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필립스의 ‘조커’(2019)는 ‘조커의 탄생’에 관한 영화이다. 배트맨이 배우를 바꿔가며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지만, 정작 숙적이라 할 조커의 기원에 관한 영화는 없었다. 아마도 제작진은 이 점에 착안해 새로운 영화의 구상에 들어갔을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러했듯, 이 영화는 조커라는 신화적인 악당 캐릭터에게 설득력 있는 기원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선택하고 참고한 작품 목록이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와 ‘코미디의 왕’(1983) 그리고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 ‘킬링 조크’(1988). 영화는 이상 언급된 작품으로부터 끌어온 요소의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조커에 대한 사실주의적, 심리주의적 접근을 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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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커’의 스틸. |
광대 일로 근근이 먹고사는 삼류 코미디언이라는 설정은 ‘킬링 조크’에서, 고립된 사회 부적응자로서의 면모와 정신이상의 증상은 ‘택시 드라이버’에서, TV 토크쇼의 무대에 서고자 하는 출세욕에 찬 인물의 기행이라는 점에선 ‘코미디의 왕’을 가져온다. 1970년대 뉴욕대 영화과 실험 영화들이 공통으로 보여주었던 ‘황량한 거리와 음침한 침실’이란 공간에 대한 집착 또한 여실히 재현되면서 조커의 출신 배경에 현실적인 질감이 입혀진다. 다시 말해 ‘조커’는 스콜세지의 프레임을 통과해 이루어진 DC 코믹스 세계관의 재해석인 셈이다.
이러한 혼성모방은 두 가지 효과를 불러오는데, 먼저 조커에게 인간적인 디테일을 줌으로써 인물이 전보다 구체성을 얻었다는 점, 다음으로 히어로 장르의 통속성을 비껴감으로써, 들여다보면 전혀 새로울 것 없음에도 참신하게 보이는 착각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해석하는 이들이 극장 밖 현실의 컨텍스트를 소환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놀란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에서 계급과 불평등의 현실을 소재로 가져왔음에도 동화적인 결말로 모든 딜레마와 정치적 발화를 봉합했다. 반면 토드 필립스는 ‘조커’에서 만화책의 인물을 현실의 빈민가로 끌어내리고, 그의 시점과 심리에 관객을 동조시키려 한다. 여기에 고통받는 인물을 온몸으로 구현한 호아킨 피닉스의 호연이 덧씌워지는 순간, 영화는 장르와 현실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가 버린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민주주의의 퇴조, 계급 간 불평등을 겪는 대중의 시대 정서에 영화가 조응해 본래 의도한 바를 넘어선 사회정치적 발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극 중에서 아서가 쇼 비즈니스의 시선에선 ‘무능한 광대’로, 시위 군중에겐 ‘반체제 혁명의 상징’으로 오해된 것과 매우 유사한 현상이다.
‘어느 가족’(2018)에 이어 ‘기생충’(2019)에 그랑프리를 수여한 칸영화제의 결정처럼, ‘조커’에 대한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수여는 메시지를 담은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만듦새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 시대의 실상을 환기시키는 작품을 선정함으로써 관객에게 화두를 던지는, 영화제가 취할 수 있는 현실참여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장르의 ‘사실주의적 재해석’으로 시작한 ‘조커’는 본의 아니게 ‘정치적 문제작’이자 ‘예술영화’의 딱지를 받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수행해버렸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