가득 선사했다. 자박자박 마사토를 밟는 효과음이 귓전에 도달하기도 전에 숲길을 따라 흐르는 개울 소리가 정겹다. 숲 탐방을 시작한 이래 숲속에서 처음 만난 개울이다. 비가 온 탓에 물이 탁했지만 맑은 개울에 비친 함양 상림의 잔영도 익히 명성을 얻고 있다.

상림의 개울과 숲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금호미 다리’는 상림의 최고 사진 촬영 포인트다. 명색이 다리라고 하지만 세 발짝만 걸으면 끝난다. 그래도 걷는 재미는 쏠쏠하다. 이 다리가 나오도록 숲과 개울을 담거나 다리에서 남쪽으로 작은 호수와 숲을 담으면 된다.

개울과 작은 호수를 만나니 함양 상림의 볼거리 중 하나인 물레방아가 떠올랐다. 그런데 숲의 시작도 끝도 아닌 허리 지점을 파고들어 숲속으로 들어온 나머지 방향 감각을 잃었다. 일단 개울의 상류를 찾아 걸었는데 생각보단 숲이 길다.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과 같이 산이 아닌 둑 옆 평지에 펼쳐진 숲이지만 숲의 깊이가 확연히 달랐다.

어느덧 물레방아가 보인다. 물레방아를 반환점으로 삼아 위천 옆길로 내려왔다. 자전거를 타거나 유모차나 휠체어를 끌 수 있게 포장이 잘된 곳이다. 상림은 길이 세 갈래다. 숲속 마사토길이 중앙에 있고, 좌우로 각각 하천과 연꽃 호수를 따라 숲의 가장자리에 조성된 ‘반 숲길’이다. 중간중간 길이 연결돼 있어 이런 구분은 크게 의미는 없다. 하지만 길마다 간직한 상림의 매력은 제각각이니 중간중간 상림의 포인트를 짚어 S 자나 ㄹ 자 형태로 걸으면 좋을 듯하다.

■천년의 내음과 비운의 최치원

   
여름 상림의 상징인 연잎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연꽃 호수. 전민철 기자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 상림은 면적 20만5842㎡로,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는 위천(渭川) 가를 따라서 만들어진 호안림이다. 상림은 원래 ‘대관림(大館林)’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함양읍의 중앙을 관통하는 위천을 따라 남북으로 2, 3㎞ 뻗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숲 가운데 마을이 생기면서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는데 하림은 사라지고 상림만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길이 1.2㎞ 너비 80~200m의 상림만이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너도밤나무 상수리나무 등 잎이 큰 활엽수가 대부분으로, 개체 수만도 120여 종 2만여 그루에 이른다. 숲속을 걷다 보면 나무 기둥 아래 수목 관리를 위해 붙인 명찰이 보인다.

함양 상림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대, 부산 해운대와도 인연이 깊은 고운 최치원과 함께 시작된다. 최치원은 진성여왕 때 천령군(현 함양군)의 태수로 부임한다.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자청해 산속 오지의 태수를 자청한 것이다. 태수 부임 후 최치원은 해마다 백성들이 홍수로 고통받자 하천 주위에 둑을 쌓아 나무를 심었는데, 이것이 국내 최초의 인공림인 상림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상림은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최치원은 천령태수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실제 그의 생몰 중 생(857년)만 기록되고 있으니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최치원의 위민정치는 함양에서 시작돼 상림에서 끝을 봤는지 모르겠다.

본디 오래된 것에는 그 자체의 깊이에 더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색깔과 향기가 스며있기 마련이다. 비 그친 천년 숲의 내음 때문일까. 함양 상림의 색깔과 향기는 유독 진했다. 올여름 지리산 가는 길, 함양의 상림을 찾아 숲의 깊이와 품격을 만끽해보길 바란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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