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은 페인트공(마피아 은어로 살인청부업)이다. 2차 대전 참전 후 퇴역해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그는 필라델피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마피아 거물 러셀(조 페시)을 만나 해결사 노릇을 하며 범죄 세계에 입문한다. 대담한 일처리로 조직의 신용을 얻은 시런은 러셀의 주선으로 미국 최대의 트럭운송 노조 지도자 지미 호파(알 파치노)를 보좌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고 3년 뒤 가석방된 호파가 무리하게 위원장 자리를 되찾고자 하면서 마피아와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다. 조직의 신뢰와 호파와의 우정 사이에서 시런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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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시맨’ 스틸. |
‘아이리시맨’(2019)은 범죄자 인생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한 편의 연대기이다. 장장 209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의 플롯은 시런이 범죄세계에서 인맥을 쌓아가며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호파를 배신하고, 감옥을 다녀온 이후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독거노인 신세로 전락하는 인생유전을 따라간다. 마틴 스콜세지는 “신의, 사랑, 믿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배신에 관한 영화”라고 규정했다. ‘아이리시맨’은 스콜세지가 21세기에 접어들어 새롭게 만든 ‘좋은 친구들’(1990)이자 ‘카지노’(1995)이며 그 종결판이다.
폭력의 배경에는 두둑한 목돈과 명예라는 보상이 자리하고 있다. 시런은 더러운 일을 처리하면서도 자신의 앞날이 창창하게 뚫려있다는 걸 기뻐한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가면서 관객은 이 범죄 천국의 실체가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며, 표리부동한 인간들의 공모에 의해 언제든지 파멸당할 수 있는 지옥임을 목격하게 된다.
이전 영화에서처럼 스콜세지는 ‘대부’(1972)로 대표되는 범죄영화의 신화를 단호히 거부한다. 한때 ‘대부’ 시리즈의 마이클 콜레오네로 정상에 섰던 알 파치노의 캐스팅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배신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던 호파는 그 순진함의 대가를 죽음으로 치르며, 이것으로 갱스터 장르에서 관철되던 마피아 패밀리의 가족주의와 바로크적 낭만성은 철저히 부정당한다.
세상을 주름잡았던 거물들조차 퇴물이 되는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아이리시맨’의 또 다른 주제는 ‘시간’이다. 주연 배우들의 얼굴을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해가며 젊게 만든 건, 한때 이들이 누렸던 전성기가 노년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인간사의 무상함, 격세지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노인들의 노쇠함을 비추는 영화의 후반부에는 점점 작품에 투자받기 힘들어했던 스콜세지 감독 본인의 심경이 묻어나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시대에 뛰어들어 숱한 걸작을 남겼던 거장은 오늘날 과거의 영광과 영화의 순수성이 사라져가는 중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문을 닫지 않고 열어두는 엔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시네마’의 시대는 끝난 게 아니라는 감독의 암묵적인 메시지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