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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서원·고택, 청명한 하늘 만나니 한 폭의 그림이 되다

함양 서원·한옥마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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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리학 대가 정여창 기리는 남계서원

- 정유재란 때 불타 1612년에 재건
- 우리나라 서원 건축 형태의 원형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
- 인근 운치 있는 분위기의 청계서원
- 승안사 터 삼층석탑 등도 둘러볼 만

# 100년 넘은 한옥만 60채 넘는 개평마을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나온 일두고택
- 하동정씨·노참판댁 고가 등 풍경 일품
- 솔송주문화관에선 500년 전통주 시음도

경남 함양군 함양읍의 북동쪽, 거창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와 나란히 들어선 안의를 지나 남쪽으로 흐르는 남강 좌우의 야트막한 산자락과 들판에 남계서원과 개평한옥마을이 자리 잡았다. 남계서원은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 오현으로 불리는 일두 정여창을 기리는 곳으로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또 개평마을에서는 정여창의 생가인 일두고택을 비롯해 고택들이 반긴다. 이번 여로는 정여창의 선비 정신을 좇아가는 길이지만 노랗게 변해가는 들판을 지나 고택의 담장을 돌며 가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함양 남계서원 출입문인 풍영루가 오랜 세월을 이겨낸 품위 있는 자태를 보여준다. 지역 유생들은 함양 출신으로 조선 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불리는 일두 정여창을 기리고자 남계서원을 세웠다.
■정여창의 정신 기리는 남계서원

남강을 바라보는 남계서원은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승안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자락이 효리마을에서 낮게 내려왔다가 다시 살짝 솟은 산비탈에 자리 잡아 서쪽을 바라보고 선 남계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소수서원에 이은 두 번째 사액서원인 남계서원의 건물 배치를 후대 서원들이 따라 했기 때문이다. 지역의 유생들이 함양이 낳은 걸출한 인물인 정여창을 기리고자 1552년에 서원을 세웠는데 1566년에 남계라는 사액을 받았다. 정유재란 때 불타 1612년 다시 세워졌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를 피해가 당시 모습을 지켰다.

   
출입문인 풍영루를 지나면 좌우에 연꽃을 심은 연지가 맞아준다. 오른쪽 연지 뒤의 동재인 양정재 누마루에는 연꽃을 사랑하는 집이라는 뜻의 애련헌이라는 현판이 걸렸고 서재인 보인재에는 영매헌이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두 현판 각각 옛 군자들이 사랑해 가까이한 연꽃과 매화의 이름이 붙었다. 학습 공간인 중앙의 명성당에는 가을을 맞아 지역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의 체험학습이 한창이다. 서원이 옛 정신을 기리는 데서 나아가 살아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명성당 뒤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 들어서는 제향 공간에는 앞으로 배롱나무, 뒤로 소나무가 늘어서 기품을 더한다. 내삼문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남계천으로도 불리는 남강 너머 백암산이 마주 보인다.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인 정여창은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 문하에서 공부하며 성리학의 대가로 성장했다. 벼슬살이하는 동안에는 백성의 고통을 어루만져 줘 칭송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종직에서 비롯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두 차례 사화에 연루돼 유배 갔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부관참시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와 함께 공부했던 김일손도 무오사화 때 목숨을 잃었는데 남계서원 옆에 있는 청계서원이 그를 기리는 곳이다. 김일손이 살던 청계정사가 있던 자리로, 20세기에 들어 청계서원으로 복원할 때 남계서원이 기꺼이 이 땅을 내놓았다고 한다. 남계서원만큼 찾는 이가 많지는 않지만 운치 있는 소나무와 꾸밈없는 작은 연못의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승안산 자락 정여창 묘역 앞의 승안사지 삼층석탑.
남계서원 주변에는 정여창과 관련해 찾아볼 곳이 또 있다. 서원 북쪽 효리마을에 그의 후손이 19세기 말에 지은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를 둘러본 뒤, 승안산 정상 북쪽 분지로 올라가 양지바른 비탈에 자리 잡은 정여창 묘역을 찾아보자. 묘역 입구 승안사 터에 있는 고려 시대 석조여래좌상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함께 살펴도 좋다. 되돌아 내려가 3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의 도로가에는 영조 때 일어난 이인좌의 난에서 충절을 지킨 하동 정씨 9명의 정려비를 모신 구충각과 정여창신도비가 있다. 스마트폰 앱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함양군의 관광 안내 지도에만 위치가 개략적으로 표시돼 있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고즈넉한 한옥의 멋, 개평마을

   
개평한옥마을 중심에 있는 정여창의 생가인 일두고택 중 사랑채.
남계서원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기와를 올린 한옥 스타일로 지은 지곡면사무소와 지곡보건지소 앞을 지나 개평교를 건너 개평한옥마을에 들어선다. 두 개울이 합쳐지는 중간에 끼어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에 끼일 개(介)자를 썼다. 지곡초등학교 앞이 남쪽 평촌천과 북쪽 지곡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곳이 함양인데 그 중심이 개평마을이다. 100년 넘은 한옥만 60채가 넘는 개평마을에는 기와지붕 아닌 집이 드물 정도다. 마을로 들어서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관광안내소인 일두홍보관에서 개평마을 지도를 얻어 느긋하게 골목골목 걸으며 고택들을 탐방하면 된다.

시작은 일두고택이다. 정려패가 걸린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나온다. 석가산을 돌아가면 곳간과 안채, 아래채를 거쳐 집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일두고택에서는 드라마 ‘토지’ ‘미스터 션샤인’ 등을 찍었는데 사랑채 뒤의 중문간채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조금 어수선하다. 일두고택 맞은편의 솔송주 문화관도 들러보자. 여기서는 하동정씨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500년 전통의 솔송주를 맛볼 수 있다. 제조 공장은 마을 입구에 있고 이곳에서는 솔송주와 담솔, 녹파주 등을 시음할 수 있다. 문화관과 연결된 고택에서 한옥 스테이도 할 수 있다. 맑은 계류가 흐르는 평촌천을 따라가면 19세기 말에 지은 하동정씨 고가와 오담고택을 둘러보고 내려와 노참판댁 고가, 풍천노씨 대종가를 차례로 만난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대문채를 보수 공사 중이라 둘러보기 어렵다.


◇ 근처 가볼 만한 곳

- 울긋불긋 색색으로 물들 천년숲 ‘함양 상림’

   
함양읍 상림 한적한 숲속에 있는 이은리 석불.
남계서원과 개평한옥마을은 함양읍에서 멀지 않다. 잠깐 짬을 내면 단풍이 아름다운 함양 상림을 둘러볼 수 있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함양읍의 수해를 막고자 조성한 상림은 요즘 함양 사람뿐만 아니라 외지 관광객도 꼭 한 번은 들리는 명소가 됐다.

누구나 아는 곳이지만 다시 가도 좋은 곳이기도 하다. 함양읍 중심지의 북쪽에 접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흘러가는 위천을 따라 조성한 상림은 계절마다 나름의 매력을 보여주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수종의 잎새가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늦가을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전에 여러 차례 들렀다더라도 지금 시기 상림의 매력은 놓치면 아쉽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연꽃단지는 몇 종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연잎이 시들고 씨앗을 맺었다. 하지만 위천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어 상림을 한 바퀴 돌면 문득 한적한 구석에서 깊은 숲에 든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숲의 매력에 빠져 걷다 보면 틈틈이 문화재와도 만난다. 숲 중간에 있는 이은리 석불은 예전 홍수 때 위천 바닥에서 발견돼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둑을 따라 난 산책로를 계속 걸어 남쪽 끝까지 가면 대원군 때 세운 함양척화비도 나온다.

글·사진=이진규 전문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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