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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역사 수정주의의 정체에 관하여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07 18:35:2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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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다루는 영화라고 반드시 픽션을 배제하라는 법은 없다. 도리어 잘 만들어진 픽션은 역사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며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아마데우스’(1984)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건 엄연한 허구이다. 그러나 타인의 재능을 질투하는 보통 사람의 열등감이라는 모티브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라는 핵심을 부각함에 있어 효과적이었다. 감독 밀로스 포먼은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가발을 연한 분홍으로 물들이며 그를 엉뚱한 시대에 떨어진 히피의 선구자처럼 재해석한다. ‘관상’(2013)에서 관상가가 김종서의 책사 역할을 하는 것 역시 허구이다. 그러나 한재림은 보통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을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의 파란 한 가운데에 몰아넣음으로써 정치의 혼란 속에서 무기력한 소시민의 초상을 제시하며 현대의 지배적 정서를 시대극 안에 투영한 바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나랏말싸미’(2019)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룸에 있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나쁜 사례 중 하나이다. 만약 이 영화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루는 영화였다면 승려 신미의 등장은 어디까지나 한글 책자의 발간에 관여함으로써 한글의 보급을 돕는 조력자 역할에 그쳤어야 했을 것이다. 정무를 챙기는 틈틈이 악화되는 시력과 싸우며 문자를 창안하는 작업에 매진하는 애민(愛民) 군주의 모습을 주변인물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식이었다면 이 기획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이 영화의 세종은 단지 신미라는 천재에 의지하면서 그의 작업물을 자신의 업적으로 삼는 위선자이자, 숭유억불(崇儒抑佛)을 외치는 신하들의 강권에 무기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가 역사를 다룸에 있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이다. 서부영화나 퓨전 사극이 그러하듯 정확한 시대를 특정 짓지 않고 가공의 이야기를 창작하거나, ‘왕의 남자’(2005) ‘광해-왕이 된 남자’(2012)처럼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되 이야기의 여백을 채워 재구성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고증에만 입각해서는 극이 성립되긴 어렵다. 그러나 시대극에 있어서 픽션이란 어디까지나 한 편의 서사로 재구성하기 위한 극적 허용이지, 바탕이 되는 사실 자체를 왜곡해도 된다는 역사 수정주의의 면허증이 아니다.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반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랏말싸미’의 역사 수정주의에는 작가적인 의도라도 있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명량’(2014)과 비교하면 사태의 본질은 명확해진다. 이 영화는 단지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정치 권력(선조-유학자)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천대받지만 깨어있는 민중(백성-승려)이 역사적 인물(이순신-세종)을 도와 성공을 이룬다는 틀에 박힌 각본 구조에 끼워 맞추기 위해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사실을 난도질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리더십을 상실한 왕과 자기 계급의 이익에만 충실한 신하들이란 구도, 쓸모없는 조연들의 연애담과 억지스러운 유머의 삽입 등 ‘물괴’(2018)나 ‘창궐’(2018) 같이 실패한 충무로 시대극의 전형성이 고스란히 답습된다. 왕권이 강력했던 세종의 치세를 조선 말기처럼 묘사하는 역사 왜곡은 무성의한 클리셰의 반복이 빚은 부산물인 셈이다.

   
‘나랏말싸미’는 창의적이고 진지한 각본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국 영화의 지금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일 따름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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