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베삭(Vesak)일은, 우리의 ‘부처님오신날’과는 달리 붓다의 탄생만이 아니라 성도와 열반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날을 베삭 보름달 포야 데이(Vesak Full Moon Poya Day)라고 하여 전국적인 축제행사가 벌어진다. 베삭 포야는 ‘세 가지 성스러움’ 의식이라고 하여 집마다 등불을 밝히고 선행을 한다.
그 기념행사에 참관했을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로 처음 유학을 간 조선 스님은 종원(宗圓 혹은 범란 梵鸞·속명 이영재·1900~1927)이다. 청주 출신인 스님은 충북도청에서 근무하다 19세에 출가하여, 구례 천은사의 공비유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스님은 일본대학 종교학과(1920~1923년), 동경제대 인도철학과(1923~1924년)에서 수학하면서 불교학자인 다카쿠스 준지로 교수(高楠順次郞·1866~1945)에게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배우고 조선인 최초로 스리랑카로 유학의 길을 떠난다.
스님은 박한영 선사(1870~1948)와 편지를 통하여 유학 생활을 소개하고 있다. 스님은 1925년 11월 9일 요코하마에서 출발하여 12월 2일 스리랑카 콜롬보에 도착하기까지 22일간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스님은 1926년 캔디를 방문하여 베삭 축제를 보고는 박한영 선사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내용은 석란(스리랑카) 불교계의 역사와 현황을, 조선 불교부흥을 위한 불교 교육과 불교 운동 등에 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스님은 일본 유학시절에 참여했던 잡지 ‘금강저’, ‘불교’에도 투고를 하면서 조선 불교의 길을 제언하기도 한다. 스님은 잡지 ‘불교’에 ‘佛敎 君에게-이역병상에서’(34호·1927년 4월), ‘釋宗圓遺稿, 渡印에 際하야 同信諸兄에게’ (42호·1927년 12월)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삶을 마치고 죽음으로 간 스님은 다시 캔디 불치사에 되살아오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