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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폐교·낡은 폐공장, 삶의 랜드마크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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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일본 오타루운하, 부산 F1963. 세계지도 위에 뚝뚝 떨어져 있는 네 장소가 공유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도시의 오래되고 낡은 폐시설을 리모델링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랜드마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이라인파크는 2.3㎞에 이르는 폐고가철로를 활용한 공원이며, 테이트모던은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다. 오타루의 상징인 이 운하는 물류 기능을 상실해 자칫 매립될 뻔한 물길을 살려 주요 관광 자원으로 활용했고, F1963은 폐공장을 전시장·중고서점·카페·예술도서관·갤러리가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김종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는 “오래된 공간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 젊고 혁신적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건물과 공간 자체에 힘이 있기에 따로 애쓰지 않아도 스토리텔링이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지역의 오래된 공간을 리모델링해 지역 명소로 부활시키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행 삼아 가볼 만한 전국의 도시 재생 성공 사례 세 곳을 살펴봤다.


   
전북 전주 덕진구 팔복공업단지 안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예술공간 ‘팔복예술공장’ 전경.
◆전주 팔복예술공장

- 카세트테이프 만들던 곳, 25년 만에 예술터로

버려진 물탱크 아래를 보금자리 삼아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물탱크를 둘러싼 육면체 철골 구조물을 지지대 삼아 아래로 늘어진 낚싯줄에도 조만간 식물이 타고 오를 것이다. 버려지고 오래된 물건에 자연이 깃드니 기이한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다. 이곳은 전북 전주 덕진구 팔복공업단지 안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의 3층 옥상. 지난달 28일 찾은 이곳에는 ‘수직의 안팎에서’라는 제목으로 설치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팔복예술공장’의 3층 옥상에서 설치작품 전시 ‘수직의 안팎에서’가 열리고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쏘렉스’ 공장을 리모델링한 예술공간이다. 작가들이 작업하고 전시하는 창작공간과 주민 대상 예술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 쏘렉스는 카세트테이프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1979년 공장을 세웠으나 1989년 400일에 달하는 긴 파업 끝에 1992년 문을 닫았다. 이후 25년간 버려졌던 폐산업시설을 전주시가 주도해 재생했다. 그 덕분에 요즘 회색빛 공단에 생기가 돈다.

전주시는 팔복예술공장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옛 건물을 가능한 한 보존했다. 생산 2과가 주 전시장이 됐고, 여공들이 쓰던 화장실도 전시공간으로 살아남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시멘트벽과 기둥이 어떤 예술작품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폐교를 리모델링한 ‘지혜의 바다’ 도서관 내부. 높은 천장 끝까지 책이 쌓여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창원 지혜의바다 도서관

- 도서관이 된 학교 체육관 … 하루 5000명 책과 유영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지혜의바다’ 도서관. 2017년 구암중과 구암여중이 통합해 구암중 건물이 비게 됐다. 활용 방안을 고심하던 경남교육청은 구암중 체육관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그렇게 2008년 개관한 도서관이 ‘지혜의바다’다. 마산도서관 분관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본관보다 더 사랑받는 공간이다. 하루 평균 5000명이 찾는다. 김해 주촌면에도 지혜의바다를 짓고 있다.

   
‘지혜의바다’ 도서관 2층 ‘꿈다락’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로운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겉에서 보면 보통 중·고등학교 체육관과 다르지 않은데 안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옛 필로티 주차장을 활용한 도서관 1층에는 레고방 동화방 웹툰방 전시서가 등이 들어섰다. 책만 있는 지루한 공간이 아니라 놀기도 하고 웹툰도 보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하이라이트는 2층 복합독서 문화공간이다. 체육관답게 일반 건물 두 층 이상을 튼 듯 층고가 높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책이 바닥부터 높은 천장까지 빽빽하게 꽂혀 있는 모습이다. 위쪽 책은 전시용이다. 파주 지혜의숲 도서관, 서울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과 같은 콘셉트다.

독서 공간도 일반 도서관과 다르다. 딱딱한 테이블과 의자에서 읽지 않아도 된다. 벌집 모양의 ‘꿈다락방’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다. 어린이 두어 명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에 쏙 들어가 자유로운 자세로 책을 읽는다. 꿈테이블은 서른 명 정도 앉을 수 있는데 스탠드 조명이 이국적이다. 옛 체육관 무대에는 반쯤 누워 책을 볼 수 있는 빈백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라도 지혜의바다 도서관에 가면 ‘한번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길 것 같았다.


   
전북 고창군 해리면 ‘책마을해리’. 시골 폐교를 리모델링해 마음껏 책을 읽고, 책을 출판하는 책마을로 만들었다.
◆고창 책마을해리

- 책 읽는 오두막·감옥·캠프까지 … 책덕후들 모여라

바다가 지척인 전북 고창군 해리면 월봉마을. 마을에 단 하나뿐이던 초등학교가 2001년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았다. 자칫 도축장이 될 뻔한 폐교를 살린 이는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이대건 현 책마을해리 대표였다. 일제강점기에 증조할아버지가 마을 아이들 교육을 위해 건립해 기부한 학교가 도축장이 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2006년 폐교를 사들인 뒤 온 가족이 고창으로 이주해 이곳을 ‘책마을’로 꾸몄다.

   
책마을해리 운동장에 있는 오두막. 이곳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책마을해리에는 17만 권의 책이 있다. 운동장 플라타너스에 얹힌 오두막이든, 안에서는 열 수 없는 ‘책 감옥’이든, 어린이·청소년책 전문 버들눈도서관이든 책마을해리 곳곳에서 도심의 일상과 단절한 채 독서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책마을해리의 목표가 책 읽기만은 아니다. ‘읽고 하고 쓰고 펴내고’가 그들의 모토다. 책을 읽고, 다양한 체험을 하고, 무엇이든 기록하고, 그 결과물을 출판으로 마무리한다는 것. 책을 펴내기 위해 읽고 하고 쓰는 다양한 캠프가 책마을해리에서 연중 개최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언제든 방문할 수 있다.

글·사진=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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