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천국과 지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12 18:47:57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기생충’(2019·사진)은 두 개의 가족으로 표상되는 두 개의 계급을 다룬다. 남루한 반지하에 거주하는 빈민 가족 반대편에 언덕길의 고급 주택에 사는 상류층 가족을 배치한다. 공간의 높고 낮음을 통해 계급을 분할하는 수직적 배치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선은 김기영의 ‘하녀’(1960), 반듯한 고급 주택가와 슬럼화된 빈민가를 통한 명료한 이미지의 대비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1963)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설정은 안이하게 다루었다간 평면적인 적대 구도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부유층은 퇴폐적이고 악하며 빈민층은 정직하고 선하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도는 한국 대중 영화의 전형적 관습이며, 많은 창작자는 이 상투성에 기대어 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려는 유혹에 빠진다. 봉준호는 다른 국면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기우(최우식)가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다는 작위적인 사건의 발단부터, 두 계급을 한 공간에 묶고자 한 감독의 고민이 엿보인다. ‘하녀’의 중산층 가족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신분 상승을 꾀하는 식모와 충돌하며, ‘천국과 지옥’의 기업인 곤도는 교도소 면회실의 창문에서나마 유괴범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에서 두 계급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상류층은 빈민과 접촉할 어떠한 시·공간적 접점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박 사장(이선균) 일가가 지하실에 무엇이 있는지, 수몰된 빈민가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듯, 다른 공간을 점유한 이들에게 서민들이 겪는 비극은 딴 세상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것은 한 편의 우화이다. ‘기생충’은 연극적인 무대 세팅에서 바깥의 현실을 끌어들이고 함축하려 한 김기영 영화의 화법을 이어받아, 현대의 계급적 양상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에서 국가 장치의 중력에 짓눌린 민중을 다루었던 봉준호는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한 구도를 버리고 복잡 미묘한 상황을 연출한다. 두 가족의 관계는 대립이 아닌, 자본을 매개로 한 암묵적 공조에 가깝다. 기우의 가족은 박 사장 댁에 기생하고, 박 사장 일가는 고용인이 제공하는 노동의 편의에 만족할 뿐 정체 따윈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생 내지 공생 관계는 ‘선을 넘지 않는’ 계급 구분이 지켜지는 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등장인물에게 선악을 묻는 건 무의미하다. 박 사장 일가의 매너와 착함은 풍요로운 물질적 기반이 있기에 가능하며, 기우 가족의 악다구니는 생존을 위해서라는 명목이 있기에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계급 관계를 다룬다는 소재의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봉준호의 관점은 이창동과는 전혀 다르다. ‘버닝’(2018)에서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인 종수는 벤을 살해함으로써 계급의식의 각성을 통한 ‘저항’의 함의를 전한다. 하지만 봉준호는 이들 계급이 무지한 게 아니며, 도리어 자신의 계급성을 영악하리만치 잘 알고 있기에 저항이 아닌 ‘기생’을 택하는 것으로 본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아(我)와 피(彼)의 구분은 쉽지 않다. 도리어 계급 투쟁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에서가 아니라 같은 계급끼리의 이전투구가 되어 훨씬 끔찍한 양상을 띤다. 오로지 자본만이 승리를 구가하는 가운데, 밑바닥의 삶과 그로부터 올라오는 구조 요청의 신호는 무시되고 은폐되며 잊힌다. 이것이 2010년대 우리 세계의 풍경이며 위기의 징후라고 ‘기생충’은 경고한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부, 공연장 겸 돔구장 추진…북항 돔 아레나 ‘기회’
  2. 2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3. 3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4. 4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5. 5[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6. 6‘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7. 7[속보]홈플러스 희망퇴직 신청자 몰리는 바람에 접수 조기마감
  8. 8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9. 9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10. 10이기대 예술공원 사업도 차질
  1. 1‘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2. 2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3. 3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4. 4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5. 5이 대통령 "부마항쟁 헌법 조문화, 이제는 실천할 때"
  6. 6김민석, 강훈식 서울시장 후보론에 “가능성 열려있다”
  7. 7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8. 8李 대통령 지지율, 2주 전보다 소폭 오른 44%…부정 평가 49%
  9. 9박형준 “새로 할 일 없는 사람들, 전임 시정 뒤집기 집착”
  10. 10선관위 특검, 중앙선관위 등 7곳 압수수색…투표자수 허위입력 확인”
  1. 1[속보]홈플러스 희망퇴직 신청자 몰리는 바람에 접수 조기마감
  2. 2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3. 3올해 자사주 62조 태웠다…‘삼전닉스’ 과반
  4. 4부산 호텔업계 “바가지요금 논란 되풀이 막자”
  5. 5삼전닉스 급락에 코스피 5600선까지 추락…매도사이드카 발동
  6. 6금융사 AI해킹 16곳으로 늘어나…130곳은 ‘보안 미흡’
  7. 7‘8% 넘게 폭락’ 두 달만에 코스피·코스닥 1단계 서킷브레이커 발동
  8. 8“밀양·부산 내륙 기행” 인기 폭발… 1~9월 6000여 명이 열차 이용
  9. 9[속보]“편의점 김밥 잘 골라야”… 속 재료·영양·가격 등 제품마다 제각각
  10. 10친환경에너지·AI기술 각축…업계 트렌드 읽고 미래로 항해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3. 3[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4. 4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5. 5부산도시철 교대인력 공백 떠안은 직원들…현장 아우성
  6. 6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7. 7市 ‘시간 쪼개기 계약’ 채용 관행 전면 손질
  8. 8해인사, 팔만대장경 한 본 더 제작한다…29일 판각 시작 알리는 고불식
  9. 9근무 중 헬스장 222차례 간 경감…법원 “강등 정당”
  10. 10고성 출신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 대장, 자랑스런 경남인상 수상
  1. 1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2. 2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3. 3[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4. 4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5. 5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6. 6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7. 7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8. 8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9. 9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10. 10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