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그럼에도 불구하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26 19:17:17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행복한 라짜로’(2018)에서 흥미로운 점은 배우들에게서 ‘연기’를 배제한 것이다.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은 배우가 어떤 감정을 섣불리 전달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행동과 대사에 꾸밈이 없도록, 간결해지도록 연기에서 힘을 덜어내려 한다. 주인공을 맡은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영화에서 별다른 연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극 중 라짜로의 역할 그대로 성실하게 노동을 하고 걷고 그 장소에 존재할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모든 배우는 각자 맡은 배역에 관해 설명하는 순간 없이,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로르와커는 인물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대신, 인물의 시야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관객이 인물에게 다가가도록 유도한다. 이런 경우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밋밋해지리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의 영화들이 감정을 지시하고 강요할 때보다 더욱 풍부한 서정을 느끼게 된다.
‘행복한 라짜로’ 스틸.
라짜로는 투명한 백지처럼 자신의 감정과 호오를 드러내지 않는다. 티 없이 맑은 얼굴과 짙고 검은 눈동자, 호수의 수면처럼 평온하고 큰 눈은 사람이라기보단 사슴같이 온순한 초식동물의 인상을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겪는 상황,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 어떠한지를 목격한다. 탄크레디 후작 부인은 담배 농장 소작농으로 마을 주민들을 착취하고, 그런 마을 주민들은 라짜로를 노비처럼 부려먹는다. 후작 부인의 아들은 촌동네 인비올라타를 떠나 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마을 사람들의 욕망은 지극히 세속적인 사실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들의 동기와 갈등은 순진무구한 라짜로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는 세속적 욕망을 넘어가 있는 존재, 순진무구한 타자의 시선을 통해 일그러진 세속의 풍경을 훑고자 한다. ‘행복한 라짜로’는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를 사람으로 바꾸고 타비아니 형제가 찍은 촬영분에 펠리니가 간섭해 ‘아마코드’(1974)의 마술적인 순간들을 덧대놓은 영화 같다.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영화는 실화의 재현이 아닌, 모티브만 따온 한 편의 우화가 되고자 한다. 영화는 라짜로가 절벽에서 추락해 의식을 잃는 장면을 기점으로 나뉘는 2부 구성을 취한다. 그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를 먹었고, 세상은 바뀌어 있다. ‘행복한 라짜로’는 상이한 두 개의 시간대를 평행선에 놓고 전개된다. 인비올라타에서의 전반부가 전근대적 봉건 사회를 표상한다면, 도시에서의 후반부는 현대 자본주의의 세속이다. 경찰이 개입해 주민들을 풀어주었듯 근대 사회의 도래는 신분제에 예속된 ‘신민’들을 국가(Nation) 안에서 평등한 ‘국민’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다면 계급 해방은 이루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감독은 답한다. 장원에 예속된 농노는 시대가 바뀌어봤자 끝내 도시 하층민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은 결국 새로운 중세일 뿐이다.

주민들은 결코 선량하지 않다. 이들 역시 살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 사기 치길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라짜로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편에 선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추악하며, 어쩌면 사랑받을 자격 따윈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재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성취할 수 있는 휴머니즘의 정수가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2. 2[속보] 다카이치 총리, 야스쿠니 가을 제사 공물 봉납
  3. 3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4. 4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5. 5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6. 6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7. 7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8. 8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9. 9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10. 10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4. 4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5. 5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6. 6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7. 7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8. 8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9. 9李대통령, 부상 소방관·장병 쾌유기원…“천금 준들 아깝겠나”
  10. 10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 1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2. 2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3. 3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4. 4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5. 5‘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8. 8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9. 9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10. 10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1. 1[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2. 2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3. 3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4. 4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5. 5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6. 6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7. 7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8. 8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9. 9고성서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등산축제
  10. 10“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