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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탐구생활 <6> 역사의 섬, 가덕도

이 섬에 가면… 벽화 아름다운 마을, 역사 아픔 담은 해안

  •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   입력 : 2018-11-28 18:46:4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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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차도 정거벽화마을서 인생샷
- 가슴 ‘뻥’ 대항전망대 풍경은 덤

- 외양포 일제 軍막사·포진지 보존
- 새바지마을에는 인공동굴 남아
- 침탈 역사 ‘다크 투어리즘’ 제격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고 바깥나들이를 불쾌하게 하는 미세먼지도 잠잠했던 지난 23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로 향했다. 북구에서 가덕도로 가는 길은 그리 즐거운 여정이 아니었다. 승용차로 녹산산업단지와 부산신항 인근 도로를 지날 때 사방이 트레일러 차량이었다. 승용차 몇 배나 되는 차량에 앞뒤, 좌우로 갇히니 신호대기 중엔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화물차가 뒤에서 승용차를 들이박은 교통사고가 생각나 신경이 곤두섰다. 일상의 고민을 훌훌 털고 머리를 식히러 가는 여행지로 가덕도를 추천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에 빠졌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 외양포의 해질 무렵 모습. 외양포에는 100년 전 일제의 군사시설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화가 아름다운 정거마을

걱정은 잠시였다. 가는 길은 험했으나 목적지인 가덕도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섬이었다. 첫 번째 여행지인 정거벽화마을에 가기 위해 가덕도 북동쪽에 있는 ‘섬 중의 섬’ 눌차도로 향했다. 가는 길은 흡사 제주도 해안길을 연상케 했다. 가덕도 바다 끝엔 수평선 대신 도심이 보인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해안 드라이브 코스가 5분간 펼쳐졌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의 부속 섬 눌차도 정거마을의 벽화.
정거마을은 환경부가 선정한 생태보전 시범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60여 가구의 집마다 담벼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가덕도의 자연환경과 가덕도 주민의 삶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좁은 골목에 펼쳐진 서정적인 벽화와 담 넘어 일렁이는 바다가 어우러져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순전히 걷는 목적이라면 마을 입구에서 끝까지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동화책 삽화 같은 벽화 앞에서 ‘인생샷’을 남기고,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길고양이에게 정신을 팔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덕도와 눌차도를 잇는 천가교는 차도와 인도가 완벽히 분리돼 있다. 도보 여행을 한다면 천가교 우측 굴 양식장과 나지막한 산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며 다리를 건넌 뒤 폐교된 눌차초등학교를 지나는 길로 쉬엄쉬엄 정거마을에 도착해도 운치 있다.

차를 돌려 가덕도 남서쪽 외양포로 향했다. 거가대로를 타다 천성교차로로 내려서 연대봉 생태터널을 지나는 길이다. 해안도로인 데다 지대가 높아 남해가 한눈에 보였다. 해안도로변에는 바다를 향해 큰 창을 낸 카페도 곳곳에 있었다. 마음 내키는 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도 그만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외양포로 가는 길에 ‘대항전망대’를 놓쳐선 안 된다. 대항마을을 내려다보는 높은 지대에 있는 전망대로 우측으로 거가대교 주탑이 보이고, 정면에는 멀리 거제시 장목면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가덕도 바다는 도심과 가까운 해운대, 기장, 영도, 송도의 바다와는 달랐다. 그 광활함이 남해의 어느 섬에 온 듯했다. 

■일제 군사시설 남은 외양포  

외양포에는 일본군이 1904년 8월부터 1945년 패망 직전까지 반세기 동안 주둔하며 남긴 군사시설과 침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외양포를 대한해협 일대의 군사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임시 군사기지로 설정해 민간 64호를 강제로 퇴거시켰다. 이곳에는 아직 일본군이 축조한 막사, 창고, 우물, 배수로의 흔적이 남았고 주변 산어귀와 정상부에 포진지, 화약고, 교통로, 관측소, 산악보루가 그대로다. 대부분 군사시설이 외양포마을에서 5~100m 이내에 자리 잡아 금방 돌아볼 수 있다.

외양포에는 광복 후 들어온 이주민이 일본군 막사와 사저 등 옛 시설을 개조해 살고 있다. 역사적인 건물 앞에는 팻말이 세워져 100년 전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전한다. 100년 전 일제의 군사시설이 이처럼 잘 보존된 지역은 전국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휴양과 관광을 위한 여행과는 달리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장소로 더없이 적합했다. 

외양포와 반대쪽 바닷가에 있는 새바지마을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보인다. 해안에 있는 ‘인공동굴’이다. 세계 1, 2차 대전 때 일본군은 연합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 여러 곳에 인공동굴을 팠다. 가덕도에는 새바지마을뿐만 아니라 대항마을, 외양포마을에도 인공동굴이 있다. 높이는 1.5~2m, 길이는 10~50m로 비슷하다. 

해가 떨어졌다. 분홍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노을과 흉측한 일제의 인공동굴이 한눈에 보였다. 가덕도 여행의 묘미는 이 기이한 조합에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넉넉하게 누리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였다.
   

글·사진=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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