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왜관…조선 속의 일본 <6> 1678년 4월 23일 왜관 이사가는 날

日 “고관 비좁다” 아우성 … 30년 교섭 끝에 초량왜관 신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07 18:45:37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임란 이후 무역장소 두모포왜관
- 완공 얼마 안돼 ‘불편하다’ 호소

- 1640년엔 선창·부지 협소 이유
- 이전 요청했지만 조선은 불허

- 日사절 1671년 시위 중 사망하자
- 이전 논의 급물살 … 2년 뒤 허락

- 양국 용두산공원 일대 부지 합의
- 일본인들 71년 만에 신관 이주
1872년 ‘두모진지도’(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일부. 왜관이 초량으로 이전한 후, 두모포왜관의 선창이 구왜관 선창으로 쓰여 있다. 선창을 보호하는 방파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일본인 489명, 새 왜관으로 이사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조선과 일본 사이에 왜란, 왜변과 같은 전쟁이 없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안정된 외교를 바탕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이어졌다.

1607년에 완성된 두모포왜관은 전쟁 이후 두 나라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재개된 공간이었다. 현재 부산 동구 고관입구 중앙대로에서 동구청으로 가는, 완만한 구릉 지대에 두모포왜관이 있었다. 그런데 70년이 지난 1678년 4월(일본 기록에는 4월 14일) 왜관에 살던 일본인이 모두 이사를 하였다. 고관(옛 왜관)인 두모포왜관을 떠나, 새로 만든 신관(新館)인 초량왜관으로.

왜관 이사하는 날에 관해 경상좌수사는 조정에 보고를 올렸다. “일전에 왜관 치안을 담당하는 일본인 3명을 포함하여 33명이 먼저 이사를 했고, 나머지 일본인은 이삿짐을 모두 옮긴 이후 이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산첨사가 배를 타고 직접 고관으로 가서 살폈습니다. 오늘 짐을 모두 옮기고 왜관 일본인의 관리자인 관수(館守) 등 454명이 한낮(오시·午時)에 신관으로 갔습니다. 일본인 2명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지은 집을 무너뜨리고, 신관으로 옮겨가고자 남아 있습니다. 빨리 옮기도록 재촉한 후 다시 보고를 올릴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왜관이건등록’ 1678년 4월 23일 기록에 남아 있다. 또 다른 외교기록집인 ‘변례집요’에는 “두모포왜관 일본인 489명과 크고 작은 선박 모두가 신관으로 갔다는 부산첨사의 보고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부족한 부분은 의논해 가면서

‘왜관이건등록’(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중 1678년 4월 23일의 기록. 왜관을 옮기는 긴 과정과 옮긴 이후 건물을 수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두모포왜관을 완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611년,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수군 기지인 경상좌수영을 해운포에서 부산진성으로 옮기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두모포왜관과 부산진성이 가까워 왜관을 이전하지 않는 한 경상좌수영도 옮길 수 없었다. 결국 경상좌수영을 제3의 장소로 이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왜관은 이전하지 않았다.

왜관 측은 이 무렵부터 왜관이 “불편하다” “좁다”는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정례적인 사절단이 도착하는 시기에는 왜관 건물 처마 아래에 임시 가옥을 만들어 수십 명의 숙소를 확충하는 일도 많아졌다. 일본인들이 왜관에 거주하면서 불편한 것을 조선에 요청하면 타당성을 살핀 후 조선에서는 대체로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우물을 확보하고자 하면 왜관 담장을 물려 세워서 물을 끌어오게 한다든지, 왜관 가운데 있던 연향청(연회장)을 밖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사절 숙소를 다시 짓는다든지 등의 일이었다.

대마도주가 직접 요청을 한 적도 있었다. 1638년에 대마도주는 업무차 대마도에 갔던 조선 측 역관에게 무역선이 정박하는 왜관 선창이 필요해, 바다에 해장(海墻)을 쌓아 바람과 파도를 막아달라고 하였다. 해장은 바다 담장이니 돌로 쌓은 방파제였다. 조선에서는 이를 허락하고 공사에 들어갔고, 해장이 완성되니 왜관 측에서 공사에 참여한 조선인들에게 담배와 담뱃대를 선물로 주고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왜관은 두 나라의 외교와 무역 장소인 만큼 조선에서도 관리를 잘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에서도 수용 가능한 요청사항에 대해서는 들어주고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30여 년간의 긴 ‘왜관 이전’ 교섭

그런데 1640년(인조 18)에 일본 대마도 측은 왜관을 옮겨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왜관 이전 요구는 그 후에도 30여 년간 이어졌다. 연구자들에 따라 견해가 약간씩 다르지만, 이 기간 왜관 이전을 요구하기 위한 일본 사절이 무려 8차례에 이르렀다. 대마도 측은 왜 왜관을 옮겨달라고 했을까?

맨 처음으로 제기한 이전 이유는 허술한 왜관 방어책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일본에서도 청의 남하에 대한 두려움이 제기되었는데 두모포왜관의 지세가 방어에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자신들이 지은 튼튼한 성곽이 있고 옛 부산포왜관이 있었던 부산진성으로 왜관을 옮겨달라는 요구였다. 조선 측에서는 그동안 일본을 이웃나라로 여기고 믿음과 의리로 호의를 베풀어 왔는데, 갑자기 들어줄 수 없는 사항을 제안하는 것은 억지 부리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전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요구의 이면에는 두모포왜관 부지 협소, 건물의 부족, 선창의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 측의 거부로 1차 왜관 이전 교섭은 결렬되었지만, 왜관 건물을 수리하고, 선창을 개선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일본에서도 목수들이 와서 왜관 공사에 함께 참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관 이전을 요구하는 일본 사절이 1659년에 다시 왔다. 왜관 이전만 허락해 준다면 왜관을 새로 짓는 토목 공사를 대마도 스스로 할 것이고, 조선에서는 도와주지 않아도 되며 부산진성이 아닌 다른 곳, 예를 들면 제포(진해 웅천)나 다대포 등지를 왜관 부지로 내어주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또한 조선에서 거부하였다. 다만 조선에서는 일본 측이 왜관 이전을 요구하는 실제 이유는 왜관 선창의 수리와 공작미(公作米) 확보라고 간주하고, 왜관 이전은 불허하는 대신 일본 측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공작미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조선에서 대금으로 결제하는 쌀이었다. 조선에서는 1651년 공작미제도를 만들 때 쌀의 지급을 5년으로 한정시켰는데, 쌀이 부족한 대마도에서는 공작미제도를 계속 연장해 나가려는 외교교섭을 펼쳤다.

■조선 조정, 왜관 이전을 허락하다

1609년 조선과 일본이 정식으로 국교를 재개한 후, 대일(對日) 외교와 무역 업무가 날로 증가한 데 비해 두모포왜관은 협소하고, 양국 무역과 직결되는 선창 여건도 좋지 않다는 것을 조선 조정에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1670년부터 왜관 이전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였지만, 공식적으로는 불허 입장을 유지하였다.

1671년 5월에 온 일본 사절 평성태(平成太, 별칭은 쯔에 효고·津江兵庫)가 왜관 이전을 요구하였을 때에도, 조선 조정에서는 거부한다는 외교문서를 전달하였다. 평성태는 강하게 반발하고 동래부사 면담을 신청하였다가 역시 거부당했다. 평성태는 수행원 200여 명을 이끌고 왜관을 뛰쳐나와 동래부 관아에서 시위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동래부사 등 관리들을 협박해서 조선 조정을 압박해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평성태를 뒤따라온 다른 일본 사절도 왜관을 마음대로 뛰쳐나와 불만을 제기하였다.

일본인들이 왜관을 벗어나 동래부 관아까지 오면서 조선 백성들의 위기감이 높아져 민심 동요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인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방법 대신 외교 교섭을 통해 스스로 왜관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12월 3일 무려 4개월 가까이 동래부 관아에서 농성하던 평성태가 병이 들어 갑자기 사망하였다. 조정 내부에서도 왜관 이전을 적극 고민하던 시기에 일본 사절의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자 왜관 이전 논의가 급진전되었다.

1673년 2월, 조정에서는 조선의 군사 기지와 국경 방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을 선택한다면 그곳으로의 왜관 이전을 허락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나타냈다. 이로써 30여 년을 끌어오던 왜관 이전 교섭은 끝이 났다. 조선과 일본이 함께 부지를 물색한 후 새 왜관 부지로 최종적으로 정해진 곳이 초량이었다. 이곳이 신관, 초량왜관이며 오늘날 용두산공원 일대이다.

양흥숙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3. 3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4. 4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5. 5“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6. 6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7. 7[도청도설] 부캉이가 띄운 북항
  8. 8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9. 9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10. 10‘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3. 3폭풍 SNS, 배우자 외부활동…총선운동 방불케 한 추석행보(종합)
  4. 4안보·사법·與 내홍…추석 이어 국감정국 달군다(종합)
  5. 5與 “민생 더 챙기라는 말 많아” 野 “대선 언제냐며 시민 분노”
  6. 6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 DMZ 사고 조사 지연…연휴 일파만파(종합)
  7. 7靑 “우크라 ‘비공개 합의 없었다’는 거짓 발표”…해명·사과 요구
  8. 8[2026 국감 브리핑] 김희정 "'대입 원서 접수번호로 경쟁률 유추 가능' 사실로 확인…정부 대책마련해야"
  9. 9연휴 강타한 우크라 포로 송환· DMZ 지뢰사고 늑장조사 논란
  10. 10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3. 3K-팝 효과 끝? 관광수지 넉 달만에 적자 전환
  4. 4늘어나는 법무수요…부산도시公 사내 변호사 찾기 안간힘
  5. 5금고 과당경쟁 제동…지역은행 판도 촉각
  6. 6한화에어로 ‘경력직 가이드라인(특정 학력·나이)’ 논란…“채용과정 개선할 것”(종합)
  7. 7‘사장님 퇴직금’ 노란우산, 공제·목돈 마련 든든
  8. 8“독자 기술이 미래 경쟁력…내년 매출 4100억 목표”
  9. 9CG 없이 대규모 전쟁·액션신 뚝딱…생성형 AI 활용 본격화
  10. 10세 가지 맛 한 번에…CU 트리플 삼각김밥 가성비 한 끼 호응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3. 3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4. 4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5. 5‘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6. 6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7. 7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8. 8금정구의원이라 믿었는데…임대보증금 1년 넘게 안 줘
  9. 9선거때 식사대접 혐의 사하구 체육회장 송치…돈봉투 수사는 무혐의
  10. 10부산지하철노조 쟁의 가결…조정 거쳐 내달 파업 예고
  1. 1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2. 2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3. 3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4. 4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5. 5[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6. 6한국 야구, 일본 꺾고 금메달…아시안게임 5연패 달성
  7. 7높이뛰기 우상혁, 2m22로 동메달
  8. 8[속보]'약속의 8회’ 한국 야구, 일본 3-1로 꺾고 AG 5연패
  9. 9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10. 10남동헌,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