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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걸으며…아라가야·소가야로 떠나는 시간여행

경남 함안·고성 고분군 산책

  • 이지원 기자 leejw@kookje.co.kr
  •  |   입력 : 2019-11-13 19:17:4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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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산 고분군

- 폭 1~1.5m 둘레길 따라 오르면
- 함안군청 뒤편 구릉 능선에 위치
- 37기 무덤 관리… 국내 최대 규모

# 송학동 고분군

- 너른 잔디밭·푸른 하늘 어우러져
- SNS서 인생샷 핫플레이스 부상
- 근처 박물관 가족여행객에 인기

덥다고 아우성치며 열대야를 원망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계절의 변화를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다. 우리 조상도 세월의 무상함에 얼마나 야속했을까.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모습을 간직한 것이 있으니 바로 고분(古墳)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제515호)은 ‘우두머리 산’이라는 뜻으로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 등 최고 지배층의 묘역이다. 왼쪽부터 말이산 4호분, 9호분, 11호분. 4호분에서는 수레바퀴토기를 비롯해 120여 점의 토기와 대도, 말갑옷 조각 등의 유물이 나왔다.
고분은 고대 사회와 문화의 옛 모습을 보여 주는 무덤이다. 비록 임진왜란 및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의 많은 고분을 도굴했지만 당시 생활상과 시대상 등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역사는 그대로 남아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간여행을 즐기기 위해 가야시대로 떠났다. 그중 소가야와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고성·함안은 깊어가는 가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 느릿하게 산책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라가야 ‘말이산 고분군’

함안박물관
가야는 기원 전후를 기점으로 서기 562년까지 주로 낙동강 하류 일대에서 번성했던 작은 나라들의 총칭이다.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연맹체 국가로, ‘삼국유사’에는 아라가야(함안)·소가야(고성)·고령가야(진주)·대가야(고령)·성산가야(성주)·금관가야(김해)·비화가야(창녕) 등의 명칭이 나온다.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흡수되었지만, 수백 년간 이룬 역사는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한다.

‘아라가야’라는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면 부드러운 발음 이면에 굳센 이미지가 묻어나는 듯하다. 함안을 도읍으로 삼았던 아라가야는 고령의 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에 비교하면 낯설지만 가야 연맹의 주축이었고 성대한 고분군을 남긴 나라다. 특히 ‘우두머리 산’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 등 최고 지배층의 묘역이다. ‘머리산’이라는 말을 한자로 바꿔 ‘말이산(末伊山)’이라 썼다.

고성박물관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군청 뒤편에 자리해 있는데 다양한 산책길로 여행객을 맞는다. 길은 크게 함안박물관 왼쪽으로 난 길과 함안군청에서 오르는 길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군청 뒷길은 시가지에서 가깝지만 가파르다. 편안한 길을 찾는다면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함안박물관에서 출발하는 게 낫다. 폭 1~1.5m의 오솔길로 이어져 있으며 야자 매트를 깔아놓은 둘레길을 10여 분 걸으면 능선을 따라 솟은 고분을 만난다.

고분은 구릉의 정상과 가지 능선에 줄지어 서 있어 마치 ‘산 위의 산’처럼 보인다. 현재 37기의 무덤이 관리돼 단일 고분 유적으로는 국내 최대급 규모다. 발굴되지 않은 고분까지 더하면 1000기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발굴 작업은 계속 이뤄지는데 지난해 12월에는 13호분에서 별자리가 새겨진 무덤 덮개돌이 나와 화제를 모았고 최근엔 집·배·등잔 모양 토기와 동물 모양 뿔잔 토기, 말 갑옷, 투구 등이 출토됐다.

■작지만 강했던 소가야 ‘송학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전경. 왼쪽 3개 무덤은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해 우두머리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소가야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은 무기산이라 불리는 낮은 구릉을 중심으로 능선 주변에 있는 7기의 무덤을 일컫는다. 구릉의 정상부에 우두머리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 1기가 있고 그 밑에 나머지 6기의 무덤이 잇달아 늘어섰다.

가야는 당시 최첨단 소재였던 철을 다루어 한때 신라보다 더 부유했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 같은 첨단 기술 덕에 토기 생산과 유통도 활발히 이뤄졌다. 아라가야 토기의 몸체에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데 반해 소가야는 뾰족한 삼각형과 긴 사각형 무늬 등을 새겨 넣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백제와 규슈에서 발굴된 토기 몸체에도 뾰족한 삼각형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것으로, 당시 소가야가 지배했던 고성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송학동 고분군은 관리가 잘 되어 최적의 휴식 장소로 주목받는다. 산책로에 한 번 들어서면 무덤 7기를 모두 돌아볼 수 있는데 중간에 빠져나갈 길이 없어 마주쳤던 여행객을 또 만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에 고분 앞 너른 잔디밭은 보기만 해도 편안해진다. 특히 이곳은 SNS에서 사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데 푸른 하늘과 황금빛 잔디가 잘 어우러진 고분을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인생 사진이 완성된다. 고분 옆 계단으로 내려가면 고성박물관이 있어 아이들과 오면 현장학습과 함께 좋은 추억도 남길 수 있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박물관 해설사가 한 이야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아집에 빠진 대가야가 멸망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작은 나라였던 소가야가 수백 년간 사직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주변국과 활발한 교류에 있었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당시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한때는 이곳이 남해안을 배경으로 한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 함께 가볼 만한 곳

# 물풀 가득 작은 연못, 왕버들 가지 하늘하늘, 운치 황홀한 ‘무진정’

- 매년 4월 초파일 열리는 불놀이
- 이색 풍경에 무형문화재로 지정

함안군 괴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자인 무진정 앞 연못.
경남 함안군 함안면의 초입인 성산산성 끝자락에 무진정(無盡亭)이라는 멋들어진 정자가 있다. 조선 시대 사헌부 집의(종3품 관직)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무진 조삼(趙參)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고 여생을 보내려고 정자를 지었고 자신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을 나들이객의 눈에는 경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자보다 황홀한 풍경을 뽐내는 연못과 정원이 근사해 보인다. 아담한 호수는 초록색 물풀로 뒤덮여 있는데 눈부시게 환한 햇빛이 연못 위로 반사되어 정말 예쁜 광경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다리로 연결된 연못 한가운데 작은 섬에는 왕버들 대여섯 그루가 멋들어지게 가지를 늘어뜨려 운치를 더한다.

매년 4월 초파일이면 이곳에서 이뤄지는 우리나라 불놀이 가운데 처음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낙화놀이가 펼쳐진다. 참나무 숯가루를 한지에 싸서 댕기 머리처럼 엮은 낙화봉을 연등과 연등 사이 줄에 매달아 불을 붙이는데 숯가루 불꽃이 무진정 연못 위로 꽃가루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단다.

무진정을 찾아가려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함안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로 15분 정도 가면 된다. 함안대로를 따라 달리다가 ‘무진정’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면 넓은 공영주차장에 들어설 수 있다. 주말에는 매시 정각에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글·사진=이지원 기자 leejw@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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