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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이중섭 그림 속 풍경…예향 숨결 구석구석 숨어 있네

미항, 통영 기행

  • 국제신문
  • 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20-01-08 19:41:5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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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망산·동포루·서포루 등 오르면
- 서로 다른 매력의 강구안 조망
- 비탈에 조성된 ‘남망산조각공원’
- 국내외 작가 이색작품 시선 끌어

- 시인 유치환 기리는 청마문학관
- 박물관 근처 위치한 윤이상기념관
- 초정 김상옥·박경리 작가 생가 등
- 보석 같은 예술인들 자취 곳곳에

부산 동구 초량동 구봉산 자락을 감고 도는 산복도로는 부산항 최고의 전망대로 이름 높다. 그중 부산컴퓨터과학고 옆의 ‘유치환의 우체통’은 경남여고와 부산남여상 교장을 지내다 초량동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시인 청마 유치환을 기리는 곳이다. 청마의 등신대 인물상과 빨간 우체통 옆에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시 ‘행복’을 새긴 조형물이 서 있다. 청마를 기억하며 멋진 부산항 조망을 누릴 수 있다.
이중섭이 통영에 머물던 시절 그린 작품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을 본떠 만든 조형물 너머로 강구안과 동피랑 일대, 남망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동쪽으로는 거제도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시선을 끈다.
그렇지만 청마를 제대로 만나려면 아무래도 고향 통영을 찾아야 한다. 아름다운 항구와 푸른 물결, 남해의 섬들이 어우러진 통영은 청마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예술인을 낳고 길렀다. 통영항에는 이들 예술인의 생가뿐만 아니라 기념관, 기념 거리가 보석처럼 구석구석 숨어 있다. 흔히 찾는 여행지인 동피랑과 서피랑, 남망산에서 강구안과 시가지가 바라다보이는 제각각 개성 있는 전망을 누려 보고 통영항 주변의 숨은 보석도 찾아보자.

■넓게 통영항을 보는 세 개의 전망대

통영은 오래전부터 미항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려수도 비경의 중심이라거나 한국의 나폴리라는 어쭙잖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강구안과 통영항 일대는 충분히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강구안은 남쪽을 바라보고 열린 항아리 모양인데 나머지 세 방향 모두에서 이곳을 내려다볼 수 있다. 높이와 방향이 제각각이라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개성 있는 경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걸어 다닌다면 순서대로 남망산에서 시작해 동피랑 위 동포루, 서피랑 위 서포루를 찾는 게 좋다.

가장 먼저 남망산에 올랐다. 조각공원이 있는 남망산은 강구안 동쪽에 야트막하게 솟았다. 통영시민문화회관 입구에 자리한 일본군 위안부 정의비 앞에서부터 조각공원으로 가는 내내 맞은편 강구안이 바라다보인다. 정면 언덕 위의 서포루와 오른쪽 뒤 여황산 위 북포루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세병관과 두 개의 첨탑이 솟은 충무교회를 비롯한 시가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강구안이 아름다운 건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 시각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눈에 담을 수 있는 규모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이중섭이 통영에서 머물던 시절 그린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
남망산에 올랐다면 꼭 조각공원도 둘러봐야 한다. 이우환의 ‘관계항(꿈꾸는 언덕)’을 비롯해 비탈을 빙 둘러 설치한 국내외 여러 작가의 조각 작품이 시선을 끈다. 굵은 소나무숲 그늘에 마련한 초정 김상옥 시비는 운치 있는 분위기가 그만이라 빠트리면 아쉽다. 돌아 내려가는 길에는 유치환의 ‘깃발’ 시비가 있는데 청마의 시는 통영 시가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난다.

강구안 해안에서 바로 올라가는 동포루는 세 곳 중 가장 번잡하다. 항구를 뒤로하고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가면 2018년에 새로 꾸민 벽화가 발걸음을 늦춘다. 동포루에서는 가까이 잘록한 모양의 강구안, 멀리 우뚝 솟은 미륵산을 한눈에 담는다. 주말이면 해안도로를 가득 메운 관광객과 대형 버스를 볼 수 있다. 중앙전통시장으로 내려가 중앙로를 지나 다시 맞은편 골목에서 ‘서포루 가는 길’ 안내판을 따라가면 서포루가 나온다. 서포루 앞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시원하지만 직전의 원형 쉼터에서 내려다보는 강구안이 더욱 정감 있다. 화가 이중섭이 통영에서 지내던 1953년 그린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이 대략 이 위치에서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본뜬 조형물이 정면에 보이는 강구안·남망산과 겹쳐진다.

■통영 거리에 감춰진 예술인들의 자취

국내외 작가 15명의 설치작품이 있는 남망산조각공원.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항구는 여럿 있지만 통영만큼 무게감 있는 예술인들이 둥지를 튼 곳은 흔치 않다. 통영항뿐만 아니라 이곳을 둘러싼 바다와 크고 작은 섬이 아우러진 비경은 예술의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문학과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태어나고 자란, 그래서 그 예술인들이 이곳을 떠나서도 잊지 못하고 사랑해 마지않은 곳이 통영이기도 하다. 부산에서도 오랜 기간 머문 유치환과 그의 형인 극작가 유치진 형제,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시인 김상옥이 이곳 출신이고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도 어린 시절 통영으로 들어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청마거리 입구의 청마 흉상과 ‘향수’ 시비.
남망산 동쪽 동호항을 내려다보는 위치에는 청마문학관과 생가가 자리 잡았다. 작은 항구와 겹겹이 섬으로 둘러싸인 작은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한 기념관에는 청마의 생애와 대표작, 유품을 만날 수 있다. 문교부 장관 명의의 경남여고 교장 임명장, 윤이상·조지훈 등과 주고받은 편지가 눈에 띈다. 청마와 ‘편지’는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여기나 와서 기다리자…’는 그의 시 ‘우편국에서’를 읽으면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숱하게 보냈던 연모의 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강구안 배후 옛 통영우편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통영중앙동우체국 일대에는 청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흔히 청마를 ‘깃발’의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행복’의 시인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시가 수천 통 연서를 보낸 청마답기도 하다. 중앙로 도로변에 청마 흉상과 ‘향수’ 시비도 있다.

해 질 녘의 윤이상기념관.
청마거리에서 남쪽으로 걸어가면 보도블록 틈틈이 그의 시가 새겨진 동판이 깔려 있다. 얼마 가지 않아 초정 김상옥의 생가가 있는 초정거리가 갈라진다. 서포루 북쪽 비탈에는 박경리 생가가 있고 동피랑 올라가는 길 동쪽에는 시인 김춘수의 생가가 있는데 두 곳 모두 안내문만 있고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서피랑 99계단 꼭대기의 박경리 기념 공간.
중앙로를 따라 계속 통영대교 방향으로 가면 옛 통영군청에 들어선 통영박물관을 거쳐 윤이상기념관에 닿는다. 기념관은 번잡한 강구안과 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접어든 듯하다. 계단을 통해 기념관 2층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윤이상의 흉상과 작품 목록이 반긴다. 전시된 패널에 적힌 ‘통영 시민에게 보내는 육성 편지’에는 통영의 파도 소리, 초목을 스쳐 가는 바람 소리 모두가 그에게는 음악으로 들렸다고 전한다.

올려다 본 서피랑 99계단.
예술인들의 자취는 통영항을 벗어난 곳에도 있다. 통영대교 건너 미륵도로 들어서면 미륵산의 북쪽 끝자락 봉평동에 전혁림미술관이, 서쪽 자락에 박경리기념관과 작가의 묘소가 자리 잡았다. 부산에서 세상을 떠난 청마의 묘소는 바다 건너 거제시 둔덕면의 청마기념관 인근에 있다.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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