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왜관…조선 속의 일본 <10> 왜관 정문 앞에 조시가 서다

왜관 앞서 열린 아침장… 왜인들, 女상인 물건만 팔아줘 동래부사 발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02 18:41:54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일본인 500명이 먹을 식재료 등
- 조선인, 생필품 파는 조시 열어
- 조정, 두 민족 만남 통제 위해
- 왜관 문 앞에서만 열도록 규정

- 시간 지나며 시행규칙도 무너져
- 왜관 안 매매 늘고 상인도 증가
- 대규모 미곡·포물시장으로 변화
- 화폐 금지에도 상평통보 통용

- 주로 초량촌 주민 물건 팔았지만
- 부산진·두모포·당동서도 참여
- 김해선 오리 팔기 위해 오기도
- 여성 상인에겐 더 후한 값 쳐줘
‘조선도회’ 속 조시(아침장) 장면. 일본 교토대 도서관 소장
■왜관 일본인의 먹거리 시장

1678년 4월 23일 489명의 일본인이 초량왜관으로 이사하였다. 두모포왜관·초량왜관 때 500명 정도의 일본인이 왜관에 살았다. 이처럼 왜관은 일본인의 일상적인 삶터다. 500명 정도의 일본인이 매일 먹는 식재료는 어디서 조달하는가. 대마도나 왜관 주변에서 조달되겠지만, 배의 왕래를 고려한다면 대마도보다 왜관 주변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조달하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왜관의 일본인이 매일 쓰는 쌀·어물·채소·과일 등 일상적 생필품을 매매하는 시장이 조시다. 조시는 이름 그대로 아침장이다.

하지만 아침·오전이 아니라 종일 시장이 열리기도 하였다. 수문을 지키는 군관들은 조시에 가지고 오는 물건과 사람 수를 적어 동래부에 보고하고, 물건 내용을 점검하여 세금을 받기도 하였다. 조시는 왜관에 들어갈 수 없는 조선인이 왜관 밖에서 일본인과 매일 만날 수 있는 합법적인 장소·공간이었다.

■두모포왜관의 좌자천 하천가에 선 아침장

권이진 부사가 쓴 ‘유회당집’. 권 부사가 본 조시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조시가 언제부터 열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1654년 전에 존재한 것이 사료에서 확인된다. 두모포왜관의 문(수문, 정문)은 동문 하나뿐이다. 동문 밖에는 좌자천(좌천)이 흘렀다. ‘변례집요’ 1665년 5월 조시 기사를 보면, “어물·채소 시장은 왜관 수문 밖에 있는 좌자천 동쪽 하천가에서 열렸다”고 하였다. 조시에 간 사람은 주로 부산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걸음이라도 멀리 가는 것을 싫어해서, 마을 안 길가에 조시를 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인은 좌자천 동쪽 하천가보다 좀 멀리 있는 마을까지 다닐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일본인이 조시가 열리는 마을까지 들어가면서, 두 나라 사람이 서로 섞이는 혼잡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1665년에는 다시 원래 위치인 왜관 문 앞에서 열도록 지시하였다. 당국의 입장에서는 조시는 허용하되, 조선인과의 만남은 가능한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초량왜관의 수문(정문) 앞에 선 아침장

1678년 초량왜관이 만들어지면서, 새 왜관에 맞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1678년 제정된 무오절목에서는 ‘어물·채소는 문밖에서 매매한다’고 규정하였다. ‘증정교린지’(조시약조)에서는 “어물·과일·채소·쌀 등을 매일 아침 전에 왜관 문밖에서 팔게 하면, 왜인들 역시 수문 밖에서 사서 즉시 들어갈 것이요, 절대로 전처럼 민가에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초량왜관 정문(수문) 밖에서 조시가 열린 것은 일본인이 구매한 즉시 왜관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왜관 문에서 최단 거리·최소 시간의 장소에서 조시가 열린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최단 거리이지만, 물건을 팔러 가는 조선인에게는 그만큼 거리가 먼 장소였다.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에는 ‘조선도회’라는 초량왜관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조시에서 장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한자로 조시라고 쓰여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왜관 그림 가운데 유일하게 조시를 그린 그림으로 생각한다.

■어물·채소·과일시장에서 미곡시장으로

조시 상인은 원칙적으로는 왜관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이런 규정은 무너지고 조시 상인이 왜관에 들어가서 매매하는 것이 확대되었다. 초량왜관으로 이전한 지 불과 10년이 지난 1688년에 이를 금지하는 조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금지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조시 상인이 왜관에 들어가 매매하는 것이 늘어나면서, 조시는 어물·채소, 소량의 미곡 등을 판매하는 일용잡화 시장에서 대규모 미곡·포물 판매시장으로 변하여 갔다. 조시의 기능과 성격이 바뀌면서 조시 상인의 수도 증가하였다. 1709~1710년에는 30~40명, 19세기 후반에는 50~60명이나 되었다. 조선 후기의 기본 법전인 ‘속대전’(1746년)과 ‘대전통편’(1785년)에서는 “조시 때 각 영읍(감영·병영·수영이 있는 마을)과 사상(私商)의 선박이 미곡을 싣고 와서 매매하는 자는 장형 100대, 도형(격리 노역형) 3년에 처한다”고 규정하였다.

원래 일본인은 조시에서 어물·채소·과일 등을 사고 쌀로 값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1678년부터 상평통보가 통용되면서, 조시에서도 동전 사용이 활발해졌다. 1701년 동래부사 김덕기는 군관을 파견하여 조시에서 동전을 사용하는 것을 살피고, 만약 발각되면 잠상(밀수) 법으로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조시에서 동전이 많이 통용되면서, 일본인들이 동전을 다시 만들어 품질을 떨어뜨리고, 상거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낙동강 오리와 겨울철 별미 왜관 오리전골

초량왜관 조시에 물건을 파는 사람은 왜관 주변에 사는 초량촌 주민이었다. 물론 왜관과 가까운 부산진, 두모포(고관), 대치(대티), 사도(현 부평동·보수동 일대), 당동(현 아미동 일대) 주민들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멀리 김해 사람, 심지어 300~400리 떨어진 사람까지 왔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김해 사람들은 오리를 팔러 조시에 왔다. 1801년부터 24년간 김해에서 유배 생활을 한 이학규 문집을 보면, “동짓날 집집마다 오리를 사냥하고 돌아오는데, 동래부 시장에 내다 판 후에 오리가 품귀했다” 또는 “연안 포구 사람들은 오리 사냥을 하면서 먹고 사는데, 일본인이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동래부 시장에 내다 판다. 동지를 지나면 고기가 갑자기 맛이 없어져서 매매가 되지 않아, 시장에 팔 것을 구하러 가덕도에 가서 청어·대구를 잡아 온다”고 하였다. 김해 사람들은 동지까지는 오리를, 동지 후에는 청어·대구를 잡아 조시에서 팔았다.

왜관 일본인들은 신년이나 조선 국왕에게 진상품을 바치는 연회 때, 특별한 접대 요리를 먹었는데, 특히 스기야키나 오리나베(전골)가 유명하였다. 오리전골에는 오리, 무, 우엉, 미나리, 미역, 유부는 물론 어묵, 모자반, 유자, 유채잎 등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갔다. ‘오늘은 제대로 된 요리를 먹었구나’ 할 정도로 오리전골은 유명하였다. 겨울철 별미인 오리전골의 기본 식재료 오리는 낙동강 연안 김해 사람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어물·채소가 아니라 아내·딸을 파는 것

1709년 1월부터 1711년 4월까지 동래부사를 지낸 권이진은 왜관(일본)에 대한 대표적인 강경 대응론자다. 그가 조정에 보고한 내용에는 조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조시 때 남녀가 섞여 가면 남자가 가지고 간 것은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 않고, 여자가 가지고 간 것은 아무리 나빠도 반드시 팔린다. 때문에 조시에 가는 사람은 모두 여자고 남자는 한 명도 없다. 여자가 어물·채소를 팔 때, 왜인 손을 잡고 때리려는 모양을 하면서 ‘이 도적놈아 값을 이리 적게 주느냐’고 하면, 왜인은 여인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애련한 기색을 보이고는 많은 값의 쌀을 준다. 젊고 예쁜 여자면 가지고 간 물건이 긴요하지 않아도 값을 배로 주니, 이것은 어물·채소를 파는 것이 아니라 너의 아내·딸을 파는 것”이라고 하였다.

초량촌의 여성들은 매일 조시에 가면서 일본인과 안면을 익혔다. 일본인은 이들과 단골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그래서 토시·버선 등을 재봉해 달라고 단골 여인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이처럼 조시는 왜관 주변 조선인 여성과 왜관 일본인 남성이 만나는 장소 역할을 하였다. 조시는 식료품시장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조시는 왜관 주변 지역민·소상인·사상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4. 4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5. 5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6. 6[도청도설] if, 손아섭
  7. 7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8. 8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9. 9[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10. 10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1. 1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4. 4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5. 5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6. 6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7. 7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8. 8이 대통령 "중수청 지휘감독 포기하는건 탄핵사유" 野 "국무회의 참석하면 밀실지휘 없어지나"
  9. 9[뭐라노]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10. 10김여정 "국경선 새 대응수단 임무대기…확성기도 수일 내 가동"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6. 6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7. 7[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8. 8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9. 9흑백요리사 셰프, 국내산 수산물 해외 홍보 나섰다
  10. 10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6. 6취임하자마자…도시철 파업 막기 숙제
  7. 7특검팀, 마산합포구선관위 등 투표자수 허위 입력 6곳 추가 확인
  8. 8구조하다 놓친 익수자 숨진 채 발견
  9. 9부산 다문화 고교생 5년새 2배…정작 한국어학급 ‘0’
  10. 10“거제 양대 조선소와 상생 협의…남부내륙철도에 행정력 집중”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5. 5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6. 6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7. 7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8. 8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9. 9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10. 10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