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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조선 속의 일본 <15> 왜관에서 분 일본 바람

왜로(난로)·설탕·찬합 선물 받거나 구입… 동래·김해 사람 일상에 스며들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11 19:05:50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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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최천약 ·기장 홍수해 등
- 왜관서 자명종 배워서 보급

- 국물 맛 끝내주는 ‘스기야키’
- 조선인에 신년 등 특별 접대
- 흰 설탕 사용한 과자 ‘오화당’
- 국수·담배·부채 선물로 인기

- 왜경을 부장품으로 넣기도
- 왜로 편리하지만 너무 비싸
- 유배자 18개월 만에 매입
- 작은 병풍 등 기능 품평도

국가는 가능한 왜관을 통제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접촉을 막으려고 했지만, 왜관 실무를 맡은 담당자나 지역 주민은 서로 만나고 교류하였다. 왜관 안에는 일본 물건을 파는 잡화점도 있었다. 조선인은 왜관 안에서 일본 음식을 접대 받기도 하고, 일본 물건을 사기도 하였다. 선물·구입 등 방법을 통해, 조선인은 왜관 안팎에서 일본 물건(문화)을 다양하게 경험하였다.

■자명종을 만든 신의 손, 최천약

자명종-조선후기, 일본에서 사용하던 자명종(출처:안대회, ‘조선의 프로페셔널’(2007)
자명종(윤종)은 시간마다 저절로 울린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다. 자명종이 조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31년(인조 9) 정두원이 명에 사신 갔다가 올 때다. 일본에서 만든 자명종은 왜관을 통해서도 들어왔다. 이이명의 ‘소재집’에는 자명종이 처음 들어왔을 때, 동래사람이 자명종이 돌아가는 법을 왜인에게 배워서 서울에 전했지만, 상세하지 않아서 있어도 쓸 줄 모른다고 했다. 김육의 ‘잠곡필담’에는 효종 때 밀양사람 유여발이 일본상인이 가져온 자명종을 연구하여, 구조를 터득했다고 했다.

자명종을 만든 기술자로 동래사람 최천약이 주목된다. 그는 동래부 장관청 파총을 지낸 상급 무임(군인) 출신이다. 1711년(숙종 37) 통신사 때는 일본에도 갔다 왔다. 이규상의 ‘병세재언록’에는 그가 처음 자명종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황윤석의 ‘이재난고’에는 웅천사람 최천약(동래사람의 오기인 듯)과 기장사람 홍수해가 왜관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웠는데, 특히 자명종과 화기(총 등의 무기)에 정통했다고 하였다. 이처럼 유여발·홍수해·최천약 등 왜관 인접 지역에 사는 기술자들은 자명종을 만들고 보급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최천약은 자명종과 화기는 물론 옥도장·천문기계·놋쇠자·악기·물시계 등을 다양한 물건을 만든 만능 기술자였다. 조선 전기에 장영실이 있었다면, 후기에 최천약이 있었다.

■최고의 인기 일본 요리, 스기야키

이이명 ‘소재집’ 중 자명종을 소개하는 내용.
왜관 일본인들은 신년이나 조선 국왕에게 진상품을 바치는 연회 때, 조선인과 함께 특별한 접대 요리를 먹었다. 특히 유명한 요리는 ‘스기야키’였다. 이것은 삼나무 상자에 된장을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 다음, 도미·대구 등 생선이나 제철 날고기를 넣고, 야채를 섞어서 끓이는 요리다. 왜관에 온 아사이 요자에몽이라는 사절은 1735년에 14번 왜관에서 요리를 접대했다. 스기야키 7번, 오리전골 1번, 기타(일반 요리) 6번이다. 7번 스기야키는 ‘도미, 전복, 달걀, 유부, 무, 유채잎, 파, 톳, 토란, 우엉, 미나리, 모자반, 가지’가 주재료였다.

조선어 통역관 오다 이쿠고로는 맛있는 일본 요리가 무어냐고 조선인에게 물으면, 늘 ‘첫 번째 스기야키, 두 번째 안코(아귀), 세 번째 하마야키(도미 등 생선 소금구이)와 소면’이라 답했다고 하였다. 스기야키는 승가기탕·승기악탕이라고도 부른다. 스기야키와 승가기는 유사한 발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기생·음악보다 더 나은 음식이란 뜻이다. 1801~1824년 김해에서 유배생활을 한 이학규는 “승가기 국물은 가기(기녀)보다 낫다는데, 만드는 법 일본에서 전해졌네”, “신선로 국물이 승가기만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라는 시를 지었다. 스기야키는 김해 부호들도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스기야키는 조선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요리였다.

■인기 만점 일본 과자·유럽풍 과자

왜경-진전살마수가 적힌 일본 거울(출처:권주영,‘조선시대 왜경의 유입과 배경’(2014)
왜관에서 접대 요리를 먹을 때 맛있는 과자도 나왔다. 대개 후식으로 먹지만, 식전이나 중간에 먹기도 하였다. 1736년 2월 2일 열린 아사이 요자에몽의 송별잔치 때, ‘구즈마키, 시키사토, 양갱, 다식, 오베리야스, 오화당, 얼음과자’ 등 과자와 ‘밤, 생밤, 향귤, 비자열매’ 등 과일도 나왔다. 일본 과자는 꿀·엿 대신 값비싼 설탕, 특히 흰 설탕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 과자를 맛본 조선인은 얼음사탕·오화당이 별미라고 칭찬하였다. 오화당은 흰 설탕으로 만든 꽃모양 사탕과자다. 과자 가운데 ‘오화당, 비자열매, 낙안, 오베리야스’가 인기 있었다. 낙안은 콩가루 등을 설탕 등과 반죽하여 말린 과자다. 오화당이나 설탕은 왜관 무역을 통해 수입되기도 하였다.

왜관에서 조선인에게 접대한 과자 중에는 카스테이라(카스테라)·오베리야스와 같은 유럽풍 과자도 있었다. 오베리야스는 네덜란드 과자 ‘오빌레’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에 전해지면서 오이라야스·오베리이·오페리이 등으로 불렸다. 달걀·설탕·밀가루를 섞어서 만든 ‘와플’과 같은 과자였다.

이런 과자들은 접대 요리를 먹는 자리에서 먹기도 하지만, 선물로 받는 것도 많았다. 이학규가 쓴 시에 “옷섶에서 (선물로 줄) 오화당을 끄집어낸다네”라는 내용이 있다. 1801~1806년 기장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심노숭의 ‘남천일록’을 보면, 1806년 유배에서 풀려 서울로 돌아갈 때, 어떤 향리로부터 오화당 1근과 설탕 1근을 선물 받았다. 오화당은 조선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일본 과자였다.

■기장·동래·김해에 스며든 일본 물건(문화)

심노숭은 기장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다기, 난로(왜골), 찬합, 목함, 사발, 칼, 부채, 황련(약재), 귤, 갈분, 담배, 술, 국수, 오화당, 설탕’ 등 다양한 일본 물건을 경험하였다. 이들 물건은 구경한 것도 있지만, 기장·동래 사람에게서 선물 받거나, 동래 읍내장에서 사기도 하였다. 특히 국수·담배·부채 같은 생필품을 선물로 많이 받았다. ‘국수 2근, 담배 1봉, 다기 1개, 부채 1자루’를 고향에 보낸 적도 있었다. 심노숭이 큰 관심을 보인 물건 중에는 왜로(난로)가 있다. 동래 읍내장에서 파는 것을 보고 무척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 포기하고 말았다. 일본 난로는 ‘왜골’이라고도 불렀다. 전철(지짐질 때 쓰는 무쇠 그릇)과 풍로가 달린 편리한 용품이었다. 그는 그것을 본 지 1년 반이 넘어서야 동래에 사는 어떤 향리에게 부탁하여 구입하였다. 고기 굽고, 차 끓이고, 약 달이는 데 매우 편리한 물건이었다. 그는 동래·기장 사람들이 쓰는 것을 빌린 적도 있었다.

정관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기장군 용수리유적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선후기 무덤에서 일본 거울(왜경) 1점이 나왔다. 거울에는 ‘진전살마수(津田薩摩守)’라고 적혀 있다. 진전은 제작자의 성이고 살마수는 실제 직책과는 상관없이 붙인 호칭이다. 거울은 17∼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후기 무덤에는 부장품을 거의 넣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 거울이 나온 것은 그만큼 당시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노숭은 1804년 11월 17일 동래 어떤 집에서 보낸 일본 찬합을 받았다. 5개를 합친 찬합 안에는 ‘각색 떡(병이)·유과·육포(포수)·구운 어육(전어육)·귤감(감시)’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음식의 맛·향·빛깔이 서울의 서민 부잣집에서 만든 것과 같다고 품평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 집을 통해서 ‘찬합, 갈분, 칼, 난로, 약탕기’ 등 많은 일본 물건을 접하였다. 이 집에서 침병(작은 병풍)을 빌린 적도 있는데, 일본 종이로 장황(표구)한 좋은 물건이었다. 특히 왜로(난로)는 불이 종일 꺼지지 않아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하였다. 이 집처럼 동래 읍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일본 물건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기장·동래 지역 사람만 아니다. 이학규가 쓴 시를 보면 ‘부채, 풍경, 양산, 칼, 종이, 자기, 모기장, 도박, 분재, 술병, 귤, 음식(소면, 스키야키)’ 등을 김해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다. 경제력에 따라 개인 차이는 크겠지만, 기장·동래·김해 사람들이 일본 물건(문화)을 경험하고 사고 즐기는 것은 점점 일상이 되고 있었다.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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