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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1977년과 2018년의 ‘서스페리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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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5-22 18:45:5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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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스페리아’(1977)가 아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2018·사진)는 이름만 빌려왔을 뿐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닌다. 자크 드레이의 ‘수영장’(1969)을 ‘비거 스플래쉬’(2015)로 번안화했을 때처럼 이것은 리메이크라기보다 파괴적인 재창조이며, 원작자 다리오 아르젠토가 추구한 호러 영화의 장르적 가치에 대한 반역이다. ‘인페르노’(1980)와 ‘눈물의 마녀’(2007)로 이어지는 세 마녀의 설정, 미국에서 온 소녀 수지가 베를린 무용학교에 들어와서 흑마술과 관련된 기이한 일을 겪게 된다는 대강의 줄거리는 공유하지만, 아르젠토가 탐미주의적 미장센과 시각적 연출에 치중한 반면, 구아다니노는 원작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공간적 배경, 1977년의 독일 사회라는 컨텍스트를 환기시킴으로써 정치적 해석의 지평을 열어젖힌다.
   
마르코스 무용학교는 전후 독일 사회의 축소판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분할된 베를린을 암시한다. 베를린 장벽을 바로 마주한 이 공간 밖에서는 “바더 마인호프를 석방하라!”는 외침과 함께 혁명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다. 영화의 시간인 1977년은 원작 ‘서스페리아’가 개봉한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일의 가을’(Deutscher Herbst)이라 불렸던 시기, 극좌 단체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 활동이 독일 항공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사건(란츠후트호 사건)으로 정점을 찍은 해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인물을 둘러싼 풍경이나 방송을 통해 줄기차게 상기시킨다.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가 참고한 사실상의 레퍼런스는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비통한 눈물’(1972)과 ‘가을의 독일’(1978)일 것이다. 한때 파스빈더의 아내였던 잉그리드 카벤의 출연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아이 엠 러브’(2011)에서 구아다니노와 사실상 공동 창작자였던 틸다 스윈튼은 이 영화에서 1인 3역을 맡는다. 마녀 마르코스와 마담 블랑, 정신과 의사 클렘페러. 한 배우가 연기하는 세 인물은 전후 독일 사회의 인간군상과 집단 무의식을 유형화한다. 지하에 숨어 새로운 숙주를 찾는 마르코스는 서독 정부가 청산하지 않은 나치 시대의 잔재를, 마담 블랑은 나치의 전체주의에 잠시 동조했던 과거를 후회하는 지식인 계급을, 아내가 겪은 일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클렘페러는 나치 시대에 대한 자책감과 죄의식에 시달린 일반 대중을 표상한다. 그리고 ‘탄식의 마녀’로 각성하는 수지는 부모 세대의 역사에 환멸을 느낀 전후 독일의 청년 좌파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다. 마르코스 일당을 쓸어버리는 그녀의 행동은 독일 과거사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했던 적군파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에 대한 역사적 등가물처럼 보인다.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영화라기보단 일종의 ‘텍스트’에 가깝다. 관객은 두꺼운 사회학적 보고서를 독해하는 태도로 영화를 대하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로서의 의미 부여가 과도한 나머지, 아르젠토의 작품이 지녔던 호러로서 장르적 매력은 여기선 사라지고 없다. 이 리메이크는 유럽의 지식인 계급, 문화 엘리트들의 지적 허영과 취향 과시가 한껏 묻어난 ‘아트 시네마’일 수는 있지만, ‘서스페리아’의 이름을 걸기엔 더없이 밋밋한 결과를 내고 말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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