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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껍데기 영화의 현혹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24 18:50:0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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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2019)는 관객을 현혹하는 영화다. 이건 마치 겉은 정교한 공예품이지만, 안을 열어 보면 내용물 없이 텅 빈 골동품 상자와도 같다. 클로즈업과 컷 분할을 남발하지 않는 고전적인 촬영,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 장면마다 나타나는 정교한 시각적 복선, 편집증이다 싶을 정도의 이미지와 사운드 연결 내지 충돌에 공을 들인 연출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관객의 주의를 붙잡지만, 이 그럴싸한 폼에 기만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
이 영화는 해석할 깊이가 있는 척 가장하지만, 막상 한 꺼풀 들추어 보면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하고, 참신하지도 않은 것들로 채워진 가짜 텍스트, 한 편의 장르 호러에 지나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계절의 전환을 그린 중세 유럽풍의 그림은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와 미적 스타일을 동시에 함축한다. 가족의 상실(겨울)에서 출발한 영화는 호르가에서의 5월 축제(봄)로 흐드러지다 희생양을 불태우는 번제(여름)로 끝나며, 그림의 화풍은 감독이 창조해낸 가공의 마을 호르가의 미장센에 반영되어 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대니(플로렌스 퓨)는 남자 친구 일행을 따라 스웨덴으로 여행을 떠난다. 남자들끼리 관광을 떠날 계획이었던 일행은 대니가 합류하자 외딴 전원의 시골 공동체 호르가로 향한다.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도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대니는 기이한 관습을 유지하며 운영되는 이 공동체에 매혹을 느끼고 차츰 동화된다. 그러는 동안 같이 온 일행들은 하나둘씩 어딘가로 사라진다.

이미지의 충격 요법과 형식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감독 아리 애스터는 얼핏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란티모스의 경우, 작품의 내적 논리를 위해 테크닉이 헌신하는 반면 애스터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테크닉의 효과 자체에 몰두한다. 각종 상징과 도상들이 제시되지만 극의 전개를 위한 복선으로써 소진될 뿐,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논문 조사를 비롯한 각 인물의 서브플롯은 서사의 중심축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낭비된다. ‘가족을 상실한 여성이 대체 가족으로서의 공동체에 포섭’되는 성장 드라마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남성에 대한 응징’의 함의를 읽어낼 수도 있겠으나, 이런 부분적인 코드들을 단일한 주제 의식으로 묶는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 ‘미드소마’의 근본적인 문제는 연출의 기교로 영화의 결함을 덮으려는 속임수에 있다. 스토리텔링과 메시지의 구멍을 감독은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세워 억지로 봉합한다.

사실 ‘미드소마’의 정체는 호러 장르의 익숙한 콘셉트들을 비틀면서 새로운 것처럼 보이도록 잔재주를 부린 데 지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오지에 들어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나 ‘이상적 공동체를 위장한 광신도 집단’의 출현만큼 호러 장르에서 닳아빠진 플롯과 콘셉트도 없다. ‘유전’(2018)이 ‘악마의 씨’(1962)의 폴란스키로부터 받은 영향을 드러냈듯, ‘미드소마’는 스코틀랜드의 기독교 광신도 집단과 경찰이 충돌하는 ‘위커맨’(1973)과 아마존 오지의 식인종과 마주하는 ‘카니발 홀로코스트’(1984)를 접목하다가 ‘행잉록에서의 소풍’(1975)에서 봤음직한 전원풍의 배경으로 바꾼 데 지나지 않는다. 분명 아리 애스터는 영리한 테크니션이다. 하지만 이 두 번째 장편은 그가 관객을 현혹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이야기꾼이나 작가로서 성숙하지는 못했음을 드러내고 만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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