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학가에 들렀다. 미래를 열어갈 젊은이들의 거리. 미래의 단서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마치 리트머스와 같은 다양하고 기발한 시도가 즐거움을 더했다. 순수한 몸짓도 어색하지 않은 그 무엇이 있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점심시간에 좋은 분을 모시고 한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거창할 것도 없는 그러나 정갈한 우리네 가정식 식당이었다. 골목을 놓쳐 위치를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전화를 받지 못할 정도로 바쁜가. 혹시 휴무일이면 곤란한데’. 몇몇 골목을 오간 뒤에야 결국 찾던 간판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거리를 헤매며 생각이 더 골똘해지기 전에 안정을 되찾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안고 실내로 들어섰다.
빈자리가 별로 남지 않았던 것은 몇 안 되는 테이블 수 때문이기도 했으나 주인 한 분만이 주방과 홀을 정신없이 오가며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동료가 일이 생겨 매장에 나오지 못해서 홀로 건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 수도 없었군’.
이럴 때는 내가 스스로 물도 가져다 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직접 챙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더욱이 이곳은 대학가 아닌가. 허락을 받고 주방까지 들어가 따뜻한 물과 수저를 준비하는 통에 주인이 아마도 주문 순번을 놓친 모양이었다. 두 학생이 자리하고 있던 맞은편 테이블이 우리보다 빨랐는데 이쪽부터 음식이 먼저 차려졌다.
한국인의 심성은 철저히 공정하다. 특히 나보다 늦게 주문했던 테이블에 음식이 먼저 도착하면 억울하게 느낀 손님은 주변 모두 들으라는 듯 상황을 꼬집거나 심지어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음식을 먼저 받는 쪽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선을 살짝 들어 맞은편을 바라보니 두 학생의 얼굴에 일순간 ‘어?’하는 표정이 스치더니 이내 누그러지며 다시 친구 간의 편안한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들리는 대화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상스러운 표현은 단 한 마디도 없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윽고 맞은편 테이블에도 식사가 나왔고 편안한 식사 분위기로 흘렀다.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가서 “저 테이블도 같이 계산해주시겠습니까”하고 요청하고는 소지품을 챙긴 후 맞은편 테이블로 다가가 인사했다. “오늘 고마워서 제가 대신 계산했어요. 어려워 마시고 좋은 식사시간 되세요.” 두 학생의 어쩔 줄 모르는 환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상에는 불공정한 것이 많고 더 큰 이익이 보이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때로 유리한 것을 취하려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몫이 희생되었다면 쿨하게 즐거움을 나누는 기회를 잡아보자. 공정함은 모두에게 행복한 경험을 선사한다. 모두의 해피엔딩, ‘행복만땅’의 오후는 덤이다.
박재범 부산공정무역연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