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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영화속 과거 재현, 80년대서 90년대로 중심이동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18 19:08:2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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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2003) 이래 ‘변호인’(2013)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가 과거를 재현하는 문제에 집착한 지 오래다. 근현대사를 영화의 소재로 불러내고 환기하려는 이 증상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재현된 과거가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미디어에 의한 역사의 재현이란 필연적으로 선택적인 재구성일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가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택시운전사’(2017)와 ‘1987’(2017)이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과 같은 1980년대의 사건을 관객 앞에 데려다 놓았다면, ‘벌새’(2018)와 ‘유열의 음악앨범’(2019)은 1990년대의 시공과 기억 속으로 관객의 의식을 끌고 간다. 3년 남짓한 새에 80년대에서 90년대로 가는 급격한 흐름의 변화가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CGV아트하우스 제공
‘택시운전사’와 ‘1987’은 역사적 사건의 음울하고도 묵직한 중력 속으로 인물들을 끌어들인다. 이 두 영화는 ‘구심력’의 영화이다. 택시운전사 만섭은 면식도 없는 광주시민들의 편이 되어 참극의 와중으로 다시 돌아가고, ‘1987’의 인간군상들은 파편화된 단독적 개인에서 단합된 민중으로서의 거국적 연대를 이룩한다. ‘권력에 맞선 민주화의 거대 서사’라는 모티브의 동일성에 의해서 영화의 사건들은 촛불시위라는 당대 사건의 역사적 대응물로 현재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90년대로 넘어온 ‘벌새’와 ‘유열의 음악앨범’에서는 양상이 사뭇 달라진다.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유열의 음악앨범’은 비슷한 시기 IMF 전후의 사회상을 투영하지만 그 사건이 극의 전개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거나 배경으로 소모하는 데 그친다.

80년대 배경의 두 영화는 국가적 규모의 사건이 개개인 삶의 영역에까지 미치는 파장을 묘사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거시적 시야와 공동체주의를 요청한다. 그러나 90년대로 넘어온 두 영화의 프레임은 외부 맥락에는 무관심하거나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가족 내지 연인의 미시적인 관계 내부에 밀착해, 폐쇄적인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찢기고 분열되는 개인들을 담는다.

‘택시운전사’와 ‘1987’에서 나타났던 공동체적 관계에 대한 상상력은 이 지점에 이르면 말끔히 증발하고 없는 것이다. ‘벌새’와 ‘유열의 음악앨범’은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원심력’의 영화들이다. 설령 국가적인 규모의 파국이 벌어지고 희생자가 발생해도 남의 일일 뿐, 그에 따르는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의 소환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반된 두 방향의 가운데 ‘국가부도의 날’(2018)을 넣어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적 재난의 결과로 계급이 갈렸고 가족적 공동체는 돈을 매개로 한 비인격적 고용 관계로 철저히 해체되었다. 사실관계는 정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각자도생이 화두가 된 지금 한국사회의 기원을 IMF로 소급해가는 정서적 리얼리티의 측면에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한국영화의 과거 재현은 개인을 공동체로 끌어모으는 구심력의 뜨거운 판타지에서, 역사적 전망을 상실한 채 고립된 분자적 존재들의 소외를 그리는 원심력의 차가운 현실로 이행하고 있다. 기억의 몽타주. 영화의 형태로 나타나는 집단기억은 당대의 사회정치적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역으로 현재를 증언한다. 90년대 배경의 영화들은 촛불 시위 이후 냉소로 싸늘히 식어가는 한국사회의 정념이 투영된 문화적 증거물인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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