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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맨발로 넘으니…‘흥얼흥얼’ 아리랑이 절로

경북 문경새재

  • 최정현 기자 cjh@kookje.co.kr
  •  |   입력 : 2019-08-21 18:51:3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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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서 한양으로 통하던 길
- ‘새도 넘기 어려운 고개’ 새재

- 1594년 임진왜란 발발 2년 뒤
- 성 쌓고 제2 관문 조곡관 설치
- 1관문 주흘관·3관문 조령관은
- 약 200년 후 숙종 때 지어져

- 조선의 민요 문경새재아리랑
- 민초들 희로애락 녹여내 유명
- 입구엔 옛길박물관·생태공원
- 1관문 지나면 드라마 세트장 등
- 여름에도 관광객 발길 이어져

조선 초기 전국 각 지역에서 한양으로 연결되는 신작로가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한양까지 가는 길이다. 당시 약 380㎞로 경부고속도로보다 50㎞ 정도 짧았다. 걸어서 보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경상북도 문경시의 새재는 충청북도 충주시와 연결되는 고개다.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준한 고개였다. 억새가 무성해서 새재라고도 했고, 새도 넘기 힘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다.
   
경북 문경새재 중턱의 2관문(조곡관) 전경. 새재 초입의 1관문(주흘관)과 고개 정상의 3관문(조령관)을 포함해 3개의 관문이 있는데, 2관문은 임진왜란 발발 2년 후인 1594년에 가장 먼저 지어진 관문이다. 문경과 충북 충주를 연결하는 새재는 조선시대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준한 고개였지만, 지금은 넓고 푹신한 흙길이어서 누구나 걷기 편하다.
지금과 같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없던 시절 다양한 삶이 새재를 넘었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도 있었고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보부상도 있었다. 지방 출장을 떠나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선비들은 새재 중턱의 책바위에 돌을 던지며 과거 합격을 기도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 무혈 통과

   
문경새재 1관문 전경.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새재를 넘어간 수많은 사람 가운데는 1592년 임진왜란 직후의 일본군도 있다. 일본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 육군 4만여 명은 이 길목을 무혈 통과했다. 여기에는 뼈아픈 사연이 있다. 1592년 4월, 부산 상륙 사흘 만에 2만의 병력과 함께 문경에 도착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고민에 빠졌다. 문경새재는 목이 좁고 외길이라 자칫하면 병력 손실은 물론 패전까지 우려됐던 것이다. 그런데 수색을 나갔던 척후병의 보고는 ‘조선 병사가 한 명도 없음’이었다. 계략이라 의심하고 몇 번이나 척후병을 보냈어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은 거짓말처럼 유유히 이곳을 통과했다. 조선의 신립 장군은 정예부대를 충주에 배치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새재를 이용해 적을 막자고 했으나 신립은 들판에서 싸우려 했던 것이다. 평야 기마전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조선군의 대패였다. 논투성이 들판은 말이 달릴 수 없었고, 배후에는 탄금대 절벽이 버티고 있었다. 8000명의 군사를 잃었다. 신립도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새재 일대에 활 잘 쏘는 군사 수천 명을 매복시켰어도 능히 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 험한 요새를 버려둔 채 평지에 나와 싸웠으니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류성룡의 징비록은 이날의 패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 드라마세트장.
새재에 처음으로 성을 쌓고 관문을 설치한 때는 임진왜란 발발 2년 뒤인 1594년이다. 관문 설치를 주도한 사람은 충주 출신의 신충원이다. 지금의 제2관문으로 일명 조곡관이다. 신충원은 정유재란 때 지금의 제관문에서 일본군 통과를 저지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모집한 군사들 중에는 노비가 많았는데 노예를 잃은 주인들 비방이 자자했다는 것이다. 신충원은 끝내 금부에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후 행적은 아예 기록이 없다.

문경새재의 1관문(주흘관)과 3관문(조령관)은 2관문이 축성된 지 약 200년 후인 숙종 대에 지어졌다. 새재로 오르는 초입에 1관문이 있고, 2관문은 중간쯤에 있다. 고개 정상에 있는 것이 3관문이다. 구한말 문경에 의병이 일어나자 일본 토벌대가 새재를 휠쓸면서 2관문과 3관문이 무너졌다. 1관문은 6·25전쟁 때 전화를 겪었다. 관문들은 1974년 대대적인 보수 끝에 복원됐다.

■민초의 정서 녹여낸 새재아리랑

   
새재 방문객이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
문경새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경새재아리랑이다. 문경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가락으로 감아 돌고, 장단으로 솟구치니 곧 문경새재아리랑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은 고종 때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에 의해 조선의 민요로 채록됐고, 이 중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가네’라는 후렴구는 전국 수많은 아리랑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문경새재가 있는 주흘산과 조령산 자락에는 물박달나무가 많다. 재질이 단단하되 가지가 가늘고 크지 못한 물박달은 쓸모가 적었다. 망치 등 연장에 끼워넣는 자루로 쓰이든가 홍두깨 방망이로 쓰였다. 새재 사람들은 양반들에게 대들지도 못하고 항의도 못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박달나무에 빗대기도 했다. 이런 정서는 아리랑 가사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던 것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은 세월의 흐름과 유행의 변화 속에 한때 잊힐 위기에 처했다. 천만다행으로 이 지역 가객 송영철 송옥자 옹에 전승돼 살아났다. 문경새재 입구에는 이를 기념하는 문경새재아리랑비도 세워져 있다.

문경새재 일대 5.5㎢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1981년이다. 조선 시대 영남대로를 중심으로 현재와 같은 꽤 넓은 길이 조성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 길은 포장될 뻔했다. 현지를 방문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난개발을 우려해 비포장으로 남겨둘 것으로 지시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문경새재를 찾은 날은 올여름 더위가 절정을 이루던 때였다. 하지만 도립공원 입구 주차장을 지나 새재길로 들어서면 한여름 더위도 충분히 견딜 만하다. 새재 정상인 3관문까지 6.5㎞ 거리 내내 숲이 울창하고 새재계곡도 함께해, 시원함이 느껴진다. 적잖은 관광객이 한여름의 새재길을 즐기고 있었다. 새재길은 다양한 등산로도 함께 연결돼,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새재길은 볼거리도 많아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다. 우선 입구에서는 옛길박물관을 만나는데 여기서는 새재에 얽힌 역사와 다양한 얘깃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자연생태공원도 새재 입구에 있다.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1관문을 지나면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을 만난다. 조선 시대 궁궐과 마을 전경을 그대로 옮겨놨는데, TV드라마에 자주 나와 익숙한 전경이다. 새재길을 걷다 보면 옛날 실제 영남대로(과거길)를 알려주는 팻말도 여러 번 만난다. 여기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문경새재와 추풍령, 죽령을 경유하는 세 갈래 길이 있는데,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하여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도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남쪽의 추풍령으로 가면 과거에 추풍낙엽으로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주르륵 미끄러진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 인수인계식을 하던 교귀정도 새재길에서 만난다. 이곳에서는 매년 경상감사 업무 인계 재현 행사가 열린다. 새재길은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맨발로도 걷기 좋다. 발을 씻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재길이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유는 다르지만 수많은 사람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 영남대로 옛길에 삼국시대 때 쌓은 성…경북팔경 제1경 진남교반 한눈에

■ 고모산성

   
고모산성과 이어진 토끼비리(좁은 낭떠러지) 옛길의 일부 구간.
문경새재 조금 아래쪽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고모산성이 있다. 문경새재와 마찬가지로 영남대로 옛길 구간이기도 하다.

고모산성 둘레는 1270m 규모로 장방형인데, 근래에 들어 복원한 느낌이 강하지만 소백산맥 이남의 전진기지로서의 거점성으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삼국시대 초기 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할미성’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때에는 산성의 규모에 놀란 왜군이 성이 텅 빈 줄도 모르고 진군을 주저했다는 얘기가 있으며, 6·25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고모산성은 주변 산세를 이용해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동서남북으로 성문을 만들고 두 곳에 곡성(曲城)을, 가장 낮은 서쪽 계곡 중앙에는 2개의 배수구를 만들었다. 성의 높이가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로 차이가 있고, 너비는 2~3m로 쌓았다.

고모산성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눈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불정지역 외의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1km 내려가면 옛길의 1번지답게 명승 제31호 토끼비리(토끼 한 마리가 겨우 다닐 수 있는 낭떠러지) 옛길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최정현 기자 cj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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