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남주 작가 동명소설이 원작
- 여성 직장인·엄마의 보편적 삶
-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상처 그려
- “따듯한 희망 전하기 위해 노력
- 육아 간접 경험 매순간이 감동
- 나는 누구인가 묻게 하는 작품
- 성별 관계없이 이야기 나누길”
언뜻 보면 평범하고 비슷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시나브로 생긴 작은 생채기가 마음의 병이 된 2019년을 살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이 찾아온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23일 개봉)은 이제 30대를 사는 이 시대의 여성이 겪어야 했던 삶에 대해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잔잔하지만 뭉클하게 말한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 시대의 ‘김지영’을 일상을 연기할 때 더욱 빛나는 배우 정유미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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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을 연기한 정유미. 매니지먼트 숲 제공 |
정유미가 연기한 김지영은 꿈 많던 어린 시절과 매사에 자신감 넘쳤던 직장 생활을 거쳐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겉으로 모든 것이 평안해 보이지만 육아 때문에 그만둬야 했던 직장과 시댁 스트레스, 가부장적 집안의 둘째 딸로 자란 기억이 가슴에 켜켜이 쌓였다. 그래서일까?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지만 불현듯 엄습하는 불안감과 막막함은 마음의 병이 돼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는 병을 앓는다.
정유미는 자신이 김지영인 것처럼 완벽하게 영화에 녹아들었다. 실제로는 직장생활도, 결혼도, 육아도 해본 적 없지만 마치 김지영의 삶을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82년생 김지영’이 된 것이다. 남편 대현 역을 맡은 공유가 “현장에서 정유미 씨를 봤을 때 ‘김지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것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정유미는 김지영을 연기했다.
이 시대의 모든 여성을 대변할 수 없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여성을 보여준 정유미를 만나 ‘82년생 김지영’과 ‘83년생 정유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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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 김지영’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
-‘82년생 김지영’을 보니 김지영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가 원작소설보다 더 풍성해진 것 같다.
▶영화가 소설과 결이 비슷하게 나와서 다행이다. 원작소설의 의미나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김지영이라는 인물이 원작소설보다 입체적으로 구현된 것 같다.
-김지영은 이 시대의 30, 40대 여성의 보편적인 인물이다. 그 인물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겠다.
▶그런 부담감보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연기를 잘 해내야 관객이 인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늘 갖는 책임감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
▶어떤 시나리오는 읽다가 ‘이건 아니네’ 하며 덮기도 하는데, ‘82년생 김지영’은 읽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김도영 감독님 말씀처럼 ‘나는 어디에 있고, 나는 누굴까’라는 생각과 가족이 떠오르면서 ‘나는 어떤 딸인가’라는 생각도 들더라. 원작소설은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읽었다.
-김지영의 삶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나. 여성으로서 차별이나 불평등에 대한 공감도 있었나.
▶제가 김지영처럼 결혼이나 육아를 해보지 않았는데 보편적인 삶을 공감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김지영의 마음에 공감했고, 김지영을 잘 표현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김지영을 연기하면서 가장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특별히 없다. 시나리오가 워낙 탄탄했고, 와 닿지 않는 부분은 원작소설의 단락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김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해결됐다. 김 감독님이 두 아들의 엄마고, 육아와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육아에 대해 모두 알려줬다.
-남편 역의 공유 씨보다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육아를 해본 느낌은 어땠나.
▶잠깐의 경험으로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아기의 어머니가 항상 같이 있었는데, 어머니한테 “어떻게 이걸 다 하냐”고 물었다. 매 순간이 감동이었다.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이유 없는 악플 폭격을 맞아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다.
▶크게 신경 쓰려 하지 않았다. 신경 쓰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공유 씨와 ‘도가니’, ‘부산행’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이번에는 부부로 출연했기 때문에 이전의 경험이 도움 됐겠다.
▶새 작품에서 새로운 배우와 만나는 것이 저의 일이지만 이번 작품 같은 경우 서로 타이밍이 잘 맞아서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유 씨가 계속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서 가끔 촬영장에 왔는데, 마치 회사 간 오빠를 기다리다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영화를 생각하는 결이나 마음이 같아서 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
-영화 중반 김지영은 다른 사람으로 간혹 빙의한다. 특히 할머니로 빙의해 어머니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훌쩍였다.
▶그 공간, 조명, 분위기가 저를 그렇게 연기하게 만들었다. 어머니 역을 김미경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그냥 어머니 같았다. 선생님에게서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큰 의지가 됐다.
-김지영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간 장면에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의사 역의 김정영 씨도 인상적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김정영 선배님이 너무 의사같이 해주셨다. “어땠어요? 기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진짜 의사 선생님에게 상담받는 느낌이 들었다. 대사가 길어서 걱정하고 갔는데, 김 선배님 앞에 있으니 다 털어놔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더라.
-원작소설이 냉소적이고 차가웠다면 영화는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특히 엔딩이 희망적이었다.
▶평소 보편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희망적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이 이 영화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별과 관계없이 김지영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나눴으면 좋겠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