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곡 학대사건’ 모티브로 제작돼
- 자녀구타 엄마役 모든 배우 거절
- “내가 OK 하니 감독이 은인 대접
- 어린 배우들 때리는 장면 찍은뒤
- 다독이는데 눈물 왈칵 쏟아졌죠
- 고통받는 아이들 관심 가져달라”
거의 모든 배우는 인상적인 악역을 원한다. 그런데 악역이라도 맡기 싫은 역할이 있다. 바로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역이다. 그간 사극, 로맨스, 스릴러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며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준 유선이 영화 ‘어린 의뢰인’(오는 22일 개봉)에서 자식을 학대하는 두 얼굴의 엄마 지숙 역을 맡아 관객에게 욕먹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2013년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던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어린 의뢰인’은 일곱 살 친동생을 죽였다고 자백한 열 살 소녀의 진실을 파헤치는 감동 드라마다. 어린 남매 다빈과 민준의 새엄마 지숙을 연기한 유선은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악역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선은 “욕을 많이 먹었으면 한다. ‘원래 저런 면이 있는 사람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야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 명확해지고, 영화를 보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더 미안해할 것 같다는 게 유선의 생각이다. “대본을 본 순간 필요한 영화라는 반가움이 있었다. 이 영화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 제기와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무관심, 법과 제도의 허술함, 복지사들의 한계 등 많은 것이 담겨 있다”며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지숙 역할이 처음부터 유선에게 온 것은 아니었다. ‘어린 의뢰인’을 연출한 장규성 감독은 여러 배우를 섭외했지만 아동을 학대하는 인물이기에 모두 거절했고, 조연출의 추천으로 ‘설마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유선에게 제의했다. “저는 망설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대본을 읽은 다음 날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장 감독님이 깜짝 놀라며 은인이라는 표현까지 쓰더라”라며 캐스팅에 얽힌 일화를 전했다.
단번에 승낙을 했지만 분노조절 장애와 애정결핍이 있는 지숙을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촬영 현장에는 아역들을 위한 아동 심리학자가 있었는데, 이런 영화를 찍을 때는 성인 연기자도 심리적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정도다. “아동학대 장면을 찍는 3주간은 촬영장에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촬영에 들어가면 몰입하고 있다가 ‘컷’ 소리와 함께 고통이 몰려왔다. 한 번은 아이들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다독이는데 눈물이 확 나오더라. 그래서 혼자 벽으로 가서 떨어지는 눈물을 닦고 진정했는데, 메이킹 필름을 보니 뒷모습이 찍혔더라”며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남모르게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던 유선의 마음을 그 메이킹 필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에는 유선이 아이들을 구타하는 장면이 있다. 너무 리얼해서 실제로 터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뺨 정도는 정말 때린 줄 알더라. 하지만 카메라로 각도를 맞추고 리액션 합을 맞춰서 연출한 장면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때리겠는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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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의뢰인’ 스틸.
이스트드림시노펙스㈜ 제공 |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여섯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유선은 2017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아동학대 예방 홍보를 하면서 주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아이들에 대한 신고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교육기관과 경찰서, 학교, 의사 선생님도 마찬가지다”고 강조했다.
“다음에는 아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유선은 마지막까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학대받는 주변 아이들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말처럼 ‘어린 의뢰인’에 담긴 메시지와 진정성이 힘들었던 유선과 아이들의 연기 속에서 더 명확하고 선명히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