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군주를 구속할 창살은 없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13 19:29:40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잘못을 물을 법정은 없다'고 ‘군주론’에 쓴 바 있다.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2018)는 이 명제에 화답하는 듯한 영화이다. ‘킬링 디어’(2017)에서 파국을 맞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을 다룬 바 있던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한창이던 18세기, 영국 왕실의 은밀한 밀실로 눈을 돌린다. 통제력을 잃어버린 가부장이 집안에서 벌이는 파시즘적 상황을 다루었던 감독은 아예 실존 인물인 앤 여왕(Queen Anne·1665~1714)의 사생활을 들추며 군주와 권력에 대한 또 한 편의 우화를 빚어내고자 한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목줄을 쥐고 사실상 실권자로 행세하는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레이첼 와이즈)는 자신의 하녀로 들어왔지만 여왕의 총애를 얻어 새로운 측근으로 부상하는 애비게일(엠마 스톤)의 도전에 직면한다. 이 삼각관계의 치정극에 사랑 따위 낭만적 수사가 끼어들 틈은 없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갈구하며 구애하는 건 여왕 개인이 아니라 그 몸에 함축된 권력이다. 왕정 국가에서 권력은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사회적 필요나 역할에 따라 분배되지 않는다. 권력은 최고 지도자와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가에 따라서 부여될 따름이다. 사라는 전시(戰時)의 통치를 위해서, 애비게일은 신분 상승을 위해서, 저마다의 이유로 여왕의 총애를 필요로 하며 연극을 벌인다.

‘더 페이버릿’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사인화(私人化)된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인간 군상의 심리가 어떻게 뒤틀리고 분열되는가를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빚어내는 아이러니의 정점은 앤 여왕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대영제국의 지배자가 목발 없이는 거동하지 못하는 반신불수에 자제심 없는 어린아이처럼 변덕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만큼이나 지독한 역설이 또 어디에 있으랴? 왕실은 모든 질서의 근원으로 자리 잡았고, 국회는 오로지 여왕의 재가 아래서 국정을 수행할 수 있지만, 정작 통치를 수행해야 할 여왕의 심신은 무너진 상태다. 사라와 애비게일은 여왕은 허수아비일 뿐 실세는 자신이라 여기며 쟁탈전을 벌인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를 즈음 일대 반전이 일어난다.

사라가 여왕의 고삐를 쥐고 있을 때 사육장에 가뒀던 애완용 토끼들이 애비게일이 여왕의 환심을 사면서부터 창살에서 풀려난다. 이는 여왕이 사라의 통제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되었음을 암시하며 토끼는 곧 여왕과 동일시된다. 토끼를 품에 안으며 여왕의 환심을 사려던 애비게일은 귀족 신분을 회복한 뒤엔 토끼의 목을 슬며시 짓밟는다. 그러나 온순해 보이는 토끼의 본성이 실은 흉포한 맹수이듯, 사라의 속박을 끊어낸 앤 여왕은 권력의 무자비한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애비게일에게 성적 행위를 강제하며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왕의 표정은 클로즈업된 애비게일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과 토끼 무리에 포개진다. 이 다중 노출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전달한다.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한 자야말로 실은 권력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설, 그리고 제약받지 않는 권력은 사회구성원에게 고통과 희생, 굴종을 감수하도록 강요한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괴물이 된다. 이것이 권력의 진실이라고 란티모스는 비꼰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2. 2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3. 3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4. 4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5. 5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6. 6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7. 7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8. 8성장이냐 쇠퇴냐…부산이란 도시 운명은 이것에 달렸다
  9. 9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10. 10김척수 구청장 후보자 수사 7개월째 표류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3. 3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4. 4“여야 협치로 市 조직개편·추경 성과…다음은 민생·PK 초광역”
  5. 5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6. 6부산시의회, 교통공사·시설공단 대표 후보 ‘부적격’ 의견
  7. 7‘빈총경계’ 前 1군단장, 국감장서 “대비태세 문제 없었다” 주장
  8. 8인천 해수욕장서 北유실지뢰 54일만에 또 발견.. "안전 유의"
  9. 9[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MDL 지뢰 폭발 사건은 ‘도발’…北 정권 행위 강력 규탄”
  10. 10암살자(들)·北 지뢰 여야 충돌…JYP ‘K-팝 축제 특혜’ 반박(종합)
  1. 1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2. 2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3. 3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4. 4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5. 5[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6. 6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7. 7부산항 오는 배 위치 실시간 확인
  8. 8지자체 ‘비상금’ 3년새 반토막…국고사업 매칭비는 23% 늘어(종합)
  9. 9[증시와이드] 실적 유지·턴어라운드 종목 선별 접근을
  10. 10“AI 해킹범은 中 광둥성 26세” 글로벌보안기업 보고서 추정(종합)
  1. 1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2. 2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3. 3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4. 4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5. 5김척수 구청장 후보자 수사 7개월째 표류
  6. 6특혜 논란에도…엘시티 투자이민제 13년 실적 고작 2건
  7. 7“크루즈 관광객 동선, 부산항서 이바구길까지 넓힐 것”
  8. 8박완수, 우주항공·SMR 기반 메가 특구 공들여
  9. 9부산 동백중 교사와 학생 “우리는 와플처럼 달콤한 사이”
  10. 10[한 손 뉴스] 市 굿즈 플랫폼 ‘부산꾸’…디지털 스티커 받으세요
  1. 1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2. 2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3. 3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4. 4“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5. 5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6. 6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7. 7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8. 8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9. 9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10. 10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