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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갈대꽃에도 가슴 일렁이는 울림 있다

람사르 습지도시 전남 순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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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에 이르는 갯벌 가진 순천만
- 지난달 람사르 총회 습지도시 인증
- 국내 최대 갈대밭·S자 흐르는 동천
- 이국적인 풍광에 탐방객들 넘쳐나
- 야간 경관조명 운치 넘치는 국가정원
- 1970년대 옮겨놓은 드라마촬영장도

단풍이 화려하던 나무는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이파리로 지나간 가을을 추억한다. 군데군데 얼룩 같은 붉고 노란 색이 남아 있지만 산과 들 대부분이 차츰 무채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부산하던 발걸음도 잦아드는 시기인데 쪼그라든 갈대꽃으로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 있다. 지난달 말 두바이에서 열린 람사르총회에서 람사르 습지도시로 선정된 전남 순천의 순천만이다. 오염된 강과 습지가 생태의 보고로 되살아난 생생한 현장은 늘 탐방객으로 붐빈다.
전남 순천의 순천만 습지를 찾은 탐방객들이 동천을 가로지르는 무진교를 건너 갈대밭 사이로 설치된 탐방로를 걸어가고 있다. 절정의 시기를 지난 흐린 날씨에도 갈대꽃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마력이 있다.
■언제 찾아도 가슴을 울리는 명소

지난 주말 찾은 순천만 습지는 구름이 짙게 내려앉고 가끔 빗방울이 날리는 날씨에도 탐방객이 줄을 이었다. 입구를 들어서 순천만 습지 천문대와 자연생태관을 곁눈질하며 작은 습지를 지나면 동천 위를 가로지르는 무진교를 건너 5.4㎢의 갈대밭에 발을 들인다. 순천만의 갈대밭은 순천 시내와 순천만 국가정원을 거쳐 흘러온 동천과 서쪽에서 흘러온 이사천이 합류하는 지점부터 하류의 용산 초입까지 3㎞ 거리에 걸쳐 있다. 매표소를 통과해 용산전망대로 가는 길은 드넓은 갈대밭의 남쪽 끝자락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넓고 압도적이다.

절정의 시기를 지나 갈대꽃은 꽃술을 바람에 날려 보내 차츰 옹색해지고 있지만 탐방객들은 마냥 행복하다. 대대포구 옆 무진교를 건너자마자 갈대밭 사이로 두 갈래 길이 갈라지는데 용산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방통행 통로다. 용산전망대로 가는 오른쪽 통로는 바다를 향해 S자로 크게 휘어 흘러가는 동천을 가까이 두고 있다. 틈틈이 순천만 입구로 나가거나 다시 돌아오는 생태체험선이 느리게 흐르는 강물을 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갈대밭을 지나는 거리는 멀지 않지만 수시로 사진 촬영을 위해 멈추는 인파에 가로막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이며 느리게, 오래 걷게 된다.
순천만 습지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갯벌.
출렁다리를 건너 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난 용산은 해발 100m에 채 미치지 못하는 야트막한 동산이다. 둘러가는 길과 질러가는 길에 각각 붙여둔 ‘명상의 길’과 ‘다리 아픈 길’이란 표시가 애교로 보인다. 갯벌 사이를 흘러가는 동천을 따라 생태체험선이 오가는 순천만의 대표적인 풍경을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국내 최대 갈대밭과 함께 22.6㎢에 이르는 드넓은 갯벌의 이국적인 풍광이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전망대에서는 갯벌과 함께 동쪽 와온마을과 서쪽 화포마을을 경계로 한 순천만, 사기도 여자도 장도 등 자그마한 섬들이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을 만든다.

순천만국가정원 내 순천만국제습지센터 앞 경관조명이 켜진 보도.
■번잡한 습지, 여유로운 국가정원

순천만이 이처럼 우리나라 생태관광의 명소로 떠오른 것은 순천시가 습지 복원과 보존에 큰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2009년 봄 순천만 갈대밭에 접한 농지의 전봇대 280여 개를 뽑고 이동통신 기지국을 이전한 일은 당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순천만과 동천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전국의 여느 강이나 하구와 마찬가지로 오염된 하천수가 흘러들고 몰래 버린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골재 채취를 막으려는 시민운동을 계기로 순천만 지키기가 시작됐다. 이후 2003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06년에는 국내 연안 습지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1997년부터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했지만 끝내 무산돼 오늘에 이른 낙동강하구가 떠오른다.

되살아난 습지는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등 200종이 넘는 조류의 서식지이자 월동지가 됐다. 그런데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이제 ‘오버 투어리즘’에 의한 훼손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순천 방문객은 지난해 9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3년 전과 비교하면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탐방객 수가 수용 한계를 넘어선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순천만 습지의 훼손을 막으려면 탐방객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몇 년 전 진입하는 차량을 줄이려고 주차장 사전 예약제를 추진했지만, 반발이 커 흐지부지됐다.

순천만 드라마 촬영장의 1970년대 시가지 세트장.
번잡한 순천만과 달리 습지의 정점에 있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찾을 만하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이곳은 여전한 매력을 보여준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며 화려한 맛은 덜하지만 한결 호젓한 분위기에서 둘러볼 수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오후 5시에 입장을 마감하고 6시에 관람을 마치는데 해가 진 뒤 경관조명이 들어온 호수와 산책로를 걸으면 운치가 넘친다. 다만 옷은 따뜻하게 입고 나서야 한다. 순천만 습지와 순천만국가정원은 한 번의 매표로 하루에 두 곳을 모두 입장할 수 있다. 한 곳만 둘러보더라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기에 시간에 쫓길 수 있다. 순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곳으로 조례동의 순천드라마촬영장도 짬을 내 찾아가 볼만하다. 1970년대를 재연한 마을에서 옛날 교복과 교련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남기는 재미가 각별하다.


# 경남의 람사르 습지도시

- 1만 년 역사 간직한 생태보고, 창녕 우포늪

이번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에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순천시(순천만)와 함께 경남 창녕군(우포늪), 강원 인제군(대암산 용늪), 제주 제주시(동백동산) 등 네 곳이 포함됐다. 창녕 우포늪은 낙동강 배후습지로 1만 년의 역사를 간직한 또 다른 생태의 보고다. 올해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지 20주년을 맞은 우포늪은 1만 년 전 해수면 상승으로 낙동강 양쪽에 자연제방이 쌓인 뒤 홍수 때 물이 차오르는 늪이 됐다.
우포늪생태관에서 목포제방 가는 중에 있는 나무.
동판저수지와 산남저수지, 주남저수지를 아우른 이름이 주남저수지인 것처럼 우포늪도 크기순으로 우포와 목포, 사지포, 쪽지벌의 네 개 늪으로 이뤄졌다. 우포 남쪽의 우포늪생태관에서 서쪽으로 목포제방으로 가는 도중 산자락에는 거대한 온실처럼 생긴 따오기 복원센터가 있다. 가끔 센터 안을 비행하는 따오기를 관찰할 수 있다. 갈대밭과 사초 군락지 등이 있는 우포늪은 다양한 조류와 수생식물의 거처가 된다. 우포를 한 바퀴 도는 8.4㎞ 거리의 우포늪 생명길 코스는 이맘때 걷기 좋다.

람사르 습지도시는 람사르 습지 인근에 있고,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이라는 람사르 협약의 취지를 따르는 도시나 마을을 뜻한다. 습지도시 인증은 이런 지역과 세계가 힘을 모아 지역 주민을 위한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적 혜택의 증진을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로 이번에 처음 대상 도시를 지정했다.

인증 도시는 6년간 람사르 브랜드를 지역 농산물이나 특산품 판촉, 생태관광 활성화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국내에는 이번에 람사르 습지도시에 포함된 지역의 4개 습지를 비롯해 모두 22곳이 람사르 습지다.

글·사진=이진규 전문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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