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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조선 속의 일본 <7> 초량왜관 출입 감시하는 두 개의 문, 수문과 설문

왜인 밀수·매춘 끊이지 않자, 출입문 이중·삼중 봉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21 19:31:1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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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거주 일본인 급격히 증가
- 조선인 접촉 막으려 통제 강화
- 정문 ‘수문’ 안팎에 초소 만들어
- 동래부·부산진 군관 등 파견 감시

- 왜관 주변엔 통역소·마을 상존
- 왜인, 통역 핑계로 민가 불법통행
- 사건사고 빈번하자 ‘설문’ 설치
- 초량촌 주민 문밖으로 강제 이주

- 국가 차원 강한 통제의 벽에도
- 일반인들 교류의 통로 이어가
- 통제·소통 교차하는 상징적 장소

■금표를 세워 통행 범위를 정하다

1678년 초량왜관 시대가 열리면서 이에 맞게 왜관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동래부사는 이복(李馥)이었다. 그는 일본 측과 약조를 맺고 일본인의 통행 범위를 정하였다. 앞쪽은 항구를 지나 절영도(영도)에 왕래할 수 없고, 서쪽은 연향청(연대청)을 지나지 못하고, 동쪽은 객사를 지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듬해 1679년에는 왜관 선창을 기준으로 왜관 경계를 정한 금표(禁標·금지 표지)를 왜관 주변 네 곳에 세웠다. 동서남북으로 통행 범위를 정했는데, 가장 가까운 서쪽은 80보, 가장 먼 동쪽은 300보 정도였다. 두모포왜관 때는 제한 구역을 알리는 인위적인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았다. 두모포왜관 때보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접촉·교류를 막는 통제가 훨씬 강화된 것이다.
두모진지도(1872년·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설문과 산으로 이어진 담장이 보이고, 이주 마을인 신초량이 그려져 있다.
■초량왜관의 정문, 수문

초량왜관은 사방에 담장이 있어서, 여러 곳에 문이 있었다. 수문(守門), 수문(水門), 북문 등이 그것이다. 수문(守門)은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정문으로, 동문에 해당한다. 수문(水門)은 왜관 내 일본인의 시체를 운반하는 문으로, 무상문(부정문)이라 부른다. 북문은 일본 사절이 연향청에 출입할 때 드나드는 문으로, 연향문(연석문)이라 부른다. 수문의 위치는 ‘부산의 고적과 유물’(부산부·1936)에 의하면, 본정(本町) 2정목 3번지 제일은행 지점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중구 동광동 2가 3번지 부근이다. 규모는 ‘증정교린지’에 12칸, ‘변례집요’에 5칸으로 나온다. 안쪽에는 사각형 ‘되’ 모양을 뜻하는 ‘마쓰가타’(승형)라는 공간이 있었다. 수문 안에 경비를 위한 또 하나의 공간이 존재하였다. 이곳에는 제찰(制札·금지 등을 알리는 표지)도 서 있었다.

두모포왜관 때는 수문의 열쇠를 밖에서 잠갔으나, 초량왜관 때는 안팎으로 잠갔다. 이 때문에 수문 안팎에 초소를 설치하여, 바깥쪽은 조선, 안쪽은 일본 측에서 지켰다. 통행증을 가진 자만 출입이 가능하였다. ‘증정교린지’를 보면, 수문에는 동래부와 부산진 장교가 각 1명, 소통사(하급 통역관)가 2명, 문지기가 2명 파견되었다. 그런데 일본 측 자료인 ‘초량화집’을 보면, 동래부와 부산진에서 각 3명이 파견되어, 군관 1명이 10일씩 교대 근무를 하였다. 출입하는 인원수는 물론이고, 수문 밖에서 날마다 열리는 새벽시장(조시)에 참여하는 사람들까지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수문 열쇠는 매일 밤 부산진에 바쳤다가, 아침에 문지기가 가져왔다. 매일 저녁 부산진에서는 군호(軍號·암구호)를 수문으로 보냈다. 복병막을 지키는 당번들과 암구호를 맞추어 확인하면서, 통행을 감시하였다.

■임소와 설문 그리고 신초량촌 탄생

변박의 왜관도(1783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위아래 네모 안이 각각 설문과 수문, 동그라미 안은 복병막이다. 이 그림에는 서2복병막이 나타나 있지 않다.
1679년에 정해진 초량왜관의 경계는 일본 측 자료인 ‘분류기사대강’에서 남서쪽은 초량항(項)에서 강 하류, 서쪽은 초량항에서 민가, 북쪽은 ‘사카노시타’(영선 고개 아래) 민가까지라고 하였다. 왜관 주변에는 ‘초량’이란 지명과 관련된 민가나 마을이 있었다. 왜관 건설 때 조선 측 공공건물도 정비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초량객사였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전’자를 쓴 나무 패)를 모시는 곳이다. 일본 사절이 조선 국왕에게 절하면서 예를 표하는 장소로써, 상징적 외교 공간이었다. 객사 주변에는 일본어 통역관(훈도·별차)이 근무하는 ‘임소(任所)’라는 곳이 있었다. 임소 주변에는 하급 통역관인 소통사가 근무하는 통사청 등 여러 역관 건물이 있었다. 객사와 임소 일대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조선인 마을인 초량촌이 있었다.

훈도·별차의 집이 초량촌에 있고, 일본인은 훈도·별차 집에 왕래하는 것을 핑계로 초량촌 민가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때문에 초량촌은 불법 통행(난출), 정보 유출, 밀수, 매매춘(교간) 등의 온상이 되었다. 동래부사 권이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량촌 출입이 가장 잦은 일본인 4, 5명에게 곤장을 때리는 등 본보기로 삼았다.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훈도·별차의 공간과 초량촌민의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709년에 훈도·별차의 집 서쪽 담장과 바닷가를 연결하여 산꼭대기까지 담장을 쌓고, 출입문인 설문(設門)을 만들었다. 그리고 90여 민가를 설문 밖으로 이주시켰다. 이때 만들어진 마을이 ‘신초량촌’이다. 이것이 동구에 있는 현재 초량의 원형이다. 초량왜관과 지금의 초량이 같은 이름이지만 위치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권이진이 설문을 쌓은 직접적인 계기는 1707년에 발생한 조선인 여인과 일본인 남성과의 매매춘 문제였다. ‘증정교린지’에는 동래부 장교 1명, 소통사 1명, 문지기 1명이 지킨다고 하였다. ‘초량화집’에는 동래부 파견 군관 3명이 10일씩 교대로 지킨다고 하였다. ‘부산의 고적과 유물’(1936)에는 초량정(町) 571번지에 설문 초석이 근래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였다. 지금의 동구 초량동 571번지 일대이다.

■3개에서 6개로 늘어난 초소, 복병막

중구 용두산공원 건너편의 중구청 주변에 복병산(76.6m)이란 작은 산이 있다. 산 이름은 초량왜관 주변에 있던 초소인 복병막(伏兵幕)에서 유래한 것이다. 왜관 담장 주변의 세 곳에 동, 서, 남복병막이 있었다. 1716년에는 세 복병막의 담당 경비구역을 정하였다. 즉 ① 왜관 선창에서 동복병 곡담(曲墻)까지 ② 거기서 서복병 곡담까지 ③ 거기서 남복병 곡담까지 ④ 거기서 동암(용미산)까지 네 구역으로 나누고 수문군관, 동복병, 서복병, 남복병이 맡았다. 1739년에는 세 곳 복병막을 둘로 나누어 동2, 서2, 남2복병막이 추가되었다. 세 곳에서 여섯 곳으로 늘어난 것은 1738년에 발생한 조선인 여성과 일본인 남성과의 매매춘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1760년에는 남2복병막을 성신당(훈도 근무처) 북쪽, 즉 부대현(釜大峴) 길목 옆으로 옮겼다. 옮긴 후로는 ‘북복병막’이라 불렀다. 이곳은 설문에서 멀지 않은 곳이므로, 설문 쪽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였다.

■면과 선의 통제와 그 너머

왜관은 사방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면으로 통제된 공간이다. 그 일상적 통로가 수문이다. 수문이 설치된 지 30여 년 후에 다시 설문이 설치되었다. 설문 담장은 바닷가에서 산 정상까지 이어졌지만, 그것은 선으로 통제하는 것이지 면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복병소도 있었지만 산을 넘어 돌아가는 등의 방법으로 설문의 경계를 통과하였다. 설문 설치 전에는 왜관 담장이 왜관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였다. 설문이 설치되면서 또 다른 경계가 생긴 것이다. 설문은 수문의 바깥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설문 쪽 통제가 강화되면서, 왜관 서쪽 방면 길목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따라서 서복병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설문은 선의 경계이지만, 부산진과 동래부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에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수문 밖에 있는 또 하나의 경계인 설문은 왜관과 부산진(동래)을 차단하는 상징적 경계·공간이었다. 하지만 통행 범위, 수문, 설문, 복병막 등 국가 차원의 강한 통제의 벽에도 불구하고, 일반민과 지역 차원에서는 그 통제의 벽을 넘어 교류의 통로를 열어나갔다. 왜관은 통제와 교류가 교차하고 교착하는 역동적인 장소이고 공간이었다.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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